박준영 시인(재단법인 디지털100%시청 이사장)이 산사에 머물며 느낀 점을 시로 표현한 감상을 보내왔다. ‘시로 쓰는 템플스테이’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시로 쓰는 템플스테이

박 준 영

나는 쉰 넘어 짬이 생기면 절에서 머무는 일이 많아졌다. 금 쪽 같은 짧은 휴일이든 휴가 때든 국내 명승지로 갔다간 바가지에 스트레스만 지고 오는 게 일수다. 그러니 조용한 절에서 평소 잘 뵙지 못했던 부처님도 자주 뵙고 밤이면 스님과 차담도 나눈다.

새벽 도량청정 목탁소리를 들으며 드리는 새벽예불의 맛을 아는 사람은 안다. 예불을 마치고 법당 문을 나서면 터오는 먼동이 나를 붙잡는다. 피부에 와 닿는 산 속의 상큼한 공기의 감촉, 이른 새벽을 지저귐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새소리와 같이 아침을 맞는다. 아침 공양을 마치면 절에서 기르는 개와 놀아 주기도 하고 칡넝쿨 뻗어가는 힘을 몸으로 느껴 본다. 소나무 아래 열심히 역사를 하는 개미떼를 한 참 들여다보거나 거사들 정원 손질을 돕기도 한다.

오전이나 오후 한 때는 등산을 하거나 읽고 싶던 책을 보다 낮잠을 즐긴다. 누구의 방해도 간섭도 받지 않고 오직 내 마음가는대로 내 스스로를 움직이는 시간들, 그러다 보면 그동안 조금씩 흐르던 시의 샘물이 넘쳐나려고 한다.

그 시작은 내가 KBS 대구총국장 시절 대구 근무 때다. 대구와 경북 인근은 좋은 절이 많고 따라서 좋은 스님과 도반이 많다. 그래서 “산이 좋다 절이 좋다 사람이 좋다”라는 수필을 어느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금요일 저녁 집 사람이 대구로 내려오면 토요일 오전 근무를 끝내고 저녁은 인근 동화사나 파계사, 은해사 등 팔공산록 사찰이나 운부암 등 인근 암자나 청도 운문사나 사리암 등에 자주 갔다. 그 때 뵙던 명승 큰스님과 일진주지스님과는 긴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선한 일 많이 한 적 없지마는

남을 위해 산 적도 많지 않지마는

오늘 하루,

당신 앞에 무릎 꿇어

잘못했다고

그래도 복은 많이 주십사고

빌고 빌었더니

오냐,

사는 게 얼마나 힘들더냐

와 준 것만 해도

복 받을 일이니

아무 걱정 말고

오늘같이 살라 하시더라.

<졸시: 사월 초파일 全文: 운문사에서>

대구는 그 후에도 또 인연이 닿아 1997년 민방인 대구방송 사장으로 다시 한 해를 더 있게 된다. 그래서 경주 기림사나 불국사 석굴암등에 자주 가 신세를 졌다.


기림사 삼존불 중 석가불 (사진=문화재청)

기림사

비로자나 삼존불상

배를 째

보물을 훔쳐 가도

훔친 놈

벌 안 받고

비로자나 삼존불상

바보같이 부처같이

그냥 웃고

살아가시더라.

〈졸시 : 기림사 삼존불상 全文〉

기림사에는 이 외에도 몇 편의 시가 더 있는데 이른 봄 기림사 하루를 그린

두우웅....... / 나무 관세음보살/ 새벽 범종소리에/ 매화 한 송이//

두우웅....... / 또 한 소리에/ 목련 한 송이 웃더니//

두우웅......./ 두우웅......./ 여러 소리에/ 마음 하나 열렸네

와 같은 소품도 있다. 그 당시는 IMF 우려에 힘들 때인데도 절에서 보낸 그 순간만은 마음 하나 편했던 모양이다. 이런 소품이 나왔으니 말이다. 그 후 당시 불국사 성타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불국사나 토함산 석굴암이나 경주 남산에 올라 십여 편의 시를 쓰게 된다.

그 중에 경주 남산 불곡마을에 흔히들 할매부처라고 부르는 석불좌상이 있는데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떠올라 더욱 정이 간다. 경주 남산의 불상들은 바로 신라,백제, 고구려의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 함께 숨 쉬고 있다. 이 불교의 포용 정신이 녹아 삼국 통일을 이루고 지금도 풍화되어 가는 생긴 그대로의 석불들이 우리를 반겨준다.

할매야/ 할매야/ 우리 할매야//

거기 왜 그리 앉아 있노/

백년에 백년 그리하여 천년을 더하여/ 갈 봄 가리잖고 더위 추위 괜찮다며//

뭐 하러 그리 앉아 있노//

천년에 또 수백 년/ 혼자 앉아 심심치도 않더냐/ 외롭지도 않더냐//

누가 코 떼어가고 귀 잘라가도/ 인심 좋게 웃는 얼굴/ 그렇게도 좋더냐//

우리 새끼들 우짜든지 명 질고/복 받고 잘 살라고 비는 재미로/

이리 앉아 있지 않노//

할매 할매 우리 할매/ 정말 우리 할매야/ 낮이 밤 되고 밤이 낮 되어도/

사시장철 앉아 있는 우리 할매야

<졸시 : 할매부처 全文>

우리나라 고찰은 어디 할 것 없이 마음에 쏘옥 드는 곳에 더할 것 뺄 것 없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절 앉은 곳이 명당이라는 말도 있다.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 기둥에 기대서 건너 능선을 바라보면 누구나 느낌이 인다. 봉화 축서사도 이에 못지않은 명당에 자리를 잡아 한 이틀 묵으면 시심이 일게 마련이다. 그래서 두 절에의 몇 편의 졸시가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장시임으로 그 일부만 옮긴다.

부석사 무량수전이

한국 아니 동양의 최고(最古) 목조 사찰의 하나인지를

알면 좋고 몰라도 좋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 뭔지를

알아도 좋고 몰라도 된다

법당 부처가 동쪽을 바라보든

서쪽을 바라보든 그런 건 상관없다

돌담 사이 지금도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앉은 걸 몰라도 좋지만

한 번쯤 볼 수 있으면 행운이다

절 주인이 일부러 그랬는지

게을러서 그런지

꾸미지 않은 절 속살을 보는 게 천만다행이라고 여겨도 좋고

모르고 지나쳐도 그만이다

의상스님 못 잊어 찾아온 선묘 낭자의 원력으로

봉황산 도둑 떼들 바위를 날아 올려

혼비백산 물리쳤다는 얘기를

믿고 싶으면 믿고 안 믿는다고 누가 뭐라 하랴

<중략>

저 부처가 아미타불인지 알아도 좋고

석가모니불인지 관세음보살인지

그런 건 절 주인이 알 일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말이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살짝만 기대서서

소백산에서 뚝 떨어져 내리 뻗은

저 말떼처럼 달리는 능선 무리를 자세히 보면 볼수록 좋고

가만히 들어도 한량없이 좋다

천군마마 흙먼지 뽀얗게 일으키고

말발굽소리 밀물처럼 밀려오고

우렁찬 함성 천지를 뒤덮고

그러던 어느 날

닭 우는 마을 개 짖는 소리

주름진 할배 할매 환한 미소로

“끼야 끼야 내 새끼야”

손자 손녀 엉덩이 두들기면서

“네 속에 나 있고 내 속에 너 있구나!”

그런 것 보고 듣고 만지라고

배흘림기둥은 서 있는 거다

오래오래 서 있을 끼다


부석사 무량수전 (사진=문화재청)

이 기분을 느끼려 부석사는 가고 또 가고 느끼고 또 느껴왔다. 부석사 못지않게 뛰어난 조망과 참 좋은 스님이 계신 곳이 바로 봉화 문수산 축서사요 무여 주지스님이다. 신라 의상대사가 부석사보다 3년 앞서 이곳에 사찰을 지어 독수리의 지혜를 모은 축서사란 이름을 갖게 됐다고 전한다. 태백준령과 소백산맥이 닿아 정기가 한껏 높아진 문수산(1206M) 높은 중턱에 자리 잡은 축서사는 봉화에서 택시로 20여분 걸리는 곳으로 교통도 좋은 편이다.

특히 봉화와 인근 주민은 물론 전국에서 찾아오는 불자들을 따스히 품어주는 무여스님을 뵙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은 절이다. 스님은 친근하고 자상하신 동네 어르신이자 카운셀러 같으신 분이다. 한 때 내가 어려울 때 자주 찾아가 지친 몸을 녹이던 곳이기도 하다. 한 해 여름 한 주일 휴가를 혼자서 축서사에서만 보내며 여러 편의 시를 얻은 곳이기도 한 데 특히 아래 두 편의 시는 정이 가는 작품이기도 하다.

쇠줄에 묶여

앉아서 눈만 껌벅거리는 게 하는 일이다

먹고 자고 자고 먹고

짖는 일도 짖을 일도 없으니

그저 순둥이란 이름이 하나 있을 뿐

예불 시간만 되면

법당 앞에 미리 와 꼬리치고

밥 때가 되면 공양 목탁 소리보다 먼저

달려가는 것도 그가 하는 일

쥐라도 나타나면 뒤쫓기는 하지만

잡기는커녕 쥐구멍만 쳐다보는 게

어쩌다 즐기는 여기(餘技)

그래도 스님처럼 나물 먹고 물만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인지

누군가 갖다 준 뼈다귀를 물고 뜯고 빠는 게

시간 남으면 유일하게 하는 참선

저 국물도 나오지 않는

마른 제 뼈다귀를

<졸시 : 흰둥이 全文-축서사에서>

축서사는 소나무 밭이 빼어나고 소나무 수목장으로도 이름난 곳이다. 그 소나무 그늘아래서 무료를 달래다 개미떼를 관찰하게 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래서 얻은 시가 <졸시: 개미의 죽음>이다.

하안거(夏安居) 한창인 선원 옆

가부좌 틀고 앉은 적송 아래

개미 두 마리 하늘을 걸고 한판 붙었다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정전도 휴전도 없는 피나는 격투

때로 응원군이 와 거들기도 하지만

한번 붙은 이상 죽기 살기다

무엇이 필살기인지 알 길이 없다

밀고 밀리는 싸움

드디어 결판이 났는가

한 개미의 죽음

우주는 무너지고

주검 혼자 외롭다

생과사가 둘이 아니라던 스님

사시(巳時) 예불 목탁 소리 화안하다

인근 각화산 자락에는 기도발 잘 받는다는 각화사등 명찰과 청량산의 청량사 외에도 고우스님이 누렁이 한 마리와 같이 있는 자그마한 선방 금봉암이 있다. 여기서 당시 총무원의 박희승 차장이 인솔하는 참선 실참팀에 참여 ‘이 뭐꼬?’를 했으나 이 뭐꼬는 대답이 없고 소나기 한 줄기 휩쓸고 간 암자 뒤편에 방긋 산나리를 만난다. 미완성 기분이 드는 이 시를 다시 꺼내 볕에 쏘이고 싶다.

법 없이도 살아가는 팔순 노부에게

마알간 하늘에서 떼도둑 먹구름 몰려들고

와당탕!

빠알간 벽력 천지를 때리친다

불난 집에

내리꽂는 한 줄기

법당 삽살이 축 늘어진 꼬리

다시 살랑거리고

방긋 산나리

동자꽃으로 웃는다

그 새

부처 다녀가셨는가

〈졸시 “소나기” -문수산 금봉암에서〉

이런 미완성이 다른 사물과 연결되면 이렇게 둔갑돼 나온다. 그 때 참구가 되지 않던 “이뭐꼬?”가 아래 시로 변신한다 트랜스포머같이.

담쟁이넝쿨

절망 같은 낭떠러지에 발붙여

하늘같은 목숨 줄잡고

이름 모를 작은 새

벌레 화두 하나 물고

파릉파릉 나는데

철 늦은 밤꽃 냄새

젊은 중 코 찔러도

딱따구리 딱다딱

밥 짓는 소리에

늙은 해 제 그림자를 밟는다

이 뭐꼬, 이 뭐꼬

대답 없는 선승이여

<졸시: 문수산 이뭐꼬?>

강이 굽이치듯 산이 오르내리듯 산다는 것도 이와 같아 한 뼘 마음속 이뭐꼬를 다스리지를 못해 이런 자탄과 반성과 스스로의 몸부림이 굽이치듯 소용돌이친다. 졸시 <백수의 기도> 전문을 들어낸다.

-<무주공산 ─ 산사에서>

쉬고, 쉬고 또 쉬고/ 놓고, 놓고 또 놓고/ 버리고, 버리고 다 버리고/ 오직 걸림 없는 대자유 하나 얻기 위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용맹정진/ 나도 없고, 너도 없고 그도 없으니/ 생도 없고 사도 없는 무주공산/ 이 몸을 버텨 온/ 가냘픈 명줄마저 끊으련다

-<매달리지 마라 ─ 산사를 내려와>

얼마나 굶었더냐/ 시뻘건 선짓국 한 그릇에/ 도수 높은 막소주 한 병//

자네 한 잔 나 한 잔/ 그래그래 너도 한 잔 더, 나도 한 잔 더/ 나와 네가 주고받는 술잔 속에/ 오매에도 그리던 부처님 얼굴이 반달로 떠다니네/ 놓아 버려라 매달리지 마라/ 걸림 없이 떠다니게//

‘아- 부처님/ 이렇게 쉬운 열반적정 옆에 두고/ 피골상접 육 년 고행 말이나 됩니까’

-<집으로 와서>

나는야 열반도 싫고 해탈도 싫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윤회면 어떻소 고해라는 살맛나는 세상/ 여기 말고 어디 있소

지금 여기서나 시일컷 즐길라요/ 여기가 화엄세상/ 죽도록 즐기며 살고 싶소

내 한세상 완전히 태우고/ 연기처럼 바람처럼 사라지면 그 어떻소

일상이 도요 도가 바로 일상이라지만. 말하기 좋게 먹고 싸고 졸리면 자는 게 도라는데 이게 정말 어마어마한 경지라는 걸 비로소 깨닫는다. 한 주 넘게 스님 따라 절 생활을 마치고 홀로 하산 하면서 봉화 시외버스 터미널 시장터에서 내보인 민낯이 위의 시다. 치기어린 민낯을 들어낸 이 졸시를 숨기고 싶은 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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