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 4

(사진=장명확)

심술궂고 욕심내어 온갖 번뇌 쌓았으며(十纏十使 積成有漏之因)

저 유명한 한산(寒山)의 시(詩) 가운데 다음과 같은 절창이 있다. 

오악이 모두 가루가 되고

수미산은 한 치의 산이로다.

큰 바다는 한 방울의 물

빨려들어 마음 밭에 있구나.

보리의 씨앗 나고 자라서

하늘 위의 하늘 두루 다 덮네.

불도 믿는 자여, 그대에게 이르나니

열 가지 번뇌로 얽매이지 않도록 조심하게나.

五嶽俱成粉

須彌一寸山

大海一滴水 

吸入其心田 

生長菩提子

遍蓋天中天

語汝慕道者 

愼莫繞十纏

이 시의 맨 마지막 구에 등장하는 십전(十纏)은 중생을 얽어매는 10가지 번뇌를 말한다. ‘전(纏)’은 얽거나 감는다는 뜻을 지닌 한자로 번뇌의 다른 명칭이다. 문자 그대로 십전은 중생을 얽어매어 생사(生死)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당연히 열반도 성취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애들이다. 

십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자신의 죄나 허물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 무참(無慚), 죄를 저지르고도 남에 대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무괴(無愧). 남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질(嫉), 인색해서 남에게 베풀지 않는 간(慳), 후회를 뜻하는 회(悔), 마음이 어둡고 자유롭지 못하는 수면(睡眠), 들뜨고 혼란스러운 도거(掉擧). 마음이 혼미하고 침울한 혼침(昏沈).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 대상에 대해 성을 내는 진분(瞋忿), 자신의 이익과 명예의 상실을 두려워하여 자신이 저지른 죄를 감추는 부(覆) 등이다. 이는 <참괴경>의 가르침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사회 등 좀 더 큰 단위의 집단도 무너뜨리고 마는 무서운 번뇌들이다.

이산혜연선사의 발원문에서도 그렇듯이 십전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십사(十使)’는 중생의 마음을 부려 생사윤회에 묶어 놓는 근본적인 열 가지 번뇌를 의미한다. 여기서 사(使)는 부린다는 뜻이다. 부린다는 것은 다른 대상(인간이나 동물) 등을 마음대로 조종하여 어떤 행위를 실행하도록 시킨다는 뜻이다. 십사, 즉 이 열 가지 번뇌는 중생을 괴롭히고 마음대로 부려 미혹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십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탐욕을 뜻하는 탐(貪), 성냄을 뜻하는 진(瞋), 어리석음을 뜻하는 치(癡), 교만함을 뜻하는 만(慢), 의심을 뜻하는 의(疑), 나라는 존재에 집착하는 신견(身見), 어느 한쪽에 치우친 소견을 뜻하는 변견(邊見), 그릇된 견해를 뜻하는 사견(邪見), 잘못된 견해를 옳다고 집착하는 견취(見取), 그릇된 계율을 고집하는 것을 뜻하는 계금취(戒禁取見) 등이다. 

열 가지의 번뇌[十使]는 다섯 가지 둔한 번뇌[五鈍使]와 다섯 가지 날카로운 번뇌[五利使]로 나눠 설명되기도 한다. 

날카로운 번뇌, 즉 오리사는 신견사(身見使)·변견사(邊見使)·사견사(邪見使)·견취사(見取使)·계취사(戒取使)이다. 이는 진리를 추구하여 일어나고, 성질이 날카로워 중생의 마음을 구사(驅使)하므로 5리사라고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구사(驅使)라는 용어는 매우 난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이다. 그 뜻은 사람이나 동물을 함부로 몰아쳐서 부리거나, 말·기교·수단 등을 능숙하게 마음대로 부려 쓴다는 것이다. 일상적으로는 언어, 전략, 기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구사’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외국어나 전략을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을 가리킬 때도 구사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예컨대 ‘강경화 장관은 영어를 원어민보다 더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등이 그것이다. ‘신견사’는 명색(名色)이나 오음(五陰), 십이입(十二入, 육근육경을 뜻하며 십이처와 같은 말이다) 등에 나의 ‘몸[身]’이 실재한다고 헤아리는 것이다. 이는 일상 가운데서 연기(緣起)의 이치를 밝게 알지 못해 눈·코·입이 있는 젊거나 혹은 늙은 나의 몸이 실재한다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변견사는 극단으로 치우친 견해를, 사견사는 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견해를 말한다. 견취사는 그릇된 견해를 바른 것으로 간주하여 거기에 집착하는 견해이고, 계취사는 그릇된 계율이나 금지 조항을 바른 것으로 간주하여 거기에 집착하는 견해를 말한다. 

다섯 가지의 둔한 번뇌, 즉 오둔사(五鈍寺)는 탐욕사(貪欲使)·진에사(瞋恚使)·무명사(無明使)·만사(慢使)·의사(疑使) 등이다. 탐욕과 성냄, 무명과 자만, 의심의 다섯 번뇌는 경우에 따라 멋대로 발동하는데, 성품이 둔하고 또 수행자의 마음을 구사(驅使)하므로 오둔사라고 부른다. 이것은 탐·진·치 삼독(三毒) 가운데 ‘치’ 부분을 무명 등으로 세분한 것이다. ‘무명’은 미혹해 밝게 알지 못하는 것이며, ‘자만’은 스스로 뻐기고 남을 경멸하는 마음이며, ‘의심’은 어리석은 마음으로 이치에 맞지 않고 마음으로 미적거리며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 번뇌는 다음의 다섯 가지에 비해 비교적 그 성격이 둔하므로 ‘둔한 번뇌’라고 이름하였다.

결론적으로 십전십사(十纏十使)는 ‘열 가지 얽힘과 열 가지 유혹’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번뇌를 가리킨다.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 등 인간의 근본적인 번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세부적으로는 10가지 얽매임(번뇌)과 10가지 부림(번뇌)이다. 다시 말해 중생을 괴로움에 묶어두는 20가지 번뇌를 뜻한다.

운허스님은 이 복잡하지만 체계적으로 분석된 번뇌를 ‘심술궂고 욕심내어’라는 두 단어로 압축해 간결하게 옮긴 것이다. 따라서 발원문을 독송하거나 그 내용을 실행으로 옮길 때에는 표피적 이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십전십사의 뜻을 거듭 반조하며 마음에 깃들어 생사윤회를 강요하는 온갖 번뇌들을 알아차리고 마침내 제거하리라는 원력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심술궂고 욕심내어’에 이어지는 다음 구 ‘온갖 번뇌 쌓았으며’는 적성유루지인(積成有漏之因)을 옮긴 것이다. 이는 십전십사로 유루(有漏)의 인을 쌓았다는 것으로 몸과 마음으로 항시 번뇌와 악업을 지어 고해를 드나드는 인연을 쌓아 올린다[적성]는 의미이다. 여기서 누(漏)는 ‘번뇌’ 또는 ‘집착’을 뜻하며, 인(因)은 유루가 ‘번뇌로 인하여 생긴 원인’이라는 뜻이다. 즉, 번뇌가 쌓여 고통의 근원이 된다는 것으로 쓰리고 아린 윤회의 고통을 끝없이 이어가게 하는 원인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유루지인은 ‘번뇌에 오염된 원인’이다. 십전십사(十纏十使)가 쌓여서 유루(有漏)의 원인, 즉 번뇌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 된다는 뜻이다. 

이산혜연선사의 발원구 ‘십전십사 적성유루지인(十纏十使 積成有漏之因)’을 운허스님은 “심술궂고 욕심내어 온갖 번뇌 쌓았으며”라는 매우 간결하고 압축된 표현으로 옮기셨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얼핏 보면 간략해 보여도 그 내용은 번뇌에 대한 놀라운 분석과 불교의 수행 원리, 윤회의 위험성에 대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이다. 

이 구절의 뜻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한 인간이 ‘십전(열 가지 미세한 번뇌)’과 ‘십사(열 가지 근본적인 번뇌)’에 얽매여 있는 것을 원인으로 하여 끝없이 탐욕을 부리고 심술궂은 마음을 내어, 번뇌에 오염된 행위의 원인(유루지인)을 쌓음으로써, 끝내 고통스러운 윤회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