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종교적 열광성은 사유의 논리성을 지운 상태에서의 감정적·맹목적 신앙에 기인한다. 기독교의 광란적 신앙형태는 이 대표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인의 감정적 단순성(낭만성)과 논리적 사유의 무지와 흑백적 선명성과 순수성에 대한 열광과 유관해 보인다. 이런 감정적 단순성과 논리에 대한 무지가 가져오는 열광의식이 한국적 쏠림현상을 초래한다. 한국의 열광적 쏠림현상은 한국인의 집단적 무의식으로서의 무교(巫敎)적 신바람(神明)현상과 직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요즈음 불교와 노자를 공부하며 마음의 평안을 갖고 살아간다는 철학자 김형효 교수(서강대 석좌교수)가 한국인의 열광주의 심리현상을 철학적 관점에서 진단하고, 한국사회는 기독교적 맹신주의에서 벗어나 보다 고급스런 사유의 차원으로 옮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3월 18일 열린 <불교평론>-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가 주관하는 열린논단에서 ‘불교의 철학적 중요성’을 주제로 발표하는 자리에서다.
김 교수는 “한국인의 신바람이 광란과 격정으로 치닫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 격정적 신바람 현상은 가브리엘 마르셀이 경고한 ‘추상의 정신(Mind of Abstraction)’과 유관하다”고 분석했다. 추상의 정신은 과격한 단순판단에 의한 이데올로기의 극성이며, 지금도 한국사회에 좌우의 이데올로기, 민주화 이데올로기 등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극성이 만연하고 있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이런 한국인의 독특한 경향은 때때로 엄청난 에너지의 고양을 폭발시키기도 하지만, 반드시 조절되어야 할 심각한 현상이기도 하다고 김 교수는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런 열광주의적 심리현상을 진정시킬 진정제로서 불교의 호흡법과 참선법은 매우 유효하며, 불교 철학과 문화는 매우 훌륭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즉 이분법적 도식과 적대감정의 극복방안으로 선명성 대신에 이중적 애매성을 논리로 하는 실상적 존재의 상호얽힘, 즉 연기의 법을 생활로 하는 것이 매우 적절한 처방전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연기의 법은 원효대사가 강조한 동이론(同異論)의 사유를 단가적인 동일론의 사유를 대신하는 사상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즉 기독교의 동일론에 대한 불교의 동이론의 사유를 매우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형효 교수는 또 서양의 지능적 논리에 대해 불교의 본능적 논리를 우리나라에 적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서양의 논리가 개념적이고 원자론적이며 지능적인 일직선의 사유인데 반하여 불교의 논리는 반(反)개념적이고 卍자처럼 쌍방의 얽힘을 동시에 바라보는 야생적 사유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야생적 사유는 인류학적 용어로 레비스트로쓰가 말한 신석기시대 인간의 기본적 사유에 해당한다. 즉 대대법적 사유로서 인류가 모든 것을 대칭적 관계로서 보았던 사고방식을 일컫는다.
김 교수는 최근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해사건을 놓고 본능적 충동에 의한 살인 등의 표현을 쓰고 있지만, 그것은 본능이 아닌 비뚤어진 인간 지능의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동물의 교미와 인간의 섹스가 다른 것처럼, 본능은 살고자 하는 힘으로 선악을 벗어난 것이며, 사람에게 본능의 기능이 거의 약화되어 본능의 힘만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면서 그 자리에 지능이 들어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즉 동양의 사고는 야생의 사유이며, 융이 말한 대극적 사유이지만, 서양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단가적 사유인 원자론적 진리의 의미로 전혀 그 방향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즉 인류 역사의 진행은 지능의 논리, 즉 본능이 지워지고 지능이 승승장구하는 그런 방향으로 추진되어 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불교의 사유 논리는 이 지성(지능)의 진행방향과는 정반대로 역추진한 상태의 논리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능의 사고논리와 다르다고 해서 논리가 없다고 봐서는 안 된다며, 특히 선가의 반논리적 언어는 지능의 사유방식을 부정하고 해체하기 위함이지 무논리성을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즉 일부 선사들이 불교, 특히 선을 이야기할 때 논리를 초월했다느니, 초논리라느니 따위의 말을 삼가야한다는 것이다.
불교는 지능의 철학을 멀리하고 본능의 철학을 가까이 했으며, 선명한 지능의 논리와는 달리 애매모호한 본능의 논리를 기본으로 삼는다고 거듭 강조한 김형효 교수는 원효의 동이론, 즉 나는 나이기도 하고, 나 아니기도 한, 나는 타자의 타자라는 논리가 현대 한국사회의 지능적 격정주의를 해소할 대안이라고 제시했다.
“천재는 본능적 직관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강조한 김 교수는 “오늘날 우리나라는 본능을 예리하게 키워주는 교육이 필요하고, 하이데거나 데리다, 화이트헤드 등과 같은 철학자들이 주도하는 현대철학도 아(我)중심에서 벗어난, 즉 ‘I think∼’에서 ‘It think∼’로 바뀐 것”이라고 소개했다.
“현대 서양의 철학 사상은 2천년 동안 서양을 지배해온 택일적 논리주의와 형이상학적 절대주의를 인간의 망상으로 생각하고 그 신화적 망상을 해체하려는 사유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한 김 교수는 “서양에서 일어난 해체주의가 오래된 동양의 불교와 노장적 사유와 대단히 유사한 대목을 지니고 있다”고 소개했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한국에서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기독교의 신앙제일주의는 대단히 유치하고 숙고할만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지적한 김 교수는 “(한국에서) 지금은 단세포적 개체사상, 택일적 도덕주의, 신화적 절대자의 사고를 불식해야 한다.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선언이 오늘날 한국에서처럼 긴급동의로 다가오는 곳은 없다”고 강조했다.
<불교평론>은 이날 김형효 교수의 주제발표문을 완성된 논문으로 정리해, 다음호에 게재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