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화두(無字話頭)는 간화선의 주창자 대혜종고가 강조한 후 수많은 불자가 참구해왔다. 특히 무문혜개의 공안집 ‘무문관’에서 무자화두를 공안의 제1칙으로 제시한 후로는 무자화두는 간화선의 대표격이 되었다. 근세 선승 경허와 용성, 만공, 한암선사도 모두 무자화두를 참구한 분들이다. 그러나 무자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인 동시에 필수 참고사항인 ‘무자화두십종병(無字話頭十種病)’에 대한 고찰은 매우 미흡하다.

무자화두십종병은 유무(有無)와 관련된 것, 사량분별심 즉 지해병(知解病)과 관련된 것, 문자선 공안선과 관련된 것, 무사선(無事禪) 묵조선과 관련된 것, 조사선의 작용즉성(作用卽性)에 대한 경계, 깨달은 척 겉 넘는 행동에 대한 경계, 미혹한 채, 또는 대오선(待悟禪)과 관련된 병통 열 가지를 말한다. 하나 같이 참선공부에 요긴한 내용들이다. 이는 대부분 무자화두 뿐만 아니라 모든 화두에도 적용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한국불교 간화선 전통은 화두만 주었지, 그 공부과정에서 나타나는 병통, 즉 선병(禪病)에 대해 소홀히 해왔다. 이것은 혹시 참선공부를 제대로 하는 풍토가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온다.

윤창화 민족사 대표가 ‘한암사상과 조계종의 정체성’을 주제로 열린 5월 7일 오후 1시부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발표한 ‘무자화두십종병에 대한 고찰’의 논문을 통해 선병 무관심에 대한 한국 선문의 해태함을 비판했다.

윤창화 대표는 “대혜종고가 경전과 교학을 비판한 것은 당시 선불교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부득이한 것이었지만 그 후유증은 오히려 대혜종고가 간화선을 주창하던 당시보다 문제가 훨씬 크다”며 “특히 오늘날 간화선 중심의 한국 선불교를 본다면 무지선(無知禪)이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대표는 “경전과 교학을 무시, 경시, 비판해야 돈오한 것으로 인식되는 이상한 왜곡현상은 지나친 경교비판의 산물”이라며 “이것은 대혜종고의 본의는 아니지만 그와 간화선자들의 과오”라고 지적한다.

윤 대표는 또 “(대혜종고 이후) 모든 선승들이 다투듯 언어문자와 지식, 지성을 부정, 경시, 무시한 나머지 간화선은 점점 무지선으로 흐르게 됐다”며 “지나친 문자선과 공안선에 대한 비판이 결국 선불교 스스로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윤 대표는 특히 “선어록이나 공안집도 『대혜어록』과 『무문관』을 정점으로 더 이상 이렇다 할 어록과 공안집을 볼 수 없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며 “이것이 대혜종고의 본의는 아니지만 그와 간화선자들의 과오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학술세미나에서 신규탁 교수(연세대)는 한암 스님이 승려들의 본분사로 제시했던 참선, 염불, 간경, 의식, 가람수호 등 ‘승가오칙(僧家五則)’을 중심으로 조계종의 정체성에 대한 역사적인 검토와 미래적인 대안을 모색을 촉구해 눈길을 끌었다. 신 교수는 “한국불교는 선과 염불과 간경이 종합적으로 솥의 세 발처럼 조화를 이뤄왔다”며 “이 같은 역사적 상황에서 선종을 표방한 현실에 휘둘리지 말고 간화 수행과 정토 염불과 화엄교학을 저마다의 인연에 따라 하나 또는 겸하여 전수하는 풍토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조계종이 강하게 선종을 표방하면서도 그 상징적인 사찰인 조계사에서는 천도재 등 온갖 염불종의 행위를 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비판하고, “선종이면 선종 제종통섭이면 제종통섭의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주문했다.

동방대학원대 교수 인경 스님은 한암 스님의 어록 중 백미로 꼽히는 ‘선문답 21’조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한암 스님이 보조지눌과 나옹 스님 등 전통적인 한국 간화선 전통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 선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광식 부천대 교수도 ‘한암의 종조관과 도의국사’라는 제목을 발제를 통해 근현대 한국불교에서 도의국사를 종조로 내세워야 한다고 최초로 주장한 인물이 한암 스님이라는 점에 착안, 한암 스님의 종조관을 집중 분석했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는 탄허 스님에 결사운동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통해 탄허 스님의 일생이 정통이나 주류의 계보 밖으로 행군하여 그러한 정통과 주류의 계보사 속에서 빛을 상실해 버렸던 샛별의 빛을 찾아내고, 바라보고, 그 빛을 지켜가고자 했던 철인의 삶 바로 그것이었음을 밝혔다.

이날 세미나는 논평자들의 ‘까칠한’ 토론이 함께해 시종일관 뜨거운 열기속에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