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송에서 불교가 한창 융성할 때 신라와 고려의 국교는 불교였다. 이후 명나라에서 성리학이 융성할 즈음 조선왕조의 건국주체들은 성리학을 국교로 삼는다. 일제시대에 이르면 일본불교의 유입과 함께 당시 엘리트 출신들이 불교에 대거 입문했고 불교는 다시 제1종교의 자리를 차지한다. 해방 직후 미국의 영향이 강해지면서 한국은 기독교가 강세인 나라로 변모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기가 막힌 조합이다.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가 무엇인가에 따라 한국의 종교판도 또한 바뀌는 것이다.
불교평론이 주최한 제1회 열린 논단에 발제자로 참가한 동국대 김성철 교수는 이를 ‘한국 종교의 정치종속성’이라고 표현했다. 김성철 교수는 2월 27일 오후 6시 신사동 불교평론 회의실에서 열린 제1회 열린 논단에서 ‘한국종교의 정치종속과 불교의 미래’라는 주제로 발제를 하면서 ‘한국 종교의 역사성, 그리고 21세기 불교의 지향점’을 진단했다.
이날 발표에서 김성철 교수는 한반도의 상황을 사지를 네 마리의 말이 잡아당기고 있는 ‘거열형(거열형)’에 비유했다.
한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정치적 역학관계라는 상부구조의 지배를 받아왔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 세계에서 영토가 넓은 소련(러시아),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미국,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 해방 이후 북에서는 소련과 중국이 양팔을 끌어당기고 남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양 다리를 끌어당겼다. 그 결과는 허리가 끊긴 분단이었다. 이같은 사회구조는 종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김 교수는 “한반도 주변국의 물리적, 경제적 힘은 한반도의 종교 또는 이데올로기의 판도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며 “이를 좋게 말하면 정치종속성이지만, 신랄하게 말하자면 노예 습성”이라고 지적했다.
해방 직후 가톨릭과 개신교를 합쳐도 50만에 불과했던 기독교 인구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1000만을 넘어서게 된 현실은 단지 한국 기독교의 열렬한 선교활동만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미국과 같은 부강한 나라가 되고 싶다는 열망,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이 흘러넘치던 시기,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의 종교인 개신교에도 엄청난 환호를 던진 것이 이같은 종교분포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시기인 1960년대에 불교 또한 부흥의 불씨가 되살아난다. 불교대중화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대한불교청년회, 대학생불교도연합회, 삼보법회, 대원불교교양 대학의 창립 등이 연달아 창립됐다. 이때 청년포교의 일선에 나섰던 대표인물은 벨기에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기영 등 동국대 교수들이었다. 이들이 불교의 우수성을 일반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사용했던 논거 중의 하나는 ‘미국을 포함한 서양인들이 불교에 심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힘을 등에 업은 개신교의 공격으로 위축된 불교를 되살리기 위해, 포교 일선에 나선 불교학자들은 ‘미국을 포함한 서구의 힘’을 이용해 불교에 활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미국의 히피들은 ‘불교’에서 그들의 이상향을 발견했고, 인도의 요가 등 동양의 수행법에 심취했다. 현재 서구에서 불교학자로 활동하는 50~60대 노학자들 중에 히피운동가 출신들이 유난히 많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
미국 히피들의 불교 심취는 한국 불교에도 상당한 활력소가 되었다. 숭산 스님이 구미에서 기적과도 같은 포교 효과를 일으켰던 시기도 서구 젊은이들에 불교에서 종교적 대안을 찾던 때와 일치했다.
미국을 포함한 서구인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은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을 감동시켰고 60, 70년대에 포교일선에 나섰던 불교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1960년대 서구의 저항적 젊은이들이 그렇게 했듯이 산중의 큰스님들을 대중 앞에 모시면서 불교는 새로운 부흥기를 맞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불교가 살아날 길은 서구의 불교를 역수입하는 것일까. 아니면, 세계최강국이 될 중국과 결탁해 중국불교의 부흥을 도모할 것을 기다릴 것인가. 김성철 교수는 이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중국의 불교세가 강력해질 때 한국의 불교세력 역시 급성장할 것이고, 중국불교의 부흥을 위해 대만이나 홍콩 불교계와 공동의 노력을 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다. 또한 1960년대 이후 형성되기 시작한 미국과 유럽의 불교지도자들을 국내 불교포교 일선에 적극 활용해 아직도 서구를 흠모하는 많은 사람들을 불교의 품으로 불어들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있는 지금에서는 강대국의 힘에 의지한 포교전략만으로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수 있다.”
김성철 교수는 “종교가 정치에 종속되는 것은 대부분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공통현상이지만 명백히 예외적인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바로 ‘티베트불교’. “최근 서구에서 돌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티베트불교는 오로지 승가의 청정성과 교학의 설득력으로 서구인들을 불교에 심취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성철 교수는 “순전히 상부구조의 힘만으로 상부구조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며 “사회구성원들의 경제적, 물질적 제약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을 때는 이런 방식의 포교가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불교포교를 위한 정치역학적 전략이 보다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승가의 청정성 회복을 위한 불교 내부의 정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인간의 인지와 심성을 진정으로 성숙시키는 체계적인 교학이 고안되고 수행법이 제시돼야 한다”며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한(恨)이 풀린, 즉 금강경도 식후경이 시대가 지나고 더 나은 절경에 눈을 돌리는 시기에 접어든 지금의 우리 사회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서는 티베트 불교가 그렇듯이 다른 종교 이상의 절경을 제공해야 한다. 그것은 청정한 승가와 체계적인 교학”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불교가 세속법과 철저히 반대로 갈 때 엄청난 발전을 하는 것은 역사가 입증해준 진실”이라며 “사람들이 화장도 지우고 화려한 옷도 벗고 계급장을 다 뗀 채로 들어가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 불교가 될 때, 그리고 스님과 신도들이 상하관계가 아닌 존경과 신뢰의 관계로 갈 때 한국불교는 비로소 세상을 이롭게 하는 가르침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