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 스님과 불자들이 함께 단체로 영화구경을 가는 절이 있다. 영화구경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정기적으로 가는 곳은 거의 없다. 문화적 소양이 탄탄한 스님을 주지로 두고 있는 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대구 송현동 보성선원이 그런 절이다. 이 절의 주지인 한북 스님은 지난 11월 18일 174명이나 되는 지역 어르신을 모시고, 대구시 중구 동성로에 있는 한일극장을 찾았다. 흔치않은 광경에 사람들은 저마다 호기심 어린 눈길로 이 일단의 행렬을 지켜보았다.

이날 한북 스님이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고른 영화는 세 대통령의 사생활에 촛점을 맞춘 코믹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송현동 보성선원 주위에 사시는 어르신들은 관광버스 2대를 타고 모처럼 영화 나들이에 나섰다. 60세 이하 참가자들은 대중교통 등을 이용해 개별적으로 모였다. 한북 스님이 이 행사를 계획한 이유는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웃과 소외된 연령층에게 대중문화를 접하게 하고 향유하게 함으로써 행복감을 느끼게 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고자 함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어르신들의 체온을 재어서 신종 플루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자원봉사자들이 먼저 영화관에 도착하여 신종 플루를 예방하기 위해 손세정제로 세척하게 하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참가자 전원에게 일회용 마스크 지급한 것은 물론이다.

“안녕하십니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이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께서 이미 아시겠습니다만, 지난 봄에 이 영화관에서 ‘워낭소리’를 단체 관람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여러분께 1년에 두 번 영화를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오늘 신종플루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낭낭한 목청의 한북 스님 목소리가 몹시 쉬었다. 의아해 하는 어르신들에게 스님이 설명을 이어간다.

“제 목소리가 많이 쉬었죠? 원래는 제 목소리가 꾀꼬리 같이 예뻤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지난 12일날 대학수능시험이 있었지 않습니까? 제가 지난 수능 백일기도를 직접 했었는데,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목이 쉬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으시면 제게 말씀하십시오. 제가 기도 전문가니까 여러분을 대신해서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목탁 쎄게 치면서요.(웃음) 여러분이 훗날 극락가실 때도 제게 부탁하시면 곧장 극락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웃음) 보성선원은 이처럼 도심에서 사찰로서의 기능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한북 스님의 유머가 깃든 인사말에 저마다 요절복통이다.

영화 관람을 마친 어르신들의 표정은 저마다 환하고 밝다. 지역주민을 위한 사찰, 중생을 위한 불교, 군림하지 않고 하심하며 봉사하는 수행자상을 절 인근 마을에 심어가고 있는 보성선원의 변화는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처음 출발지까지 어르신들을 모셔다 드린 한북 스님과 스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어르신들의 미소가 보성선원 법당의 부처님을 꼭 빼닮았다.

지난 3월 25일, 200명이 참석한 제1회 단체영화관람에 이어 두 번째로 영화감상을 실시한 보성선원은 앞으로도 1년에 2회 단체 영화관람을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