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제6교구본사 마곡사 새 주지 원경 스님의 교구장 진산식은 억수 같은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됐다. 9월 13일 오전 12시 마곡사에는 200여 명의 스님들과 마곡사 교구의 관내 기관장들, 청신사 청신녀 등 사부대중 300여 명이 운집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마곡사 주지 진산식은 흔히 보아온 진산식이 아닌 의미 있고 아름다운 행사로 진행됐다.

마곡사 대적광전 현판 아래에는 ‘제27대 제6교구본사 마곡사 주지 원경 스님 취임‘이라는 문구와 함께 ’자비의 쌀 나눔 행사‘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그 아래 신임 주지 원경 스님을 중심으로 공주, 부여, 천안, 청양, 온양 등 충남 각시군의 군수와 시장들이 각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 주지스님들과 함께 줄지어 섰다. 그리고는 20킬로그램 쌀 한 포대씩을 각 사찰 주지스님들이 원경 스님의 인도로 전달하는 의식이 진행됐다.

거창한 교구장의 진산식이 아닌 자비의 쌀을 나누는 소박한 행사로 열린 마곡사 주지 원경스님의 취임식. 그러나 그 의미는 어떤 행사보다도 컸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날 신임 주지 원경스님은 지역사회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대전·충남·세종지역 11개 시군구 지방자치단체장을 초청해 자비의 쌀 2200포대를 전달했다.

또 불교계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전 서구노인복지관과 금강노인복지센터, 죽림노인요양원에도 쌀 200포를 전달했다.

자비의 쌀은 주지 진산식의 경비를 절감해 마련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비의 쌀을 전달하는 것으로 취임인사를 대신한 원경스님은 지역불교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축사도 없고, 환영사도, 기념사도, 축가도, 법문도 없었다. 짧은 시간의 행사였으나 여운을 가장 긴 행사였다.

원경 스님은 마곡사 교구본사 주지 선거를 통해 교구내 스님들 다수의 선택을 받아 당당하게 주지에 선출되었으나, 인수인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해 종무행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주지 진산식이라는 적지 않은 행사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본사의 종무기능이 여전히 정상적인 상태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원경 스님은 개의하지 않았다. 거창한 취임행사 대신에 참으로 멋진 진산식을 선택한 것이다. 오랫동안 주지를 살았던 천안 성불사에서 익히 보여준 것처럼, 행사라면 어떤 행사든 완벽하게 치러내는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원경 스님은 소박하지만 의미는 큰 행사를 열기로 결심했다.

색다른 진산식에 참석한 불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원경스님의 선택을 칭송했다. 또한 마곡사 교구가 조속히 안정을 되찾아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충남불교를 살려줄 것을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나누며 당부했다.

가을비를 한껏 머금은 마곡사 경내를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려왔다. 새 주지스님의 부임을 산천도 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