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불자의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비구 독식의 현 종단 구조는 한계에 봉착해 있고, 그 한계를 돌파하려면 재가자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디에 얼마나 재가의 역할을 부여할 것이고 권한을 나눌 것인가는 묘연하다.

이 미묘한 현안을 주제에 올려놓고 조계종이 한 판 토론을 벌였다. 전에 없는 일이다. 토론회 자체가 조계종 승가교육진흥위원회의 주관으로 열린 것은 솔직히 사건이다.

조계종 승가진흥위가 주최한 불교중흥대토론회가 '출가와 재가의 역할'을 주제로 열렸다.

지난 7월 20일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한국불교중흥을 위한 7월 대토론회는 그래서 시작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국제회의장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스님들이 결정권을 가지고 불교계의 모든 일을 해나가는 방식의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불교발전이 어렵다.”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일문 스님의 일성이다. 이날의 토론이 불교발전을 위한 걸림돌 중의 하나인 재가활용 부재의 교계현실 타계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일문 스님은 “출가자의 변화 없이는 불교발전이 어렵다”고 거듭 강조했다. “스님들이 종단운영을 전담하고 종무원들이 스님을 보좌하는 현재의 방식은 그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일문 스님은 특히 ‘돈 버는 사업에 스님들이 나서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조계종 총무원이 시도하고 있는 수익사업은 출가해서 수도하는 스님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돈을 버는 사업은 어디까지나 전문재가자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민감한 주제인지 이날 토론이 열린 한국불교역사문화회관 2층 국제회의장은 보조좌석을 놓을 만큼 많은 청중이 몰렸다.

일문 스님은 서울 봉은사가 신도회와 신도자원봉사자, 사찰운영위원회를 모범적으로 운영된 사례를 소개하며, “종단은 사찰운영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해 ‘협의’가 아닌 사찰운영의 결정권을 갖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문 스님이 출가와 재가의 올바른 역할분담을 위해 △출가·재가 모두 원력이 필요하다 △변화 이끌 집단 조직 필요 △종단과 스님들의 적극적 사고 변화 △재가자의 신도회 적극 활동 △실천 가능한 작은 것부터 실천 등을 주문했다.

일문 스님은 그러나 재가자의 종단운영 참여나 역할 확대를 종회를 통해 종법으로 정하자는 일부의 견해에 대해서는 ‘요원한 일’이라고 솔직히 답변했다. 이날의 토론회가 공식적인 종단차원의 문제제기에 의미를 둘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토로한 것이다. 이같은 일문 스님의 고백에 네티즌은 ‘솔직해서 제일 낫다’는 평가를 내렸다.

토론자로 나선 성효 스님(중앙종회 사무처자)은 ‘이제는 같이 하자, 같이’를 주장했다. 성효 스님 역시 “출가와 재가의 역할에 대한 토론을 하는 이유가 불교계가 처한 위기 속에서 탈축구를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라는데 견해를 같이 했다. “출가든 재가든 혹은 출가자간이든 재가자간이든 서로 인간적인 진실함과 공감을 느끼고자하는 마음을 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효 스님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복지 교육 종교 등 많은 분야에서 출가자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적”이라며 “재가자 역할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할 것”을 주문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출가와 재가의 기능과 역할을 ‘대동소이’하게 해야 한다는 추상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으로 스님의 토론은 끝을 맺었다.

윤남진 소장은 출가와 재가의 역할에 대한 문제는 생각을 틀을 바꾸는 획기적인 변화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토론자로 나온 윤남진 NGO리서치 소장은 “출·재가 문제는 교단재구축 차원 중대의제”라는 입장에서 접근할 문제라고 일찌감치 못 밖았다. 윤 소장은 “출가와 재가의 역할문제는 대체로 출가자의 역할은 재검토 하지 않고 재가자에게 어떤 역할을 얼마나 허용해 줄까 하는 식으로 생각한다.”며 “하지만 이런 ‘생각의 틀, 보는 틀(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가자 스스로 먼저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윤 소장은 “사찰운영위원회 재가전문가 활용 등 위해서라도 폭넓은 사고가 필요하다”며 “사찰운영위원회가 안된 것은 규모와 구조, 시스템, 보편적 의식과 문화수준, 리더십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중앙종무기관(중앙)이 ‘플랫폼사업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소장은 특히 출가와 재가가 함께 ‘이타적 창업 투자은행(가칭)’ 설립과 사회법적 중재효력을 갖는 ‘분쟁중재기구’ 설치를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공허한 토론의 반복보다는 실현가능성 있는 의제를 제시하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조기룡 동국대 교수는 출가와 재가의 올바른 역할 분담은 ‘신행과 경영의 이원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출가자의 리더십은 경영자가 아닌 수행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출가자와 재가의 역할 능력향상은 출가자의 수행리더십 향상과 재가자의 교단 운영 관심 제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출가자는 수행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며, 재가는 교단 운영의 담당자가 되는 것”이라며 “출가자는 수행으로써 재가자의 삶의 모범(롤 모델)으로 리더십을 확보하고, 재가자는 기복을 탈피해 책임의식을 갖고 교단(사찰)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재가자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졌다. “재가신도가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면 1년에 한 두 번 사찰을 찾으면서 주인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며 “신도가 주인이기 위해서는 주인의식 갖고 참여하는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플로어 토론에 참여한 손안식 중앙신도회 상임부회장은 “승가가 재가를 존중하지 않고 재가는 승가를 진심으로 존경하지 않는다”며 “정화 이후 청담, 효봉스님 등이 개혁을 논의하면서 1단계 비구대처 개혁, 2단계 승단개혁, 3단계 신도개혁이었다. 재가자의 종단운영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을 준비했지만 청담스님 입적이후 유명무실화 됐다”고 지적했다. 출가와 재가의 역할 찾이 뿌리가 불교정화 때부터 논의됐지만 여전히 제자리 걸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임희웅 포교사단장은 “현재 출가자에 대한 권한은 무한대이지만 재가의 권한은 규정이 있어서 실행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포교법> 32조는 종단이 정한 포교시설 단체에서 정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종단의 포교당이나 시설에서 활동하려 할 때 그 시설의 스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임 단장은 “포교사단의 현재 활동은 군법사가 없는 대대급 군법당이나 교도소 등 스님의 손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스님들이 재가 포교사의 활동에 발목을 잡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교육원장 현응 스님은 “조계종은 비구 중심으로 운용되어 왔으나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며 “해당지역 사찰은 사찰운영위원회의 활성화를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해야 하며, 교구는 교구신도회 구성과 함께 교구 종회에 4분의 1정도는 신도가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제도를 개선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또 “중앙에서는 중앙신도회 임원단이 중앙종회에 참여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권한 쟁의에 대해서는 호계원에 재가전문가제도를 도입” 필요성도 제기했다.

현응 스님은 출가와 재가의 역할 모색은 “비구승이 시혜를 베풀듯이 할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사부대중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이라며 “최소 5년 정도의 로드맵을 만들어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