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에 가야총림을 처음 열었을 때의 일입니다. 첫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어서 감자를 심을 때였습니다. 해인사 본절과 선방 스님네들 사이에서 서로 거름으로 쓸 똥을 더 가져가겠다고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스님네들은 이렇게 살았습니다.

보성 스님의 법문집 『나에게 가는 길-청소(淸素)』에 나오는 ‘똥싸움’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뒷방에 호젓이 계시다 누가 부르면 마지못해 나오는 듯 하면서도 반갑게 미소짓는 할아버지 같은 스님. 호되기로 유명한 송광사 수련회에서 눈물 섞인 밥을 먹고 있는 이들에게 밥 많이 먹고 힘내서 공부 제대로 하라고 다독여주는 인심 좋은 스님.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보성 스님은 언제라도 어깨를 토닥여줄 것 같은 할아버지 같은 스님이다.

하지만 스님은 모든 것을 그렇게 다독이고 보듬기만 하는 이는 결코 아니다. 스님의 눈에 비친 한국불교는 청소(淸掃)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사찰 곳간에 곡식이 넘쳐나고, 스님네들은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버둥댄다. 스님이 50여년전 해인사 똥싸움을 이야기한 것도 그 때문이다. 똥 몇덩어리를 가지고 싸우던 절집이 이제는 부처님오신날 등값으로 몇억, 몇십억, 심지어 몇백, 몇천억 운운하는 곳이 되었다.

여기에다 스님은 한 마디를 덧붙인다.

“당장 밥 한그릇 못얻어먹고 쫓겨나더라도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요즘 부처님오신날을 보면 꼭 자기 아비, 자기 할아비 생일 팔아먹는 형국입니다. 내가 중이 된 것도 부처님 덕인데 아무리 절 살림이 어렵더라도 찾아오는 신도들한테 밥 한 끼라도 따뜻하게 대접해드릴 수 없을까 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이러한 어른이다 하는 말을 들려줘야 합니다. 그런데 등값이 얼마나 들어왔나 따지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어요.”

스님은 불자들에게 방생도 그렇게 하려면 하지 말고, 천도도 하지 말라고 한다.

“천도 중에서 가장 큰 천도는 내가 나를 천도하는 것입니다. (중략) 죽은 뒤 자손으로부터 천도받을 일이 없도록 오직 진실되어 부족함이 없는 진실불허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천도입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 놔주고, 그것도 하룻밤 내내 애를 먹이다가 몇백 리 밖에 풀어주고는 다음 날 허연 배를 하늘로 드러내고 둥둥 떠다니게 하는 방생이라면 안 하는게 낫습니다. 참으로 고약스럽고 민망한 일입니다. (중략) 미물이라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생명이 있으면 구제해줘야지, 어떤 경우에도 다른 생명을 해치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이 간절하다면 그것이 바로 방생입니다.”

보성 스님을 떠올리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이 개마고원보다 더 춥다는 1월의 다람살라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달라이라마의 법문을 듣는 모습이다.

법랍 20년만 돼도 다른 이의 법문 듣는 것을 은근히 자존심 상해하는 풍조에 아랑곳 없이, 송광사 방장이나 되신 분이 칠순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입술과 손이 새파래진 채 담요를 뒤집어쓰고 달라이라마의 입보리행론 강의를 1주일 넘게 듣고 있는 모습이란….

다람살라 속 스님의 모습은 불제자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해주는 말없는 법문 그 자체였다. 스님은 왜 그곳 다람살라를 찾아간 것일까. 한번도 듣지 못했던 그 이유를 책에서 비로소 발견했다.

“그는 어른 노릇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좋아합니다. 달라이라마를 처음 만난 건 1991년입니다. (중략) 첫 만남에서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라사에서 참 잘 쫓겨나셨습니다. 아니었으면 오늘 당신과 내가 어떻게 만날 수 있겠소. 모영감(모택동)의 은혜가 큽니다. 그래서 당신의 놀이터가 얼마나 넓어졌소.’ 달라이라마가 박장대소를 하더군요. (중략) 달라이라마는 세계인과 대화를 나눌 때, 일상적인 대화방법으로 상대방이 스스로 그 너머의 세계를 깨닫게 합니다. 일상의 언어로 부처님 법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한국불교에는 그것이 부족합니다.”

스님은 그 인연으로 티베트 불법을 전하기 위해 한국에 온 초펠 스님의 후원자가 되기도 했다.

“불법엔 차별이 없다 하지만 총림의 방장이라는 사람이 할 일이 없어서 티베트 스님들을 도닥거리는 건 아니었습니다. 우회적으로 한국불교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를 우리 스님네들과 신도들에게 일깨우려는 의도에서였습니다. 광성사에서 티베트 스님네들이 사는 모양새를 보면 우리네 절집이 잃어버린 것들이 그 속에 있습니다. 그들은 짜파티와 짜이를 손수 끓여먹고 삽니다. 그 모습을 보고 신도들이 자잔해서 도우려 해도 공양간에는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가끔씩 초펠 스님을 보면 이렇게 농을 하곤 합니다. ‘어이, 티베트. 좀 잘 해봐!’”

보성 스님의 법문집이 찬찬히 들여다보니, 보성 스님은 역시 보성 스님이었다. 효봉 스님의 손상좌로 살면서 스님을 직접 모시던 이야기, 물질이 넘쳐나는 한국불교에 대한 일갈, 후학들에게 절집에 사는 의미, 학문과 가르침에 대한 마음가짐들이 담담하고 간결한 언어로 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효봉 스님의 임종 장면을 묘사한 부분은 참으로 위대한 법문 중의 법문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 상좌들이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미화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건만, 스님은 효봉 스님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삶을 마감하는 그 장면을 담담하게 소개한다. 적어도 스님이라는 상에 대한 중생들의 무명(無明)을 덜어주기 위해서임을 어찌 중생인들 모르랴.

“효봉 스님을 두고 세간에서는 절구통 수좌니 하는 말들이 있는 모양인데, 나로서는 말 만들기 좋아하는 세간의 그런 호기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말을 해본 적도 없고. 오히려 나는 소변이 통하지 않아 고통스러워하시다가 피고름을 쏟으신 일이 더 생생합니다. (중략) 새삼스럽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사람들은 큰스님이네 도인이네 하면서 저 높이 올려놓고 신비화해 전설로 만들기를 좋아해요. 그러고는 자신들과 거리가 먼 초인으로 생각해버리고 맙니다. 그건 아니지요. 그분들도 한 인간으로 육체적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자신의 본분사를 지켜나간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중요한 겁니다. 만약 그것을 간과한다면 오로지 쉽게만 살겠다는 생각이지요. 비겁한 겁니다.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스님은 깨달은 자이기 이전에 불자들의 스승이요, 중생들의 표상이다. 그 길을 인도해주는 안내자이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스승이 어디에 있냐, 참된 삶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들에게 보성 스님의 『청소』를 권하고 싶다. 이 책은 깨달음을 좇는 이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참되고 가치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불교를 공부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힘내라고, 그래도 희망은 우리 안에 있다고 다독거리는 책이다.

스님은 ‘절집에 사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송광사가 1700년 승보사찰로 평가받는 이유, 일대사의 거처를 찬탄하는 이 시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