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학연구회(회장 조은수)가 지난 11월 16일 서울대 신양인문학술정보관 국제회의장에서 연 2013 추계학술대회의 주제로 삼은 ‘연기사상의 성립과 전개’는 연기에 대한 총체적인 조명과 연구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고따마 붓다의 정각과 12연기’(원과스님 발표)로부터 시작하여, ‘구사론주 세친(바수반두) 연기관의 연속과 불연속’(박창환 금강대 교수), ‘용수와 길장의 연기설과 중도설’(남수영 동국대), ‘연기와 공성 그리고 여래장에 대한 티벳 주석가들의 상이한 이해’(차상엽 금강대), ‘천태지의의 십이연기설에 관한 소고’(오지연 동국대 강사), ‘화엄교학에서의 연기 개념’(고승학 동국대) 등 총 6개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붓다 재세시부터 화엄교학에 이르기까지 연기에 대한 교학적 이해와 관점의 변화, 발전,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학술대회였다. 각 분야별로 세분해서 연구발표한 발제들은 연기에 대한 폭넓은 시야와 관점을 가져다주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다만 발제의 내용이 현학적이거나 난해한 감이 없지 않아 전공자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았는가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학술대회는 불교의 핵심교리인 연기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심도 깊은 논의를 시도한 자체는 평가할 만 했다.



11월 16일 서울대에서 열린 불교학연구회 추계학술대회 장면.

첫 번째 발제인 원과스님의 ‘고따마 붓다의 정각과 12연기’는 다양한 연기계열이 있음에도 12지 정형구가 대표성을 가지고 4성제를 보충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Nagaropamasurtra(城喩經)를 중심으로 그 동일한 서술구조를 지닌 경전들을 분석하여 해명하고 시도하고 있다. 원과스님은 “이 텍스트에 따르면 붓다의 정각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며 “첫째는 여리작의하는 동안 연기법에 대해 여실하게 현관하는 단계이고, 둘째는 그 현관한 것을 4성제의 틀에 적용시켜 새로운 다르마로서 여실지견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붓다의 정각을 개인적 해탈체험에 제한하지 않고 중생구제와 관련된 진리의 발견으로 간주하는 그 특수성이 여기에서 모두 충족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발제에 나선 남수영 박사는 ‘용수와 길장의 연기설과 중도설’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인도 중관파와 중극의 중관파라고 할 수 있는 삼론종의 연기설과 중도설에 대하여 각각의 대표적 학자인 용수와 길장의 관점을 중심으로 살폈다. 남수영 박사는 “중관파가 설하는 비유비무의 중도와 삼론학이 설하는 비공비유의 중도는 표현 형식은 서로 다르지만, 그 배경이 되는 근본사상에서는 일치하며, 표현 형식의 차이는 시대상황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남수영 박사는 “용수는 연기인 사물들을 불일불이(不一不異)라고 설하지만, 길장처럼 불이(不二)를 더 강조하지는 않으며, 연기인 사물들이 상즉(相卽)이라고 설하지도 않는다”며 “여기서 용수와 길장의 차별성이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즉 용수는 연기인 사물들을 불일불이라고 설하면서 연기인 사물들의 동일성과 상이성을 동시에 부정하지만, 길장은 연기인 사물들을 불이(不二)라고 설하여 동일성의 부정보다 상이성의 부정을 강조하며, 그와 같은 불이의 강조가 속제와 진제의 상즉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용수와 차별성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연기와 공성 그리고 여래장에 대한 티벳 주석가들의 상이한 이해’를 발표한 금강대 차상엽 교수는 마츠모토 시로의 “연기와 공성의 가르침에 의거하지 않는 ‘기체설(基體說)’ 등을 전제로 하는 여래장의 교설은 붓다의 의도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 비불교적 가르침”이라는 비판과 관련하여, ‘그렇다면 여래장의 가르침은 연기 혹은 공성의 교설과 위배되는 내용인가’를 고찰했다. 차 교수는 “티벳불교의 초기 전파시대에 티벳인들이 연기와 공성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고찰하고, 그 내용을 유식의 교의로 ‘타공’의맥락과 연결되는 정의가, 아울러 연기를 바탕으로 하는 ‘자공’의 정의가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또 ‘자공’과 ‘타공’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둔황에서 출토된 초기 티벳사본의 학설강요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후기전파 시대에 나타난 공성과 여래장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고찰한 차 교수는 “보성론 I.155 게송의 원 맥락에서는 여래장 자체가 공(空)이 아니라, 비본질적인 번뇌(객진번뇌)가 바로 공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이는 모든 것이 공하다는 반야경 이래의 정의와 상호연결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차 교수는 “아울러 될뽀빠 셰랍갤챈은 자공과 타공이라는 2가지 공성을 세속제와 승의제라는 2제 개념, 그리고 연기하는 현상과 연기 너머에 존재하는 붓다의 지혜와 공덕으로 정의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인도와 티벳에서는 연기와 공성, 그리고 여래장에 대한 이해가 각 시대에 따라서, 각 지역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어 ‘천태지의의 십이연기설에 관한 소고’를 주제로 발표한 오지연 동국대 강사는 천태지의는 연기에 대하여, 그리고 십이인연에 대하여, 제법실상을 대표한 십여시 못지않게 십이인연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오 박사는 첫째 <법계차제초문>과 같은 초기 교설에서는 세 가지 십이인연을 설하였으나, 그 사에 근기의 우열 등은 명확히 설해지지 않으나, 세 번째의 ‘일념의 십이인연’은 후기에 이르러 원교의 십이인연관으로 승화되어 갔음을 확인할 수 있고, 둘째 <법화현의>에서는 십이인연이 대표적인 수행의 경계로 중시되었으며, 그것은 십여시나 사성제 등 여타의 다른 경계들과 서로 그대로 계합되는 위치로 파악되었고,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화경>에서는 ‘실상’과 (십이인연으로 말해지는) ‘인과’가 전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고, 그것은 체와 종으로서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인연법 혹은 연기설은 실상이라는 본질(體)을 구현하고 체득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수행(宗)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넷째 <현의>에서 설해진 ‘부사의 불생불멸 십이인연’은 <마하지관>의 선정경 가운데서 십승관법을 통한 원돈지관의 정수행법으로 자세히 설해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선정경에서는 십이인연관 외에도 근본4선이나 16특승 등의 초기불교 선정법들을 예로 들면서 그것을 모두 원교의 지관으로 행하는 법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마지막 발제인 ‘화엄 교학에서의 연기 개념’을 발표한 고승학 동국대 HK교수는 동아시아 불교전통에서 연기 개념의 변용과 화엄교학에서의 법계연기 개념의 형성과정을 검토한 후 이통현의 화엄연기론과 <화엄경문답>에 나타난 연기와 성기(性起)에 대한 입장을 재검토했다. 고 교수는 특히 이통현이 삼승(三乘)의 연기를 인과이시(因果異時)로, 일승(一乘)의 연기를 인과동시(因果同時)로 제시한 점에 주목하고, 아울러 인과동시를 화엄의 연기, 즉 중중무진의 법계연기를 부연하는 키워드로 파악해 눈길을 끌었다. 고 교수는 이어 “법방의 교판과 법계연기 개념에는 화엄종과 경쟁관계에 있던 타 종파, 특히 유식의 정치한 개념적 도구들을 빌어 자종(自宗)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이론을 위한 이론을 개진한 듯한 인상이 있다”며 “앞으로의 연구는 그동안의 종조들의 텍스트만을 분석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다양한 화엄사상의 모습을 규명하고 그 안에 제시된 연기를 비롯한 여러 개념들이 해탈과 수행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보다 면밀히 탐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