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의 명을 받은 제갈공명이 손권을 찾아가 오와 촉이 함께 조조를 치자고 제안하자, 손권의 책사들이 결사코 반대를 합니다. 그러자 손권이 칼로 탁자를 내리쳐 두 동강을 내면서 ‘그래도 하겠다’라고 결단을 내리죠. 그래서 벌어진 전투가 적벽대전이에요. 그 심정으로 시작했어요.”

이 비장한 각오를 던진 이는 다름아닌 동국대 김호성 교수. 최근 일본불교사연구소 개원을 앞두고 전한 이야기다.

인도철학을 전공한 불교학자임에도 최근까지 학술잡지 「일본불교사 공부방」을 6집까지 내고, 『일본불교의 빛과 그림자』라는 단행본을 발간한데다 1년에 한두 번씩 일본불교 순례단을 꾸려 현지답사를 해온 김호성 교수는 지인들에게 ‘일본불교 전도사’라 불릴 정도로 일본불교 전파(?)에 열심인 인물이다.

학자에게 굳이 연구가 아닌 ‘전파’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토록 일본불교 연구에 열심이건만 김 교수 스스로 ‘아직 아마추어’라 칭하며 ‘연구’라는 말을 붙이기를 쑥스러워 하기 때문이다. 김호성 교수가 일본불교사 관련 학술잡지를 발간하면서도 논문집, 연구논집이라는 말 대신 '공부방'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그러던 김 교수가 최근 일본불교사연구소를 열기 위해 연구위원과 편집위원을 구성하고 개원 기념 학술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사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사쿠라가 한창인 남산으로 기자를 데려간 김 교수는 『삼국지』의 적벽대전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손권이 탁상을 내리치는 그 심정으로 시작했다니까요. 내가 좋아서 하는 공부를 벗어나 힘든 처지에서 일본불교를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공부꺼리, 일꺼리를 줄 수 있겠다 싶더라구요. 불사를 해야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는 말씀이 그게 아닌가 싶어서 시작했어요.”

김 교수는 “사람들에게 일본불교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노력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끝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후배들이 일본불교 연구를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때가 된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일본불교는 불모지 그 자체이다. 한국인들이 아무리 하루키 소설에 열광하고, 일본식 패션, 일본식 술 문화에 열광한다 해도, 일본불교는 여전히 왜색불교, 혹은 불교의 아류 쯤으로 천시되고 있다. 한국인이 일본에 지니고 있는 편견과 콤플렉스의 극점에 불교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불교학자들 중 일본에서 나온 논문이나 저술을 거치지 않고 박사논문을 쓸 수 없을 정도 일본 불교학은 세계의 선두에 서있다. 일본의 불교의례, 교학, 신불사상 등 세부적 내용에 대한 편견과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일본은 한국불교학이 넘어서야할 커다란 산임에 분명하다.

김호성 교수는 이 사실을 수년전 일본 유학을 할 당시 뼈저리게 느꼈다고 고백했다. 1년간 교토 불교대학에서 수학한 후 귀국한 그는 곧바로 「일본불교사 공부방」이라는 소간행물을 펴내기 시작했다. 이 작은 잡지에는 일본 불교학의 동향, 일본 불교학자의 연구방법론, 일본불교문학이나 불교영화에 관한 소논문들이 국문과 일본어로 소개됐다. 순수하게 일본불교 만을 소재로 간행된 국내 최초의 잡지였다.

공부방이 6집까지 나오는 사이 한국에서도 일본불교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에서 ‘한중일 삼국의 근대불교’를 중점연구 사업으로 채택하고, 일본에서 일본불교를 전공한 학자들이 하나둘씩 귀국하면서 일본불교 연구가 조금씩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일본불교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만한 학자군이 형성된 데 고무된 김 교수가 드디어 ‘칼’을 빼든 것이다.

일본불교사연구소에는 김호성 교수를 비롯해 민족사 윤창화 대표, 동국대 신성현 교수, 황인규 교수, 불교문화연구원 원영상 연구교수, 고려대장경연구소 이연숙 연구원, 정우서적 이성운 대표 등이 연구위원으로 참여한다. 초대소장으로는 김호성 교수가 선임됐다.

일본불교사연구소는 산하기관으로 역경부, 연구부, 교육부를 두고 △일본 찬술 불전의 한국어 번역 및 한국찬술 불전의 일본어 번역 출판 △일본불교 외부 수탁 연구 및 각종 학술회의 개최 △논문집 「일본불교사 연구」연 2회 발간 및 등재학술지 추진 △연구 및 번역 활동과 장학사업을 통한 일본불교사 분야의 고급 연구인력 양성 △연구 및 번역 성과의 대중화를 위한 잡지 「일본불교사 공부방」 간행 △ 시민강좌 ‘한일문화교류아카데미’ 및 현지답사 ‘일본불교사 강좌기행’ 시행 등의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일본불교사연구소는 개원을 기념해 5월 23일 오후 2시부터 동국대 제3세미나실(문화관 2층)에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개원 기념 세미나의 주제는 ‘『겨울의 유산』(다치하라 마사아키)을 읽는다’이다.

이 세미나에서는 재일교포 작가이자 나오키상 수상자인 다치하라 마사아키의 자전적 소설 『겨울의 유산』을 동국대 국문과 박광현 교수와 동국대 일문과 강사 김종희 씨, 그리고 김호성 교수가 국문학, 일본문학, 불교학적 관점으로 재해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