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가 현대사회를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지도,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고민을 해결해주지도 못한다는 지탄을 받는 경우가 행여 있다면, 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역사의식의 빈곤이 아닌가 한다.”
동국대 사학과 김상현 교수가 한국불교의 역사관 부재에 일침을 가했다. 지난 3월 31일 삼성뮤지엄아카데미(SMA)에서 행한 ‘불교의 역사관’ 주제의 교양특강에서 김 교수는 불교의 근본교리 중의 하나인 무상을 제시한 후 “한국의 불교사도 변한다. 신라 및 고려시대의 영광이 있었는가 하면 조선시대의 수모가 있었다. 미래에 전개될 한국불교사의 방향은 오늘 우리들의 부단한 정진 여하에 달렸다. 역사란 예정된 코스를 가는 것이 아니며, 업력에 의해 발전할 수도, 쇠퇴할 수도 있을 뿐이다. 자각 있는 행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불교역사학자인 김상현 교수의 이 같은 지적은 법정 스님의 숭고한 입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청량한 반향을 일으킨 한국불교가 입적 채 1주일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봉은사 직영전환으로 빚어진 갈등으로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고, 또한 4대강 개발 등에서 불교적 세계관으로 사태를 바라보지 못하는 종단 집행부의 빈곤한 역사의식이 지적되고 있는 시점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김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불교의 역사관은 신을 중심으로 하지도 혹은 인간만을 그 대상으로 하지도 않는다. 수없이 다양한 세계와 중생들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한 송이 국화꽃이 피어나는 것도, 소쩍새의 울음과 먹구름 속의 천둥, 그리고 간밤에 내린 무서리 등의 수많은 사건의 연속이며 영향임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화꽃이 피는 것이 단순한 신의 섭리가 아니라, 신의 신비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는 사건이나 행위, 혹은 영향력의 집합에 의해서 한 송이 국화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중생들의 집합적 카르마, 즉 공업에 의지하여 역사는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역사의 이해에 있어서, 전체와 부분 중에서 전체를 강조하고 이를 내세우면, 사회주의에서 보는 것처럼 전체주의적 경향으로 흐르게 되고, 반대로 개인적인 것만을 강조하다보면 그 반대의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고 전제한 김 교수는 “그러나 역사를 불교적 입장에서 보면, 화엄의 육상이론에서 제시한 것처럼 사회와 개인은 전체와 부분을 상화 조화롭게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제 시대에 작고 초라한 스님 한 분과 군수 한 사람이 낙산사에서 만났다. 한용운과 최린이 그들이다. 두 분은 친했고, 3·1운동을 주도한 혁명아들이었다. 한 분은 최후의 일각까지 투쟁했고, 한 사람은 마음을 바꾸었다. 한용운의 인격의 향기는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풍기는데, 한 사람은 이미 향기가 없다.”
한용운과 최린의 예를 들어 역사에 대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김상현 교수는 개인은 개인인 동시에 전체인 점,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역사의 혼탁한 강물에 분연히 맞서 그 물이 흐르는 방향을 돌리고 역사의 새로운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과거 잘못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참회가 있어야만 한다”며 “이것이 곧 역사적 반성”이라고 강조했다.
김상현 교수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불교인은 과거에 매달리지도, 미래에 끌려가지도 말아야 한다며 불교에서 주장하는 지금 여기(Now and Here)가 중요하며, 이것은 ‘자각으로 오늘을 사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각으로 오늘을 사는 것은 곧 늘 깨어있음을 의미한다”고 부연한 김 교수는 초기경전인 <염처경>의 한 구절을 설명하는 것으로 강의를 마쳤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걸어가면서는 나는 걷고 있다고 알고, 서 있으면서는 나는 서 있다고 알고, 앉아 있으면서는 나는 앉아 있다고 알고, 누워 있으면서는 나는 누워 있다고 안다. 또 그의 몸이 다른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던 간에 그 자세대로 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아갈 때에도 물러갈 때에도 자신의 행동을 잘 알면서 행하는 사람이며, 앞을 볼 때도 뒤돌아 볼 때도 잘 알면서 행하는 사람이며, 구부릴 때에도 펼 때에도 잘 알면서 행하는 사람이며,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잘 알면서 행하는 사람이며, 대소변을 볼 때도 잘 알면서 행하는 사람이며, 걸으면서 서면서 앉으면서 잠들면서 잠을 깨면서 말하면서 침묵하면서도 잘 알고 행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