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육신은 아주 빠른 속도로 썩어가고 있는 놈입니다. 유리그릇 같은 놈이고 물거품 같은 놈이에요. 손만 대면 깨지는 게 물거품입니다. 이 소리를 듣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지, 듣는 놈이 누구인지 가끔 사유해볼 필요가 있어요.”

부산 범어사 큰마당에 울려 퍼지는 무진장 스님의 육성에 불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9월 13일 오후 4시, 조계종 원로의원이자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법사였던 혜명당 무진장 대종사의 영결식에 모여든 2천여 사부대중을 맞은 것은 아직 쟁쟁한 스님의 목소리였다. 무진장 스님의 원적을 지켜보기 위해 경내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불자들의 얼굴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13일 부산 범어사에서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된 혜명당 무진장 스님의 다비식 모습.

무진장 스님의 영결식은 영결법요, 행장소개, 추도입정, 음성법문, 영결사, 법어, 추도사, 조사, 헌화분향, 문도대표 인사말 순으로 진행됐다.

장의위원장인 조계종 원로의장 밀운 스님은 영결사를 통해 “한국불교의 한 가운데 주석하시면서도 시비분별에 가담하지 않고 청정무애하고 무애자재한 법신의 경계를 보여주신 스님을 일러 세상 사람들은 ‘써도 써도 풍요로움이 끊기지 않는 보배창고’ 즉, 무진장이라 말한다”며 “스님을 뵈오면 확연히 종지를 보는 듯 하였고 스님의 사자후를 듣게 되면 줄탁의 도를 이루는 기쁨에 젖었다”고 회상했다.

밀운 스님은 “스님에 대한 종도들의 기댐과 외경심이 날로 깊어지는데 홀연히 일대사 인연을 접었다는 소식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고 있다. 교학의 지평을 넓힌 눈밝은 종장으로서 남겨놓은 자취가 한량없으니 이제 그 진용과 사자후를 어디서 뵙고 들어야 할지 슬픔이 더욱 벅차오를 뿐”이라고 애도했다. 더불어 “우리 사부대중은 대종사님의 무한한 덕화와 지도로 부처님의 자비스러운 가르침이 훼손되지 않도록 두타행을 더욱 쌓아가겠다”고 발원했다.

무진장 스님 영결식은 2천여 사부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결법요로 시작됐다.

종정 진제 스님은 원로부의장 명선 스님이 대독한 법어에서 “종단대소사에 지도를 하시다가 홀연히 오온의 질통을 벗고 홀연히 탈거하니, 제불제조의 적멸궁중에 안주하라”고 말했다.

이어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추도사를 통해 “꿀벌 한 마리 살 것 같지 않은 이 도심에도 국화 향 따라 벌과 나비가 날아오듯이, 각박한 도시의 한복판에서도 스님의 법향은 멀리 가는 향기가 되어 많은 중생들에게 불법 인연을 맺어주셨다”며 “향과 꽃으로 배웅하오니 다시 향과 꽃으로 청하올 그 날에 속히 돌아오시어 청아한 법음으로 저희의 눈과 귀를 밝혀 달라”고 무진장 스님을 보내는 애통한 마음을 전했다.

중앙종회의장 향적 스님은 “스님께서는 저희들에게 적멸이 즐거움이 되는 진상을 보이셨고 공저적하고 의연함이 스님의 본지풍광임을 입증하셨다”며 아쉬움을 달랬고, 포교원장 지원 스님은 “내년 봄 산수유 꽃망울 터트릴 때 소박한 거사 집안의 새 생명으로 돌아오시라”는 시로 조사에 갈음했다.

무진장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는 불자들의 얼굴에 애통함이 묻어났다.

문도를 대표한 진관 스님은 “앞으로 수행, 정진을 더욱더 잘 하는 것이 보답하는 것으로 알고 수행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영결식에 참석한 사부대중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장의는 다비식으로 이어졌다. 영결식을 마친 사부대중은 인로왕번을 앞세우고 범어사 연화대로 법구를 이운했으며, 전통식으로 마련한 연화대에 거화, 무진장 스님을 보내는 마지막 의식을 치렀다. 무진장 스님의 초재는 9월 15일 부산 범어사에서, 막재는 10월 27일 서울 조계사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원로의원 스님들이 무진장 스님의 영전에 헌화를 하고 있다.

한편 이날 영결식에는 원로회 밀운·명선·활안·동춘·도문·혜승·법흥·월파·종하·월탄·정관·암도·세민·지성·대원·성우 스님과 중앙종무기관 소임자 총무원장 자승 스님, 중앙종회 의장 향적 스님, 호계원장 일면 스님, 교육원장 현응 스님, 포교원장 지원 스님과 전 교육원장 무비 스님, 전 중앙종회의장 보선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이 참석했다. 총림에서는 금정총림 방장 지유 스님, 덕숭총림 방장 설정 스님, 해인사 율주 종진 스님, 송광사 율주 지현 스님, 통도사 유나 천진 스님, 범어서 유나 인각 스님, 범어사 율원장 수진 스님이 참석했고, 교구본사 주지로는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을 비롯해 수덕사 주지 지운 스님, 동화사 주지 성문 스님, 불국사 주지 성타 스님, 해인사 주지 선해 스님, 통도사 주지 도명 스님, 송광사 주지 무상 스님과 조계사 주지 도문 스님 등이 참석했다.

혜명당 무진장 스님은?

1932년 제주에서 태어난 무진장 스님은 1956년 3월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은사로 득도해 1960년 범어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했다. 범어사 불교전무강원과 동국대 불교대학을 졸업한 후 동국대 대학원을 비롯해 방콕 왓 벤타마보핏 사원에서 남방불교를, 일본 경도불교대학 대학원에서 천태교학을 연구했다. 10년간의 연구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스님은 동국대 불교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후학양성에 매진했다.

스님은 이때부터 40년간 조계사에서 조석하며 청빈한 삶을 실천하고 불교발전과 대중포교에 매진했다. 조계종 제2·4대 포교원장을 역임하고 2007년 원로의원으로 추대된 후 대종사로 품수됐으며, 2010년 조계사 회주로 추대됐다. 조계종 포교대상과 제3회 대원상 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1987년에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