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이일섭(이겸)이 오랜만에 사진전을 연다. 늘 진지한 이미지를 한 이일섭은 어떤 일 하나를 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다. 진지함이 지나쳐 과묵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씨익 웃는 미소가 해맑지 않았다면 그는 늘 고독했을 사람이다. 다행히 그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작가이고, 그래서 그의 주변에는 좋은 친구들이 많다.

아픈 기억을 묻고 미국에서 돌아와 그가 한 일은 어려운 지구촌의 어린이를 돕는 보살행이었다. 물에 뛰어들어 물질을 하는 해녀처럼 그는 그 일에 깊게 침잠, 몰두했다. 그것 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천생 사진가였다. 그의 사진이 이곳저곳의 사보나 잡지에 실리는 것을 보며, 그가 숨 쉬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안도의 숨을 쉬곤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사진전을 연단다.

형제의 연을 맺었으면서도 한 없이 무심하게 지냈던, 그래서 늘 한쪽 어깨가 무거웠던 일섭의 전화를 받으며, 나는 빚쟁이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는 궁금증에 조급한 마음이 일었다. 이번엔 일섭이 우리에게 어떤 세계를 보여줄까. 언제나 울림 큰 사진을 발표했던 그이기에 드는 일종의 두려운 기대감이다.

이번 사진전의 주제는 ‘더딘 대화, 경주’다. 경주 앞에 더딘 대화라는 제한적 형용구를 붙인 연유가 있을 것이다. 9월 7일부터 19일까지 열흘간 서울 통의동 류가헌(3호선 경복궁역 3,4번 출구. 02-720-2010)에서 열리는 이번 사진전은 우리나라의 고도(古都)다운 고도, 경주를 주제로 했기에 더욱 특별하다. 그는 전시회 안내 팜플렛에 이렇게 적었다.

“시인 정일근은 ‘경주에서는 두 발이 가장 밝은 눈이며, 신라를 보는 가장 밝은 렌즈’라고 했다. 이일섭의 사진이 오롯이 그러하다. 서울에 터를 두고 살아가는 사진가 이일섭은 오랫동안 경주를 가고 왔다. 매달 반 이상을 경주에서 지낸 해도 있었다. 물론 ‘사진을 찍으러’ 갔다. 그러나 찍을 수 없었다. 조급한 마음으로는, 경주 땅의 곳곳에서 천년을 갈다듬어 전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냥 걸었다. 걷고, 걷고.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질 무렵에야 경주의 언어가 들려왔다. 더디게 대화가 시작됐고, 더디게 이어졌다. <더딘 대화, 경주>는 바로 그 대화의 결과물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넘쳐흐르고, 사진 찍기가 일반화된 이 시기에, 사진은 진정 어떤 것인가, 어떻게 폐부를 찌르는 울림을 찍어낼 수 있는가를 알게 할 전시회다. 우리 미디어붓다 독자들께서도 부디 시간을 내어 전시장을 찾아주시기 바란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