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의1 

(사진=장명확)

경전이나 논서는 물론이거니와, 선지식의 글을 분석하고 해설하는 것은 결코 녹록한 작업이 아니다. 용어 하나하나에 깃든 심오한 의미, 그곳에 그 용어를 적용한 의도까지 파악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칫 용어해설집처럼 흘러버릴 우려도 있고, 또는 장황한 사전적 풀이에 머무를 수도 있을 것이다. 워낙 잔학비재한 터라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용어 해설 수준을 벗어나 원문의 의미,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글을 펼쳐나가고자 한다. <필자 주> 

“시방삼세 부처님과 팔만사천 큰 법보와 보살성문 스님네께 지성귀의 하옵나니 자비하신 원력으로 굽어살펴 주옵소서(歸命十方調御師 演揚淸淨微妙法 三乘四果解脫僧 願賜慈悲哀攝受).”

첫 번째로 다룰 내용은 발언문의 첫 구절이다. 첫 구절은 발원문의 전체 구성에서 ‘귀의’ 부분에 해당한다. 불교의 모든 의례의 시작이 삼보에 대한 귀의에서 비롯되는데, 이 발원문도 예외는 아니다. 

‘귀의(歸依)’는 불교 신앙의 핵심 개념으로, 부처님[佛, Buddha], 가르침[法, Dhamma], 상가[僧, Saṃgha]로 구성된 삼보(三寶)에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불교도로서의 신앙을 상징하며, 삼귀의문(三歸依文)을 통해 맹세하는 것으로 실행된다. 부처님[佛]은 가장 높은 존귀한 분[無上尊]을, 법(法)은 탐욕을 떠나는 가르침을, 승(僧)은 평등화합의 이상사회를 뜻한다. 

귀의는 몸과 마음을 바쳐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 가르침을 실천하고 전승하는 상가를 따르고 의지하는 것이며, 산스크리트어로는 ‘śaraṇa’로 표현된다. 즉 삼보에 귀투(歸投)하여 몸과 마음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이를 삼귀의(三歸依)라고 하며, 불교의 의지 대상 전부를 나타낸다. 귀명(歸命)은 범어 나마스(namas)를 옮긴 것으로, 그 음을 따서 나무(南無)라고 하는데, 이는 귀의한 마음을 말로 나타낸 것이다.

삼보에 대해서 귀의하는 맹세의 글은 삼귀의문(三歸依文)이다. 구체적으로 ‘나무귀의불(南無歸依佛), 나무귀의법(南無歸依法), 나무귀의승(南無歸依僧)’이라는 문구를 말한다. 불교도로서 계(戒)를 받을 때 맹세하는 문장인데, 이 맹세로 불교도가 되는 일이 결정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삼보에 귀의해야 하는 것일까? 첫째 귀의불무상존(歸依佛無上尊) 즉 부처님은 최상무상(最上無上)의 인격 완성자이기 때문에 귀의한다. 둘째 귀의법이욕존(歸依法離欲尊) 즉 불법은 탐욕을 떠나게 하는 존귀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귀의한다. 셋째 귀의승화합존(歸依僧和合尊) 불교 교단은 평등화합의 이상사회이기 때문에 귀의한다.

*귀명(歸命) 혹은 남무(南無)는 산스크리트어 namas를 한역한 것인데, 그 뜻은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하는 것’ 즉, 귀의(歸依)의 뜻이다. 따라서 귀의에는 귀명정례(歸命頂禮, 이마를 땅에 대고 절하는 것)와 같은 신체의 동작과, 지심귀명(至心歸命, 마음속으로 귀의하는 것)>와 같은 마음의 상태 양면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 ‘시방’은 시방삼세의 압축 표현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인과적 개념이다. 어쩌면 불자들이 가장 흔하게 쓰는 불교용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시방삼세이다. 그러나 의외로 그 연원과 깊은 뜻은 잘 알지 못하면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시방삼세는 시간과 공간을 한꺼번에 초월하는 개념이다. 모든 것은 한꺼번에 존재하며, 그 인과 역시 윤회하며, 시공간에서 서로 교류하며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개념을 뒷받침하고 있는 매우 의미심장한 용어인 것이다. 

먼저 시방이란 용어는 동서남북 사방과 건(乾). 곤(坤). 간(艮). 손(巽)의 사우(四隅) 또는 북서 남서 북동 남동의 사유 및 상하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시방세계는 곧 공간적 개념이다. 삼세(三世)는 과거·현재·미래, 전세·현세·내세 등 시간의 흐름을 나타낸다. 과거세(過去世)는 지나간 때를, 현재세(現在世)는 현재 있는 때를, 미래세(未來世)는 아직 오지 않은 때이다. 삼세를 법의 상태에 따라 나누기도 한다. 법이 생겨서 작용하는 때를 현재라 하고, 법이 없어서 작용이 끊어진 때를 과거라 하며, 법이 아직 생겨나지도 않고 작용하지도 않은 때를 미래라고 한다. 삼세는 불교의 근본원리라고 할 수 있는 인과응보(因果應報)와 관련해 설명되기도 한다. 현재 받고 있는 고락(苦樂)은 과거 지은 업의 결과이며, 현재에 행해진 업이 미래의 고락을 결정하는 주요하면서도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개념이다. 그런 점에서 삼세는 경세(警世)적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 ‘조어사’는 부처님의 덕화를 나타낸 열 가지 명호 가운데 여덟 번째 덕목인 조어장부(調御丈夫)를 말한다. 조어장부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데 가장 뛰어난 존재’, 또는 ‘길들일 만한 중생(인간 또는 천신)을 제도하는데 으뜸인 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조어장부는 산스크리트어 ‘puruṣa-damya-sārathi’에서 유래한다. 대자(大慈), 대비(大悲), 대지(大智)로써 중생을 잘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부처님은 제도할 대상의 자질 또는 근기에 따라 부드럽거나 엄격한 가르침을 적용하며,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분이시다. ‘사라티(sārathi)’는 원래 동물 길들이기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인간과 천신 등 다양한 존재로 확장해 적용한다. 두루 알다시피 부처님은 계율을 지키게 하여 중생을 청정하게 하고, 수행을 통해 열반에 이르게 한다. 잘 길들인다는 것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불선업과 번뇌를 항복시키고 다스린다는 뜻이다. 이 덕목은 부처님의 무한한 자비와 지혜를 상징하며, 중생의 성숙도에 맞춘 가르침을 강조한다. 

부처님은 <맛지마니까야>137 ‘여섯 감역에 대한 분석의 경(Saḷāyatanavibhaṅga sutta)’에서 여래십호 가운데 조어장부에 대해 설법하고 있다. 이 경에서 부처님은 조어장부란 팔해탈을 이끄는 지도자를 뜻한다고 말씀하신다. 팔해탈은 까시나 수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색깔을 이용하여 선정에 들어가는 방법으로, 부처님 당시부터 사마타 수행법으로 행해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것에 대해 여래는 기뻐하지도 않고 기쁨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는 동요하지 않고 사띠하며 분명하게 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성자가 닦는 첫 번째 사띠의 확립이니 그것을 닦아 성자는 스승이 되어 무리를 지도할 수 있다.”

팔해탈(八解脫, aṭṭha vimokkhā)은 여덟 가지 선정의 힘을 의지하여 색(色, 물질)과 무색(無色, 마음과 마음작용)에 대한 탐욕, 한계 또는 속박을 버리는 것, 즉, 색과 무색에 대한 탐욕, 한계 또는 속박으로부터 해탈하는 것을 뜻한다. 팔해탈이란 내유색상관외색해탈(內有色想觀外色解脫). 내무색상관외색해탈(內無色想觀外色解脫), 정해탈신작증구족주(淨解脫身作證具足住), 공무변처해탈(空無邊處解脫), 식무변처해탈(識無邊處解脫), 무소유처해탈(無所有處解脫), 비상비비상처해탈(非想非非想處解脫), 멸수상정해탈(滅受想定解脫) 등이다. 팔해탈은 유루(有漏)의 해탈로서, 처음의 세 가지는 유루의 색계 선정인 4선에 해당하고, 다음 4가지는 유루의 무색계 선정인 4무색정에 해당하여, 마지막 1가지는 유루의 가장 뛰어난 선정인 멸진정에 해당한다. 즉, 팔해탈은 유루의 선정인 4선·4무색정·멸진정을 통칭하는 낱말인 구차제정(九次第定)과 사실상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팔해탈과 구차제정의 차이는 구차제정이 선정 그 자체라면 필해탈은 선정을 통해 벗어나는 것, 즉, 선정의 선한 작용이라는 점이다.

* ‘청정미묘법’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기본적으로 청정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나타낸 표현이다. 어떤 가르침이건 부처님이 하신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는 모두 번뇌에 물든 중생을 정화시키는 내용을 담겨 있다. 법(法) 앞에 미묘라는 형용어를 배치한 것은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이란 섬세하고 야릇해서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오직 체험으로만 알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개경게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 즉 법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는 도저히 그 깊이를 알 수 없다는 말이며, 노자의 도에 대한 설명처럼 분별의 언어,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도(道)는 진정한 도가 아니라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청정미묘법 앞의 동사로 배치된 ‘연양(演揚)’은 ‘멀리 흐르고(演), 날아오른다(揚)’는 두 자의 조합으로 ‘널리 연설하고 또는 높이 알리는 것’을 말한다. 연양은 주로 불보살님들이 가르침을 펴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따라서 연양청정미묘법은 모든 번뇌에 물든 중생을 정화시키기 위해 불보살들이 사량분별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섬세하고 야릇한 가르침을 연설하고 널리 알린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