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문화재청은 한국문화재조사기관협의회에 의뢰하여 4대강 주변에 대한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기간은 2009년 1월부터 2월까지였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조사였지만, 그 결과만으로도 엄청난 양의 문화재가 매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밀발굴조사를 할 경우 얼마나 많은 문화유산이 나타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제발 문화유산의 보고, 4대강을 그대로 놔두라.”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이 점차 노골화·본격화하는 현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중단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설마했던 4대강 사업의 예산이 통과되는 등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데 대한 절박감에서다.
“문화재위원회를 개발 정책의 거수기로 전락시켜 마구잡이식 난개발을 추진한다면 4대강 주변의 문화재 및 우리나라의 문화재가 눈앞에서 사라질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지적한 황평우 소장은 “4대강 사업은 환경 등 생태 문제뿐만이 아니라 소중한 문화유산을 다 훼손하는 엄청난 파멸공사”라고 강조했다. 황 소장은 특히 “4대강 사업으로 훼손되거나 파괴될 지역 중에는 신륵사나 왕흥사지 등 소중한 불교문화유산도 많이 포함된 만큼 4대강 사업 저지에 불교계의 적극적인 동참이 있기를 간곡히 요청했다.
황평우 소장의 4대강 사업이 반대 논리는 정연하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탄탄한 논리와 이론으로 무장한 시민운동가의 정당한 운동인 셈이다.
황 소장은 “구석기시대 후기에 해당되는 최종 빙기에는 해수면이 최대로 낮아지는 시기(최대 -180m까지)이고, 해수면이 급격하게 낮아짐으로써 하상(河床)도 동시에 깊게 패이면서 낮아지게 된다”며 “당시 사람들이 강가에서 생활하였다고 한다면, 결국 유적 형성면이 매우 낮다는 것이고 그것들은 모두 깊숙이 매몰되어 지표에서 확인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또 하천 충적지는 선사시대 이래 사람이 살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충적지 전 지역에 걸쳐 대규모 유적이 형성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진주 남강댐 지역 등 여러 예가 그것을 증명함) 하상 정비지역 외에 주변 개발예정지(위락시설 등 다양한 형태)와, 접속도로, 골재 야적장 등 사업에 부수되는 거의 모든 예정지가 모두 문화재 조사 대상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평우 소장은 “기이 입수된 지표조사 목록으로 볼 때, 조사된 유적 전체의 수는 약 1,046개소(한강 282개소, 금강 192개소, 영산강 120개소, 낙동강 452개소)이며, 1,000개소 이상의 유적이 육안에 의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지표상에 드러나지 않은 유적을 감안한다면 그 수가 얼마나 될지는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외규장각 도서반환을 위해 앞장서고 있기도 한 황평우 소장은 마침 오늘(6일) 프랑스법원이 한국의 시민단체인 “문화연대”의 소송에 대해 소송 자격은 인정하였으나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대해서는 기각 판결을 한 것에 대응하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인터뷰 도중에도 시종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황 소장은 “항소 결정은 2달 이내이므로, 문화연대는 항소에 대해 법률단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외국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찾기 위해 정부가 아닌 시민단체가 앞장서 나서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수준과, 다른나라 문화재를 약탈해갔으면서도 내어주지 않으려는 프랑스의 태도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문화유산마저 파괴못해 안달이 난 우리 정부의 문화유산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살펴볼 수 있지 않느냐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유물은 그대로 두는 것이 최고의 보존방법”이라고 거듭 강조한 황평우 소장은 “이른바 4대강 정비 사업은 역사 왜곡이나 마찬가지이고, 그 이유는 문명의 보고라 할 수 있는 강 주변에 조사하고 발굴해야 하는 유적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4대강 문화재 조사가 처음부터 부실과 편법으로 얼룩졌다고 비판한다. 문화재보호법은 개발 공사를 하기 전에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고, 지표조사는 육상조사와 수중조사로 나뉘는데, 4대강 사업은 강과 관련한 사업이면서도 수중조사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파트 공사 현장 같은 데서는 문화재보호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문화재청이 4대강과 관련해서는 왜 이를 ‘탄력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황 위원장은 ‘나루터를 어떻게 수중이라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그나마 옛 나루터 140곳 중 수중조사를 실시한 나루터는 27곳에 불과하다며 문화재청의 해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학생시절 국사 시간에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 질문을 연구하다가 국사 상식에 해박해졌다고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갖게되었다며 문화재 운동에 투신한 동기를 설명하며 활짝 웃는 황평우 소장. 그는 그때 이후 죽 국사와 문화재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대학에는 입시 점수에 맞춰 관련 없는 학과에 들어갔지만 중간에 그만두고 독학을 통해 문화재 전문가로 이름을 얻은 후에 뒤늦게 고고미술사학과 편입생으로 들어가 공부를 마쳤다.
황 소장은 한때 대학로에서 인문사회과학 서점 ‘논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때도 역사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2005년에는 MBC <느낌표> ‘위대한 유산’에 출연해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환수운동을 벌이며 유명세를 탔고, 지난해 숭례문 화재 당시에 현장을 지키며 문화재 관리에 대한 정부의 소홀한 대책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국민적 인지도를 얻었다.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 진행 중에 있고, 요즘은 4대강뿐만 아니라 철거가 진행 중인 왕십리 안정사에서 마애불상을 발견해 세상에 알리고 보존을 위해 뛰어다니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환경재단에서는 얼마 전 이렇게 바삐 뛰는 그를 ‘2009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핏대를 올리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늘 연상시키는 황평우 소장이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으로 선정될 만큼 우리 사회가 왜곡되어 있다는 반증이다.
<4대강 사업 유역의 문화재>
‘투명사회정보공개센터’가 정보 공개를 청구해, 문화재청이 공개한 내역에 따르면 4대강 사업 예정지 주변에는 문화재가 총 243개 있다. 이 중 지정문화재가 94개, 매장돼 있는 문화재가 149개다. 강과 맞닿은 연접 지역의 문화재도 65개로 파악돼 있다.
황평우 위원장은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 영향을 받게 될 주요 유적으로 7개 문화재를 꼽고 있다. 보가 설치돼 수위가 상승할 경우 직접적으로 문화재가 훼손되거나 주변 경관이 변해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다. 유적지로 분류되지 않는 보의 경우도 문제다. 보는 대개 암반 사이에 설치되는데 이 암반이 기암괴석 등 명승지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강 유역에는 유네스코에도 등록돼 있는 영릉(사적 제195호)이 있다. 문화재청은 여주보가 능 뒤쪽에 설치될 예정이어서 전체 경관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밝혔지만, 문화재 접근에 있어 앞뒤의 경관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황 위원장의 설명이다. 유네스코도 최근에 유적지 자체 못지않게 문화 경관을 중요시하는 편이다.
광주미사리선사유적(사적 제269호)과 신륵사(보물 제180호)도 물이 지반으로 침투하면 유적지의 보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남한강 유역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유적인 중원탑평리7층석탑(국보 제6호)은 이미 훼손 상태가 심각하기 때문에 조금만 변화가 있어도 유적지로서의 권위를 잃을 수 있다.
낙동강 유역의 도동서원(대구 달성군 사적 제488호)은 조선시대 서원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유적지다. 수중보가 준설될 경우 인근 강물의 오염이 염려되는 지역에 자리잡고 있어 서원의 환경 보존 역시 장담하지 못한다.
금강 유역의 공산성(사적 제12호) 역시 공주보가 설치되면 수위 상승으로 성벽과 전각에 영향을 끼칠 위험이 있다. 백제의 국찰로 이름난 왕흥사지(사적 제427호)는 입구가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물이 지층에 침투되면 제 모습을 지키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