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처지가 되어서 그들의 슬픔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나 가족들에 대한 연민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비난이 아닌, 정부에 대한 능숙한 대처만이 그들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
태국의 대표적인 사회비평가이자 참여불교국제연대(INEB)를 창립한 불교지식인 술락 시바락사 박사(사진)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 같은 견해를 드러냈다. 동남아시아 메콩유역에서 교육 사업을 통해 지역사회의 변화를 꾀해온 시바락사 박사 박사는 8월 24일 입국 후 25일 오후 3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회의실에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이 말했다.
자본주의와 소비주의가 빚어낸 참사에 대한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입장과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세월호 정국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갈등의 현장에서, 시바락사 박사는 한국인들이 세월호 참사를 겪은 가족들의 고통을 나누는 것은 물론, 현대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거두고 각계각층의 지도자들과 함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거친 후 정부를 향해 강력한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바락사 박사는 “대부분의 정부는 부주의하다”며 “우리는 가족을 잃은 가족들의 슬픔을 공유하고 그들의 고통을 진지하게 나누며, 어떻게 하면 다시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바락사 박사는 현대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경계하며 “현대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너무나 정교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사고가 날 수 있다. 현대기술은 지혜가 아닌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항상 조심해야 한다. 사고와 관련된 전문가와 과학자, 종교지도자가 다 같이 힘을 모아 근본적인 문제를 좀 더 광범위하게 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자와 종교계 지도자가 좀 더 능숙하게 이 문제를 다룬다면 정부도 이런 논의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이라며 “만약 이런 노력 없이 정부를 비난만 한다면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들에 대한 연민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일침했다.
일각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대규모로 유가족을 지지하는 움직임을 보인 타종교에 비해, 불교계에서는 도철 스님의 32일 동조단식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시바락사 박사는 “우리가 세월호 가족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만큼이나 한국불교에 대해서도 연민을 가져야 한다”며 “괴로움이 삶의 기본 조건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주 고통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세월호의 고통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시바락사 박사는 물질만능주의를 경계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의 중요성을 주창했다. 그는 “산업혁명이 좋은 것이라고 하지만, 당시 유럽에서는 산업혁명이 반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는 산업혁명만 알지 반산업혁명은 알지 못한다. 모르는 상태로 남아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산업은 우리 가정과 자연을 파괴하고 부익부빈익빈이 유지되게 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모든 기업은 더 많은 돈을 벌기를 원한다. 탐욕은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에 직접적으로 연관돼있다. 세월호 사건 역시 현대생활이 소비주의, 자본주의와 밀접하게 관계돼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물질문명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우리 스스로가 우리 안에서 평화를 찾아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가꿔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시바락사 박사는 25일 오후 7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예술문화공연장에서 ‘아시아적 가치에 기반한 개발대안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특강을 개최한다. 아울러 방한 일정이 마무리 되는 26일 전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의 면담도 추진하고 있다.
술락 시바락사 박사는?
태국의 사회비평가이자 시민사회운동의 태두로서 태국뿐만 아니라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 메콩 지역에서 개인의 각성과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SEM(Spirit in Education Movement)을 설립하고 지역사회의 변화와 대안적 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수많은 CBO와 CSO 조직의 설립과 운영을 지원함으로써 지역 시민사회의 권한강화와 성장에 기여해왔다. 두 번에 걸쳐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되었으며, 대안노벨상이라 불리는 ‘Right Livelihood Award'를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