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은 언제나 신선하다. 불교계에서는 그동안 몇 번의 논쟁이 있기는 했지만 생산적 논쟁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다.불교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불설/비불설 논쟁’과 요즘도 진행 중인 ‘사띠’의 ‘마음챙김’ 번역의 적정성 논쟁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그 논쟁은 논쟁의 과정에서 초기불교나 남방 수행법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부수적 효과를 거두었음에도 본격적인 교학적 논쟁이라고 평가하기에는 표피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경상대 권오민 교수가 동국대 김성철 교수의 불교학 이해와 기술방식에 정면으로 시비를 걸고 나섰다. 이 논쟁이 또 하나의, 아니 본격적인 불교학계의 뜨거운 논쟁으로 이어질 지 새해 벽두부터 흥미진진해진다. 두 교수 다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는 불교학계의 고수들이 아닌가. ‘인간학과 고전학이 스미고 퍼지는 인문학계간지’를 표방하는 <문학 사학 철학<span style="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지난해 >2009년 겨울호(제19호)에 게재된 권오민 교수의 ‘선전과 구호의 불교학을 비판한다’는 제목의 기고논문을 요약해 소개한다. <편집자>
권오민 교수는 비판논문의 프롤로그에서 지난해 <불교평론> 창간 10주년 기념으로 열린 ‘문명사적 대전환, 불교가 대안인가’라는 타이틀로 개최된 심포지엄을 통해 김성철 교수가 발표한 ‘진화론과 뇌과학으로 조명한 불교’의 결론 부분을 그대로 인용 게재했다. 권 교수는 김 교수가 이 논문을 통해 다윈의 진화론을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이라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로, 뇌과학(신경의학)을 기계적인 유물론으로 비판하고, 이와는 별개의 존재라는 식(識)과 자유의지에 의한 윤회를 논증하고서 ‘뇌의 허구를 폭로하는 반야중관학’이라 이름하며 내린 결론에 대해서 이렇게 비판의 이유를 기술하고 있다.
“필자(권 교수)는 진화론이 과연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인지, 뇌과학이 다만 유물론인지, 혹은 이것과는 다른 논리라는 윤회와 그 극복을 제시한 초기불교의 가르침이나 ‘아비달마 교학을 단칼에 쳐버린’ 반야중관학이 문명사적 대전화의 시기의 불교적 대안인지, 어떻게 대안이 되는지 판단할 능력이 없으며, 판단할 생각도 없다. 다만 한 불교학도로서 불교학을 이해하고 기술하는 김 교수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 비판적으로 논의해보고자 한다.”
‘아비달마 교학을 단칼에 쳐버린 반야중관학’이란 표현이 아비달마 교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못내 거슬린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적 비판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는 논쟁이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아비달마 불교가 우리나라 불교학 현실에서 차지하는 초라한 위상에 대해, 대승출현을 정당화하기 위한 희생양으로서만 논의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안타깝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불교학계가 적어도 특정의 종학을 지향하는 집단이 아니라 객관적 ‘진실’ 내지는 ‘사실’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면, 이 (아비달마)불교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을지언정 타기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역설한다. 다만 자신이 추구하는 종학을 드러내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그럴 경우 불교는 오로지 악의적인 구호와 선전의 대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며, 자신이 추구하는 종학 또한 그 같은 범위를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권 교수는 대승학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아비달마 불교에서 왜 실유(實有)와 자리(自利)를 주장하였던가? 다만 소승이기 때문인가? 혹 다수의 대승교학자들 중에 이에 답할 수 있는 자 있을까? 그들의 실유론은 다만 우리가 아는 대로 소박한 실재론 정도이고, 자리는 이기주의 정도이던가?”
권 교수는 “‘아비달마 불교의 교학은 이론위주-이론을 위한 이론-번쇄한 공리공론’이라는 이 불교에 대한 부정적 언사는 이제 바야흐로 김성철 교수에 의해 ‘치심(癡心)의 번뇌만을 더하는 난삽한 교학’으로 대체되었다.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그같이 말한 것인가?”라고 따져 묻는다.
볼륨이 커서 난삽한 것인가?라고 되물은 권 교수는 세친, 중현의 비판과 논의는 결코 난삽하지 않으며, 도리어 너무나 공교하고 치밀하여 아둔한 머리로 따라 잡기 어려운 것이 문제라고 ‘난삽’이란 표현에 대해 강하게 반박한다.
‘무엇인가?’ ‘어떠한가?’ ‘어떻게 이루지는가?’ 등 시종 물음으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글쓰기 방식으로 자신의 지론과 반론을 제기한 권 교수는 “외계대상과 마음과 인식의 발생, 나아가 인간행위 등에 대한 탐구를 다만 ‘난삽한 것’이라 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나아가 유부에서 분별한 제법(75법)을 100법으로 확장시켜 이를 가유로 여기고, 여기에 다시 식전변이라는 별도의 이론을 더하고 있는 유가행파의 교학은 얼마나 더 난삽한가?라고 반문한다.
권 교수는 “김교수가 ‘반야중관학에서는 언어로 표현된 불교의 가르침 모두가 허구일 뿐이라는 반야경에서의 선언을 치밀한 분석을 통해 논증한다’고 하였는데, 그 논증은 단순명료한가, 난삽한가?라고 묻는다. 또 답에 앞서 ‘언어로 표현된 불교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힌다.
권 교수는 이어 김 교수가 발표한 논문을 넘어, 김성철 교수의 불교학 이해에 대해서도 비판의 필봉을 휘 두른다. 김 교수의 불교학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그에 따른 신심은 누구도 근접을 불허하지만,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비판에 나서는 것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권 교수가 제일 먼저 문제로 삼고 나온 것은 김성철 교수의 가언명제를 통한 윤회에 대한 논증 부분과 윤회에 대한 현대 불교학의 흐름에 대한 비판적 견해 부분이다. 권 교수는 윤회에 대한 김 교수의 입장을 ‘도를 넘어선 극언’, ‘듣기 민망한 언사’, ‘단정적 자문’, ‘매우 성급한 일’이라며 호되게 비판한다.
권 교수는 나아가 김교수가 ‘믿음을 위한 불교학’, ‘깨달음을 위한 불교학’이 되기 위해 적극 주장하는 세 단계로 구성된 체계불학은 멀리 갈 것도 없이 아비달마 불교 전통상에서 논의된 불학이 아니냐고 묻는다.
권 교수는 ‘초기불교는 단순명료하다’는 것은 환상이며, 대승이 부파불교를 소승으로 폄하하게된 이유인 두 가지, 즉 실유화 자리는 왜곡된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권 교수는 김성철 교수가 ‘불교사를 관통하는 일미성(一味性)이 부정된다면 불교는 독립된 종교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하고 조직신학에 비견되는 ‘체계불학’을 제안하였지만, 혹 일미성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통일왕조시대나 근대 일본의 국가주의의 산물은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어 권 교수는 ‘치심의 번뇌만 더욱 증장시킨 난삽한 아비달마 교학을 단칼에 쳐버리는 것이 반야중관학’이라는 설명을 과연 누가 일미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의로 인정할 것인가?라며 ‘일미성’에 대한 시시비비를 따져 묻는다. 권 교수는 결론으로 ‘종학이든 교학이든 구호와 선전은 학(學)이 아니다’라는 말로 비판의 대미를 마무리한다.
이제 문제는 이에 대해 김성철 교수가 과연 응답을 할까라는 것이다. 4일 <미디어붓다>와의 통화에서 김 교수는 일단 자신의 응용논문에 대해 관심을 갖고 비판을 해준 권 교수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교수는 또 권교수의 비판 글을 이미 읽어보았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권 교수가 자신의 응용논문의 내용만을 문제 삼고 있고, 정작 ‘12연기설’에 대한 논문 등 본격 논문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어 교학적 대응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응용논문이란, 대개 어떤 결론을 내어놓고 써 들어가는 방식의 논문이므로, 각자가 보는 입장이 다를 수 있으므로 반드시 대응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는 견해다. 읽는 이가 그렇게 보면 그렇게 보는 것일 뿐이라는 뜻이겠다. 김 교수는 권 교수의 비판의 요지는 어떻게 그렇게 불교를 이렇다라고 단정해놓고 논지를 펼 수 있느냐는 것인데, 그것은 ‘응용불교 논문’이 갖는 특성, 나아가 불교학에 대한 각자의 이해의 문제로 본다고 언급했다.
아무튼, 일찍이 한국 불교학계에서 불교학자 사이의 이처럼 단호하고 신랄한 비판은 보기 어려웠다. 권 교수의 비판에 대해 김 교수의 응답이 나올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많지 않으나 모처럼 불교학의 고수들이 벌이는 용호상박을 새해 벽두부터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가슴 설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