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2년 2월 12일, 남북 불교교류와 평화적 통일의 기반을 조성한다는 목적으로 (사)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회장 법타 스님, 평불협)가 창립됐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20년이라는 시간은 고난의 길이었다. 감옥도 가야했고, 굶는 동포를 위해 돈을 빌고 밀가루를 빌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현 정권 들어 남북관계는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었다. 평불협은 현 정권들어 밀가루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강산이 두 번 변해야 할 시간인 20년. 시나브로 ‘통일보살’의 별칭을 얻은 법타 스님은 평불협 20년을 맞는 자리에서 여전히 “밥이 통일이고, 희망이며 평화”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분단의 비극이 오랜 시간 계속되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지난 4월 26일 오후 2시 조계종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 전통문화공연장에는 200여명이 채 못 되는 사부대중이 참석해, 쓸쓸하게 평불협 창립 20돌 기념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평불협 20주년 기념법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회장 법타스님.
이날 인사말을 한 평불협 회장 법타 스님의 인사말에는 특유의 여유와 조크는 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목소리는 처연하게 들려왔다.
“우리 사회는 솔직히 동물의 왕국 수준이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법타스님은 “우리가 북한동포를 살피지 않으면 누가 살피겠냐”며 “배고픈 것을 외면하면서 동포애와 민족을 이야기 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여기에는 보수도 진보도 없는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법타 스님은 그러면서 “현 정권 덕분에 ‘밀가루 살 돈이 굳어) 힘은 좀 덜 든다”고 에둘러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이날 기념법회 자리에는 새누리당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나경원, 정진석 등 친이 실세들과 이명박 정부에서 특임장관을 역임했던 주호영 의원의 얼굴도 보였다. 법타 스님의 오랜 지인인 ‘성관거사’ 이인제 의원도 참석했다.
이들 정치인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우며 소개한 법타 스님은 그러나, 부드러운 말 속에 뼈를 담아 준엄한 질책을 가했다.
“정치인들은 이런 (대북) 정치를 안했으면 한다. 남북관계가 이래서야 되겠느냐.” 나경원 전 의원이 이후 축사에서 “남북관계가 후퇴했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숙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변했지만, 청중의 실소만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법타 스님의 질책은 불교계로도 향했다. “불교계가 소위 보수적이라 이런 일(대북지원)을 잘 안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안할 수 없다. 이 처참한 비극이 오랜 시간 계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이 땅에 통일국가도 있었지만 세 나라로 갈려 있었던 적도 있었지 않느냐. 밥이 중요하다. 굶어죽지 말아야 한다. 밥이 통일이고, 평화이고, 희망이다. 불자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평불협 정인악 이사장이 평불협이 걸어온 지난 20년을 회고하고 있다.
축사를 하고 있는 이인제 의원. 법타스님의 스승인 일타스님으로부터 성관거사라른 법명을 받았다.
법타스님이 평불협에 기여한 아이네임즈(대표 김태제)에 감사패를 수여하고 있다.
이에 앞서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기념 강연을 통해 “김정은 체제는 초보운전을 시작하는 단계”라면서 “좋은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가이드가 필요하다. 길을 들이기 보다는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축사에 나선 이인제 의원은 미국 투자회자 골드만삭스의 2005년 9월호 세계경제보고서에 나온 “한반도가 통일되면 3~40년 안에 프랑스와 독일을 제치고 일본도 제칠 수 있다. 곧 미국과 중국 다음의 경제대국이 된다”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는 무서운 역동성으로 놀라운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체제 때문이다. 체제를 녹여야 한다. 평불협의 열정과 미래에 대한 확신을 정치인들이 배워야 한다”고 평불협의 지난 20년을 평가했다.
법타 스님은 이날 아이네임즈 김태제 사장, 박관회 대선제분 회장 등 평불협 운동에 동참해온 공로자들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한편 북의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서기장 이규홍)는 지난 2월 12일 전송문을 통해 평불협 창립 20주년을 축하했다. 조불련은 전송문에서 “남북불교계의 유일한 통일운동단체로 창립된 평불협은 결성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화해와 단합 북남불교의 협력과 연대, 6·15공동선언의 실천과 조국통일을 위한 활동을 적극 벌려왔다”고 평가하고 “평불협이 지난시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우리 민족끼리 기치밑에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을 위한 실천행을 힘차게 벌려나가리라 확신한다”며 평불협 20돌과 법타 스님의 건강을 기원했다.
이날 기념법회에는 불교인권위원장 진관 스님, 전 포교원 포교부장 계성 스님, 정각원 교법사 제정 스님, 불교상담개발원 전 원장 정덕 스님,을 비롯해 정인악 평불협 이사장, 안동일 동산불교대학 명예이사장, 이상우 동산불교대학 이사장, 이인제 의원, 주호영 의원, 나경원 전 의원, 김도현 후원회장 등 사부대중 200여명이 참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