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정법 재가결사 법림'을 이끌고 있는 적연 이제열 법사가 혜민 스님의 지난 7월 25일 ‘대한불교진흥원 주최 다보법회’에서의 설법 내용이 부처님의 교설에 배치된 외도 법문이라고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을 보내왔다. 설법내용이 실린 교계 한 인터넷 언론의 기사를 읽고, 사회적 영향력이 큰 스님의 설법이 불교의 근본교설과 배치되었을 때 미칠 정법 훼손의 파장을 고려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이제열 법사는 기고의 이유를 밝혔다. 이제열 법사의 기고를 원문 그대로 게재한다. <미디어붓다>는 이 기고에 대한 격조를 갖춘 반론이나 견해가 있을 경우, 같은 비중으로 게재할 방침이다. <편집자>
지난 7월 25일 낮 대한불교진흥원 주최 다보법회에서 설법하는 혜민스님.
요즘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혜민 스님이 최근 대한불교진흥원이 주최한 다보법회에서 설법한 기사를 한 교계 인터넷 언론을 통해서 접했다.
논자가 직접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해 구체적으로 스님이 어떤 법문을 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신뢰할만한 교계 언론에 실린 기사를 읽고, 기사의 내용이 맞다면 혜민 스님의 불교관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만약 혜민 스님이 현재 불자와 국민의 주목을 받는 위치에 서있지 않다면 혹 문제가 있더라도 가볍게 넘어 갈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혜민 스님은 외국의 명문대학 출신 교수라는 경력과 출가 수행자라는 신분으로 불자들은 물론 많은 국민들로부터도 존경을 받는 위치에 서 있어 언어의 파급력이 매우 큰 분이다. 따라서 스님은 누구보다도 더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된 설법을 구사해야 하고 정법에 입각한 교화 활동을 펴야한다고 본다.
하지만 스님의 다보법회 설법 내용들 속에는 치열한 구도의지와 수행 정신은 엿볼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관해 정견(正見)을 갖추고 공부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혜민 스님이 설법한 내용 가운데에서 스님의 개인적 체험에 관한 것들은 그렇다 치고, 논자가 무엇보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곳은 “원래부터 있어 왔던…” 운운하는 부분이다. 스님은 설법 가운데에서 주인공(主人公),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는 용어를 구사하며 원래부터 있었던 것을 찾는 것이 불교이며 수행이라고 설파하였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불교가 몸과 마음과 세계의 근원이 되는 주인공을 찾고 본래면목을 깨닫고 참나, 진아(眞我) 따위를 보는 종교인가? 원래부터 있어온 그것이라는 표현을 중점적으로 두고 설법을 했는데, 스님이 진아론(眞我論)을 믿는 힌두교도인지 아니면 성리를 주장하는 도교(道敎)의 수행자인지 정체성에 의문이 간다.
혜민스님의 대중적 인기를 입증하듯 이날 법회에는 인파가 몰려 법당을 꽉 메웠다.
이른바 미국의 명문대 철학박사 학위를 소지했다는 스님이 부처님의 기본 교설만이라도 충실히 이해했다면 절대로 이런 설법을 했을 리 만무하다. 혹자들은 스님의 이런 설법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면서 공연히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다고 힐책을 하거나,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건다고 불쾌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불법(佛法)의 근원(根源)을 부정하는 아주 중차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설법 내용을 살펴보면, 혜민 스님은 힌두 사상의 삿트(sat, 本有) 전변설(轉變說)과 부처님의 무아설(無我說)을 구분하지 못하고 불교를 하고 있는 분 같다. 부처님의 무아설이 바로 힌두 사상의 삿트를 강하게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진아’니 ‘본래면목’이니 ‘본래부터 있어온’ 따위의 언어는 구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삿트 전변설이란 우주만물과 중생들이 존재하기 전에 본래부터 있어 왔다는 궁극적 실재이다. 이 삿트를 인도인들은 브라만이나 푸루사(purusa)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이는 조작이 없고 창조되지 않았으며 한결 같고 삶과 죽음을 뛰어 넘어 우주에 편재한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이 삿트는 만물의 근원으로 허공도 여기서 출현하였으며 중생의 지각을 넘어 영원히 존재한다고 여겨왔다.
인도의 우주 인생관은 바로 이 삿트인 브라만과 푸루사의 전변에 기초한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와 같은 힌두의 삿트 전변설을 강하게 부정했다. 부처님은 ‘이는 모두 중생의 무명(無明)에서 연기된 허구(虛構)’로 규정하면서 ‘합일(合一)과 깨달음의 대상이 아닌 해체와 출리(出離)의 대상’으로 여겼다. 불교에서는 중생의 몸과 마음 그리고 세계 어느 곳도 이들을 존재하게 하는 본래 주인이나 근원이나 주재자 따위가 있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몸이건 마음이건 세계건 그 무엇도 조건 지어지지 않은 것이 없으며 무상하지 않은 것이 없다. 본래부터 있어 왔다는 궁극적 실재(窮極的 實在)를 강하게 비판하고 연기(緣起)와 무아(無我)와 공(空)을 천명하고 있는 가르침이 불교인 것이다.
만약 중생과 세계에 이런 따위의 원리들이 애초부터 존재했다면 불교가 세상에 새삼스럽게 나타날 이유가 없었다. 불교와 외도(外道)의 차이점이 많지만 그 가운데에서 대표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이와 같은 진아, 주인공, 참나, 본래면목 등의 삿트적 개념들을 가지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중론>에서 용수보살은 “있음에서 있음이 발생하지 못하고 없음에서 있음이 발생하지 못하며 있음과 없음은 함께 할 수 없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혜민 스님은 유감스럽게도, 보도된 대로라면, 저 부처님 당시의 외도들의 논리와 도에서 만물이 일어났고 그 도는 무위라고 가르치는 중국 도학의 논리를 가지고 설법한 것으로 읽힌다.
나는 혜민 스님이 주장하는 ‘본래부터 있어 왔다’고 하는 주인공의 정체가 무엇이며 그것이 과연 부처님의 가르침과 일치되는 것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본다. 또 최고의 지성인임을 인정받고 있는 출가자로서, 펴고 있는 논리가 불교의 정법과 합치되지 않는다면 스님은 부처님께 참회하고 대중을 향해 그 허물을 고백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출가자는 세간구업보다 출세간구업을 조심해야 된다고 부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이 기회를 빌어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논자는 초기불교론자도 대승불교론자도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논자는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를 똑같이 신봉하는 사람이다. 논자는 대승의 교리를 비불설이라고 주장하고 불성(佛性), 여래장(如來藏), 진여심(眞如心)등을 힌두의 사상이라고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의 견해에 반대한다. 대승의 불성, 여래장, 진여심 등은 초기불교에 치우친 사람들이 생각하듯 유아론적이고 실체론적 개념들이 아닌 연기와 무아와 공사상에 입각하여 전개된 교설이다.
또 한 가지 논자는 간화선이 훌륭한 수행법이라는 점에 이의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밝힌다. 하지만 논자는 간화선을 수행하는 분들이 쓰고 있는 ‘개화천지 미분전’이니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이니 ‘옛 주인’이라느니 하는 등의 외도견(外道見)을 일으키게 하는 용어들에 대해서는 결코 찬동할 수 없다. 때문에 현재 한국불교의 본래면목, 자성, 주인공, 진아 등을 가지고 수행을 하고 논리를 펴고 있는 수행자들은 부처님의 정법제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승에서 아무리 일심(一心)을 강조하지만 일심 역시 연기요 무아이며 무자성(無自性)이고 무소득(無所得)이다. <기신론>에서 “일심도 무명에 의해 훈습 받기 때문에 불각(不覺)”이라 했고 <열반경>에서 “십이연기가 곧 불성이며 불성은 유무를 떠난 중도(中道)로 중생들에게 불성이 있다하여 저 외도들의 아(我)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현재 한국불교는 진아론자, 실재론자, 영혼론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들에 의해 초기불교의 정신은 물론 대승의 교리들 까지도 심하게 변질되어 정법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불성, 여래장, 진여심 등의 대승의 교리들을 잘못된 선적 사고로 이해하고 ‘주인공’ ‘본래면목’ ‘참나’ 등의 용어를 구사하여 대중의 눈을 흐리게 만든다. 부처님께서 고구정녕 설하신 연기와 삼법인(三法印)과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는 찾아 볼 수 없고 주인공, 참나 등이 홍수를 이루면서 불교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조실이니 방장이니 하는 큰스님으로 불리는 분들 상당수가 이와 같은 견해에 침잠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고 일선에서 대중들을 이끌고 있는 수행지도자들 역시도 이런 견해를 의심치 아니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심지어는 한국불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종정 큰스님이라는 어른마저도 마치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입만 열면 끊임없이 주인공, 참나, 본래면목 등의 언설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 한국불교의 딱한 현실이다.
여기에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런 견해를 가진 수행자들이 한국불교의 흐름을 거의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견 있는 학자나 스님들 누구 하나도 나서서 비판을 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히 이런 설법에 문제가 크다는 사실을 아는 학자나 수행자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을 텐데도 그들은 침묵하고 있다.
논자는 개인적으로 한국불교의 여러 가지 문제점 중에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이러한 왜곡된 설법을 하는 사람들이 불교를 뒤덮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나서서 개선시키려는 징후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논자는 이 기회를 빌어서 혜민 스님에게 감히 충언을 해 드리고 싶다. 제발 부처님의 교설을 제멋대로 창작하고 해석한 잘못된 선적 언어에 길들여지지 말고 좀 더 경전에 충실한 설법을 해줄 것을 주문하고자 하는 것이다. 외도들이 쓰고 있는 유론(有論)을 거두어들이고 중도 교설인 연기와 공과 무아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대중을 교화해 주실 것을 간곡히 권해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