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의 도인, 늘 스스로를 스님의 자격이 없다며 낙승(落僧)이라 부르던 스님, 만해와 미당에 견줄 격조 높은 시(시조)를 간헐적으로 발표하면서 ‘한글선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활짝 연 문장(文丈), 무산 오현(霧山五鉉, 사진) 스님이 선방의 최고 어른인 조실에 추대됐다.

무산 오현 스님이 그동안 사용해온 절집의 소임은 신흥사 한주(閑住). 말 그대로 하는 일 없이 한가로이 머무는 승려라며 자신을 낮추던 무산 오현 스님이 13일 조계종 제3교구본사 신흥사의 조실에 오른 것이다. 낮은 곳으로 스며드는 설악의 안개처럼 늘 하심과 겸양의 살림살이를 보여왔던 무산 오현 스님에겐 어쩌면 조실 자리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신흥사의 조실에 추대된 이상 스님은 앞으로 백담사 무금선원, 신흥사 향성선원 등 3교구 내에 있는 선원 수좌들의 지도를 담당해야 한다.

선방에 조실이 사라졌다는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무산 오현 스님의 조실 취임은 신선하고 파격적이다. 현재 한국의 선문은 존경과 신망을 받고 있는 조실급 스님들이 드물어 참선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안거 해제일 하루 전, 신흥사 설법전에 운집한 200여 명의 납자들은 교구의 최고 어른이신 무산 오현 스님을 조실로 추대하는데 뜻을 모았다. 미처 이런 후학들의 ‘발칙한’ 의도를 알지 못했던 무산 오현 스님이었지만, 끝내 대중들의 요청을 사양하지 못하고 조실 자리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자신을 낮추며 일체의 직함을 멀리하고자 하는 스님의 평소 뜻을 잘 알고 있는 신흥사의 대중들도 조실 추대 소식을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꽃다발을 증정하는 것으로 추대식을 대신했다.

이 자리에는 조계종 기본선원장 지환 스님, 파계사 성전암 현응선원 선덕 일오 스님, 전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 의장 영진 스님 등 선방을 대표하는 구참 수좌들과 이수성 전 국무총리 등 사대부중 30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조실에 추대된 무산 스님은 법상에 올라 “모두 정진해 각자 마음 밭의 조실이 되라”고 당부했다.

*무산 오현 조실은?

1942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 어린 나이로 출가해 1958년 성준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스님은 직지사에서 사미계를, 범어사에서 비구계를 수지했고, 법명은 무산, 호는 설악(雪嶽)이며 조오현이라는 속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196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했고, 시조시인으로 문단에 큰 거목으로 추앙받고 있다. 불교신문 편집국장 및 주필, 춘천불교방송 사장 등을 지냈고, 특히 만해사상을 선양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만해축전을 세계적 축제로, 만해대상을 한국의 노벨상으로 정착시키는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기도 하다. 조계종의 종조 도의 국사가 창건해 한국 선종의 맥을 연 강원도 양양 진전사를 복원했고, 그동안 신흥사와 백담사에 각각 향성선원과 무금선원을 열어 수좌들의 정진을 독려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