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일 법주사에 주석하고 있는 설조스님(금오문도 운영위원장)이 미증유의 참사가 빚어진 진도 팽목항을 다녀왔다. 설조스님은 진도를 다녀오신 후 그 참담한 마음을 정리해 미디어붓다에 전해왔다. 〈편집자〉

속세와 떨어진 산중(속리산)에 있으면서도, 순간순간 일어나는 미안함, 슬픔, 안타까움, 그리고 가슴 깊이 솟구치는 분노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채 피어나지도 못한 수백의 어린 목숨들이 아직도 차디찬 바다 속에 갇혀 있는 진도 팽목항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법주사 부주지를 지낸 무상스님과 함께 5월 1일, 속리산을 나섰다.

사중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직접 운전을 해 진도까지 달렸다. 아침 8시에 법주사를 출발했다.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물속에서 갇혀 있을 어린아이들 생각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팽목항에 도착해보니 도무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이구, 아이구, 이거 참” 나도 모르게 신음같은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침울한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몸 둘 바를 알 수 없었다.

전 국민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내온 위문품이 이번 사고를 보는 국민적 애통함을 대변하고 있었다. 사람들이나 실종자 가족들이나 하나같이 얼굴이 굳어 있었다. 슬픔과 원망스러움과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착잡함이 표정 속에 진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한 마디의 말도 건넬 수가 없었다. 말도 크게 할 수 없었고, 궁금한 것을 물을 수도 없는 무거운 분위기가 팽목항은 물론 실종자 가족이 머물고 있는 체육관, 아니 진도 전반에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곳에서 틈만 나면 달려와 며칠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미황사 금강스님을 만났다. 금강스님은 무거운 분위기에 실종자 가족들에게 음식도 먹으라고 권할 수도 없어 그저 죽과 떡 등 음식을 들고 조용히 지나갈 뿐이라고 전했다. 너무나 기가 막힌 일을 당한 그들의 심정을 무엇이라고 할 수도 없어서 달리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아이들이 차디찬 바닷속에 갇혀있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설조스님. 참담한 마음에 스님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고 술회했다.


체육관 앞에서 말도 못하고 서 있노라니, 천주교에서 나온 수녀님들이 조용히 체육관 입구에서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착잡했다. 전국 각지에서 달려 온 봉사자들이 꽤 많았는데, 그들의 표정도 매우 조심스럽고 어두웠다.

금강스님의 안내로 팽목항으로 갔다. 그곳에서 목탁소리가 들려오길 래, 가보니 스님들이 목탁을 치면서 희생자의 왕생극락과 실종자의 귀환을 염원하고 있었다. 스님들은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관음정근을 하고 있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그저 관세음보살님 명호를 부르며 달래주려는 스님들의 마음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이곳은 전남 4개 교구에서 돌아가면서 기도를 하고 있다고 금강스님이 알려줬다.

나 역시 어린 학생들의 극락왕생을 빌며, 또 혹시 살아 있을지도 모를 생존자의 기적같은 귀환을 바라는 마음으로 노란 리본에 마음을 담아 몇 글자 적고 정성스럽게 매달았다. 한 동안 팽목항을 떠날 수가 없었다. 생사일여라고 했지만,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 수백 명을 어처구니없게 보내야하는 이 나라가 원망스러웠다. 책임 있는 사람들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비극을 낳은 책임이 부도덕한 권력을 만들어준 국민들 모두에게 있으니, 책임자들의 처벌과 함께 국민들의 통렬한 반성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팽목항과 체육관을 둘러보고 돌아오려는 길에, 단체로 이곳에 도착하는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이들은 희생자들의 유족이었다. 안산에서 장례지내고 온 희생자 가족들이 실종자 가족과 아픔을 같이 하겠다고 다시 진도를 찾아온 것이었다.

참담한 광경을 바라보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이것은 도덕적 힘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경제적인 부를 감당하지 못한 과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성장 더디더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며 도덕과 인륜을 잃지 않으면서 천천히 성장해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나마 금강스님, 법일스님 등 몇몇 스님들이 이곳 참담한 현장을 지켜주고 있어서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우리 종단의 딱한 모습이 떠올려졌다. 이 참담한 일을 겪은 우리 사회는 반성도 하고, 책임자 처벌도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 종단은 어쩌면 1700년 역사에 가장 위태로운 지경에 와 있으면서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거나, 자각했더라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사라졌으니 더 딱한 처지라는 생각이 밀려온 것이다. 아픔을 겪으면 그 아픔을 나누고, 아픔을 준 대상을 원망도 해보고, 잘 해야지 하는 다짐도 해야 하는 것인데, 어쩌다가 우리 종단은 누구하나 종단현실의 참담한 상황을 짐짓 외면하고 있으니 이렇게 딱한 경우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우리 사회는 이런 엄청난 사태를 당해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외침이 있지만, 우리 교단은 정말로 총체적인 불신으로 빚어진 참상이 끔찍한 지경인데 누구하나 말도 안 하고, 외려 책임자들은 작당을 하며 기득권을 누리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교단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최근 팔공총림 동화사 주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과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을 보면서 종단의 최고 어른이며 법통의 상징인 종정스님조차 제대로 보필하며 지켜드리지 못하는 종도들의 무능함과 무관심이 여간 부끄럽지 않았다.

속리산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무거운 마음에 침묵했다. 침묵을 하고자 해서가 아니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오후 9시가 다 되어서야 거처에 도착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떠난 진도행은 이렇게 시종 무거운 마음으로 마무리됐다. 내 짧지 않은 인생에 오늘은 가장 무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