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그리고 우주는 폭발과 함께 저절로 생겨났을까 아니면 어떤 위대한 설계자가 친히 창조한 것일까.

영국의 저명한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지난 7일 출간될 『위대한 설계』(원제: Grand Design)에서 우주가 창조주의 위대한 디자인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저절로 생겨났음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등 영국과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소개해 메가톤급 파문이 일고 있다.

호킹은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리어나드 믈로디노프 박사와 함께 쓴 이 책에서, 지금까지 과학적 연구 결과 우주는 중력의 법칙과 양자이론에 따라 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 자연 발생이 바로 인간과 우주가 존재하게 된 이치라며 여기에는 우주가 창조되고 작동하는 데 신을 개입시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호킹은 우리가 사는 이곳이 유일한 태양계라는 주장은 틀렸으며 우리 은하에만도 셀 수 없이 많은 태양계가 존재한다는 데는 과학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역설한다.

이와 함께 그는 생명체의 존재는 그를 둘러싼 환경의 특성을 말해준다는 ‘인류학적 약원리(weak anthropic principle)’도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인류학적 원리는 자연의 원리가 지적 생명체의 탄생과 생존에 적합하게 맞춰져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즉 인류학적 원리는 강원리(strong anthropic principle)와 약원리로 나뉘는데, 강원리는 존재 자체를 위해 자연의 원리가 정해지는 것이라고 보는 반면 약원리는 환경에 따라서 생명체가 생겨나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호킹은 우주가 오로지 인간에 적합하게 맞춤 제작됐다고 보면 변화는 전혀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더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호킹은 그러면서도 이런 우연한 발생이라는 개념은 오히려 이 세계가 신의 작품이라는 증거로 쓰이기도 했다고 이 책에서 밝힌다.

호킹은 또 우리가 지금 인식하는 우주는 존재하는 수많은 우주 중 하나라는 다중 우주(multiverse) 개념도 풀어낸다. “다중 우주론은 우리가 사는 우주가 누군가 설계라도 한 듯 잘 돌아가는 ‘미세 조정’의 기적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개념이 아니라 현대 우주론의 수많은 이론을 적용했을 때 실제로 도출되는 결과”라고 호킹은 강조한다.

호킹과 믈로디노프 박사는 이같은 우주론에 입각해 각 우주에는 저마다 다양한 역사와 상태가 있을 수 있고 그 가운데 극소수는 우리와 같은 생명체도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스티븐 호킹의 이런 주장을 담은 책의 발간으로 신의 존재 여부는 또 다시 세계적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가 신(神)이라는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촉발된 논쟁에는 전직 영국 왕립연구소장까지 가세, 한층 뜨거워졌다.

9월 12일 BBC방송에 따르면 영국 왕립연구소장을 지낸 수전 그린필드 옥스퍼드대 교수는 호킹에 대해 “마치 탈레반처럼 신을 쫓아내려 한다”면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며 호킹을 ‘탈레반’에 비유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주는 중력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라는 호킹의 주장에 유신론(창조론)자들이 일제히 격렬한 비난을 가하고 나섰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과학은 신을 불필요하게 만든다. 창조주의 도움 없이도 물리학 법칙들이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 과학이 신을 불필요하게(unnecessary) 만들 것”이라는 호킹의 주장은 창조론자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선전포고와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중력과 같은 법칙이 존재하므로, 우주는 무(無)로부터 스스로 창조될 수 있다. 신이 개입할 필요는 없다”는 호킹의 단언은 창조론 지지자들이 거품을 물게 하는 데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사망선고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창조론 지지단체인 리즌투빌리브(RTB) 학자들은 일제히 “스티븐 호킹 박사의 새 이론은 근본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근본적인 결함에 대해 “물리학이나 수학 법칙의 대체를 통해 신을 비인격적인 존재로 만든 것”이라고 지적하며 “정신과 영혼이 없는 물리학의 법칙은 다른 생물과 달리 인간에게만 있는 인격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RTB 학자들은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물리학의 법칙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이 스스로를 우리에게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조너선 삭스(커먼웰스연합히브리교인회 대표) 랍비는 “호킹 박사는 잘못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는 종교와 과학의 가치를 동시에 훼손하는 일”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호킹 박사는 지난 1988년 발행한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에서는 “우리가 하나의 완전한 이론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인간 이성의 궁극적 승리가 될 것”이라며 “그때를 위해서 우리는 신의 정신(mind)을 알아야만 한다”고 말한 바 있어 이번 파장은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

성공회 사제이며 세계 최고 권위의 신학자인 앨리스터 맥그래스(57)는 언론을 통해 “종교를 배격하는 과학은 맹목적인 신앙만큼이나 위험하고 악하다”면서 호킹 박사의 새 이론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과거 뉴턴이 ‘만유인력과 중력’을 처음 증명하고 인정받았을 때 많은 이들이 절대불변의 진리를 찾았다고 믿었다”면서 “시간이 흘러 현대 물리학자들은 그 뉴턴의 법칙에도 맹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다시 세워 진리를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물리학계는 이를 다시 뒤집고 있다. 호킹이 내세우는 이론 또한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과학적 신학’의 영역을 개척해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알리스터 맥그래스(57) 영국 킹스칼리지 교수는 12일 한 언론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물리학 법칙 자체가 무에서 유를 만들 수는 없다”며 ‘우주는 신의 창조가 아니라 중력 법칙으로 만들어졌다’는 스티븐 호킹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맥그래스 교수는 “중력 법칙이나 물리학 등은 어떤 조건에서 발생한 결과에 따른 설명일 뿐이지 법칙 자체가 특정 세계를 창조할 수는 없다”며 “이 같은 점에서 호킹은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주장해온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모든 자연현상에는 신의 존재 개연성이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호킹 역시 이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것이다.

신과 창조를 분리하는 내용이 포함된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라는 책을 낸 스티븐 호킹 박사는 현존 최고 우주물리학자, 21세기의 아인슈타인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의 화려한 이력은 그의 이런 주장이 상상 이상의 파괴력을 가질 수밖에 없게 한다.

영국 유력지 <더 타임스>는 이 책의 내용을 발췌해 소개하며 “신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제목을 달았다. 호킹 교수가 1988년에 내논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는 900만 부가 팔렸다. 이런 전력이나 호킹 교수의 비중으로 볼 때 『위대한 설계』도 과학계·지성계·종교계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킬 것이 확실하다.

파문은 이미 시작됐다. 미국·유럽의 주요 언론 중 일부는 호킹 교수가 우주 탄생에서 신이 한 역할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무신론으로 선회했다고 보도했다. 『시간의 역사』에서 ‘신의 마음’ 운운하던 그가 배신했다며 서운해 하는 기독교의 신앙인들도 있다.

창조론자들과 기독교인들의 반박과 비판으로 시작된 이른바 ‘호킹 파문’은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지난 10일 방송된 한 방송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68)가 “신학은 불필요하다”고 재차 선언했기 때문이다.

호킹 박사는 지난 10일 방송된 ‘래리 킹 라이브’에서, 『위대한 설계』란 책은 “우주와 그 우주 안에 있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폭넓은 그림을 제공하기 위한 시도”라며 이 책의 요점은 “과학은 왜 무 이상의 것이 존재하는지, 또는 왜 자연법칙이 지금과 같은지 등의 질문들을 신을 필요로 하지 않고도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왜 당신의 책이 사람들의 강력한 반응을 낳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킹의 질문에 “과학이 종교의 분야였던 질문들에 점점 더 대답하고 있다”며 “과학적 설명은 온전하며 신학은 불필요하다”고 밝혀, ‘신 불필요’에 이은 ‘신학 불필요’를 공개 거론했다.

호킹 박사의 이같은 주장들은 다윈의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생물학계와는 달리 그동안 신의 존재에 대해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 왔던 물리학계가 오랜 전통을 깨고, 본격적으로 무신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데서 그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만들어진 신』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 등 대표적인 무신론자들은 호킹 박사의 새 이론을 ‘물리학계의 진화론’에 비유하며, “호킹 박사가 물리학계의 신의 존재 논란을 결말지을 결정적 시도를 하고 있다”며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스티븐 호킹의 저서에 대한 국내 종교계의 반응은 아직 미미하다. 개신교 일각에서 우려와 비판이 섞인 보도가 간간히 터져 나오고 있는 정도다. 일반 언론에서는 해외 언론들의 움직임과 반응을 소개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불교계에서의 반응은 아예 없다. 물리학자이기도 한 박광서 교수(종교자유정책연구원 원장)가 최근 지인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간단하게 언급한 정도가 현재까지 나온 반응의 전부다.

박 교수는 이메일에서 “박사의 신간 『거대한 설계(The Grand Design)』가 화제군요. ‘우주는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으며, 신의 개입으로 이를 설명할 필요나 이유가 없다.’ 한마디로 우주 생성에 신이 차지할 자리는 없다고 단언한 것이지요.”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이어 “우주가 신의 손에 의해 창조되었고 지구가 인간을 위해 설계됐다고 주장하는 창조론자들이 열을 받은 모양입니다. 영국의 한 교수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고 쏘아댔다는군요. 맞는 말이네요. 그런데 오히려 유일신의 종교집단에게서 많이 느껴오던 바 아니던가요? ‘다른 것’을 ‘잘못된 것’으로 간주하여 잔인한 선악놀이에 빠진 진리주의자들 말입니다. ‘사람은 종교적 확신에 차 있을 때 가장 처절하게 만행을 저지른다’던 파스칼의 경고가 새삼 떠오릅니다”라고 덧붙였다.

한국 종교계 및 과학계, 언론의 반응 정도와 무관하게 이 책이 한국에 번역 출판되는 시점에서, 다종교가 공존하는 한국사회는 적지 않은 홍역을 치를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직접적인 관계가 있지 않더라도 불교계도 이 책의 내용을 분석하고, 입장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찰스다윈 탄생 200년 『종의 기원』발간 150년이었던 지난해에도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불교계가 세계를 논쟁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번 주장에도 침묵할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