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로 망명 50주년을 맞는 티베트 불교의 14대 달라이라마의 뒤를 이어 17대 카르마파 라마가 티베트의 차세대 지도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3월 2일자)가 보도했다.

티베트 불교 내 최대 종파인 겔룩파(派)의 수장이면서 사실상 티베트 전체의 정신적 지도자인 14대 달라이 라마는 올해 73세로 지난해부터 공개적으로 은퇴 및 후계자 지명 의사를 밝혀왔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전통에 따라 자신의 환생(還生)인 어린 후계자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교육시켜 15대 달라이 라마로 키우기까지는 20년 정도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이 기간 중 티베트 불교 지도부 공백을 메우고 젊은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인물로 올해 24세인 카르마파 라마가 부상하고 있다고 미국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3월 2일자)는 보도했다. 카르마파 라마는 티베트 불교 내 또 다른 종파인 카규파(派)를 이끈다.

‘티베트의 떠오르는 아들’로 불리는 카르마파 라마는 훤칠한 키(183㎝)에 준수한 외모를 갖추고 중국어와 티베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밤에는 한국어 공부도 하고 있다. 티베트 동부 산악지대에서 태어나 5세에 출가했고, 7세에 제17대 카르마파 라마로 결정됐다.

카르마파 라마는 또 중국 정부와 달라이 라마가 동시에 권위를 인정하는 티베트 내의 유일한 지도자다. 따라서 앞으로 중국 정부와의 정치적 갈등을 조율할 지도자로도 평가된다.

달라이 라마도 카르마파 라마에게 힘을 실어줘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 망명 정부에서 함께 외교 사절도 접견한다. 달라이 라마는 카르마파 라마를 “젊고, 에너지가 넘치고, 티베트에 대해 잘 안다”고 높이 평가한다.

한편 카르마파 라마는 달라이 라마 계승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는 태양이다. 아무리 많은 별이 빛나도 태양과는 비교가 안 된다”면서도 “별들이 뭉치면 태양의 힘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라며 말해 앞으로 집단 지도체제가 출현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제17대 카르마파의 중국 탈출기[한국판 뉴스위크紙에서 발췌]

달라이 라마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이 내세웠던 카르마파가 인도로 망명, 세상을 놀라게 했다. 8일간의 탈출과정을 취재했다.

인도령 히말라야 산맥의 산기슭에 위치한 규토 사원에는 경외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약 60명의 티베트 여학생들이 생불(生佛)을 알현하기 위해 모였다. 티베트인들이 불교 지도자를 알현하는 것이야 일상적인 일이지만 이 생불은 아주 잘 생기고 키가 훤칠한(1m83cm) 14세 소년이라는 점이 좀 이색적이다.

제17대 카르마파 라마(달라이 라마·판첸 라마에 이어 티베트 불교 지도자 서열 3위)인 이 소년은 최근 중국 통치하의 티베트로부터 탈출을 감행했다.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소녀들의 얼굴은 흥분으로 상기돼 있었다.

적갈색과 농황색의 법의를 걸친 카르마파가 인도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홀 안으로 들어오자 좌중이 술렁였다. 자리에 앉은 카르마파는 먼저 거기 모인 몇 명의 서양인에게 티베트 문제에 관심을 갖고 도와준데 대해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여학생들(그들 중 다수는 카르마파와 마찬가지로 티베트에서 탈출했다)에게 “조국을 잊지 말라. 티벳의 종교와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타일렀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확신에 차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카르마파의 설교는 티벳 성인(聖人)의 설교답게 온화했지만 그의 탈출은 중국 지도부에 대한 커다란 도전이다.

티베트인들은 부처의 여러 모습이 거듭해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따라서 중국의 지도층은 윤회의 전통을 조작해 자라나는 세대를 중국에 복종시킬 수 있는 티베트인을 라마로 내세우려고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1995년 중국 당국은 제11대 판첸 라마(현재 10세)를 납치한 후 다른 어린이를 직접 골라 ‘진짜’ 생불이라며 그 자리에 앉혔다. 카르마파 역시 중국 정부의 말을 잘 듣도록 교육받았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망명중인 달라이 라마의 권력을 견제하는 데 그를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 카르마파는 오히려 자유 티베트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을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카르마파의 마음을 사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월 3일 그가 인도 국경을 넘은 직후 그의 탈출 소식이 알려지자 논란이 분분했다. 중국 정부는 지금도 카르마파가 인도에 간 것은 그의 전신(前身)이 쓰던 악기와 신성한 검은 모자를 되찾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면서도 그가 곧 원래의 자리인 추르푸 사원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뉴스위크는 카르마파 및 달라이 라마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유를 향한 8일간의 극적인 탈출과정에 얽힌 새로운 이야기와 탈출동기를 취재했다.

망명 중인 티베트인들은 카르마파의 용맹스러운 탈출이 41년 전 달라이 라마의 고통을 무릅쓴 망명 과정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달라이라마의 망명정부내 소식통들에 따르면 카르마파는 1년 이상 탈출 준비를 해왔다.

중국 정부는 카르마파가 이끄는 카규派 종단이 문화혁명 당시 파손된 추르푸 사원을 호화롭게 보수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등 카르마파를 구슬려 왔다. 그러나 카르마파는 당국이 다른 라마들의 종교활동을 제한하고 있다는 소식에 점점 더 불안해졌다.

탈출 결심을 굳힌 것은 1998년 추르푸 사원에서 칼과 폭발물로 무장한 두 명의 중국인 침입자가 발견되고 나서다(런던에 있는 티베트 인포메이션 네트워크에 따르면 당시 카르마파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주궁(主宮)을 떠난 직후 한 수도승이 서재 바닥의 담요 밑에 숨어있던 암살 용의자들을 발견했다). 티베트의 소식통들에 따르면 침입자들은 카르마파의 암살을 위해 돈을 받고 고용됐다는 사실을 시인했지만 중국 당국은 그들을 풀어주었다.

카르마파와 가까운 한 소식통은 “카르마파를 해친 후 티베트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음모였던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카르마파는 중국 당국에 인도방문을 허가해줄 것을 누차 요청했지만 당국은 번번이 핑계를 대며 허가를 미뤘다. 당국은 또 그의 방문객 접견도 제한했다. 매일 오전 10시∼오후 2시에 해오던 방문객 접견 및 축복 시간을 줄이도록 명령한 것이다.

무엇보다 참기 힘들었던 것은 인도에 있는 그의 종교 스승 타이 시투 린포체의 티베트 방문을 금지한 것이었다.

1999년 12월 말 카르마파는 사원에 있는 중국 경비원들에게 특별 피정(避靜)에 들어갈테니 자신의 스승과 요리사외엔 아무도 방에 들여보내지 말라고 말했다.

12월 28일 경비원들이 TV를 보는 동안 카르마파는 청 재킷과 바지로 옷을 갈아입은 뒤 창문을 통해 침실을 빠져나왔다. 그는 두 명의 수행원과 두 명의 운전기사를 대동한 채 지프를 타고 국경으로 향했다.

그들은 네팔에 도착하자마자 중국 순찰병을 피하기 위해 차를 버렸다. 준비해간 식량마저 챙길 겨를이 없었다. 일행은 일주일 동안 산을 헤매면서 원시적 조건을 감수해야 했지만 음식과 돈 등을 제공하는 신도들의 도움이 끊이지 않았다.

카르마파와 그의 수행원들은 두 명의 카규派 라마승들이 빌린 헬리콥터를 타고 무스탕 지역 저지대의 험한 지형을 건넜다.

카르마파가 인도에 도착했다는 소식은 달라이 라마에게조차 놀라온 소식이었다.

그는 자신의 차로 카르마파를 데려왔다.

옆에 있던 사람들에 의하면 그들은 만나자마자 “마치 아버지가 오랜 이별 끝에 사랑하는 아들을 만난 것처럼” 따뜻한 포옹을 나눴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카르마파를 위해 따뜻한 옷을 준비했다.

그의 발은 물집이 잡혔으며 손에는 긁힌 자국이 있었고 장밋빛 뺨은 부르터 있었다. “그의 정신은 아주 맑고 강인하다”고 달라이 라마는 그의 새 제자에 대해 말했다. “그는 제대로 훈련을 받고 정진한다면 분명히 커다란 공헌을 할 인물이다.”

전세계 티벳인들은 그의 탈출 소식에 깜짝 놀랐다. 얼마 전 카르마파의 오랜 정신적 스승인 타이 시투 린포체의 본거지인 인도의 셰라블링 사원에서는 며칠 뒤 그곳을 방문할 카르마파의 영접 준비로 부산했다.

라마승들이 망명지에서의 카르마파 즉위식을 위한 길일(吉日)을 달력에서 찾는 동안 인도 정부의 정보요원들은 사원 내 고용인들에게 보안상의 주의점을 알려주었다.

인도·네팔로 망명한 승려들과 티벳 불교신자들은 17대 카르마파의 정치적 역할 전망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그가 현재 64세인 달라이 라마의 사후 잠정적인 지도자가 되리라 믿는 사람들도 있다.

컬럼비아대학의 티베트 전문가 로비 바닛은 카르마파의 탈출을 “정치망명사상 가장 흥미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반면 베이징(北京)의 공산당 관리들은 경악했다.

중국 당국은 1992년 추르푸에서 가진 17대 카르마파의 즉위식 이래 그를 애지중지해 왔다. 1994년 당국은 그와 유목민 출신 부모에게 한 달간 사치스런 중국 일주여행을 시켜줬다.

상하이(上海)에서는 그를 위해 쇼핑 잔치를 벌였고, 장난감 세례와 또다른 향응 세례를 베풀었다 (어린 카르마파는 특히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트럭에 푹 빠졌다). 이 소년 생불은 장쩌민(江澤民) 같은 지도자도 만났는데, 그는 어린 라마에게 “너는 자라서 티벳의 번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 17대 카르마파는 분명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다만 장쩌민이 바랐던 것과는 방식이 다르다는 데 문제가 있다.

Sudip Mazumdar(뉴델리지국 기자)*Melinda Liu(베이징 지국장)

*카르마파는?

지난 1985년 동부 티베트 지역의 유목민 가정에서 출생한 제17대 카르마파는 5세 때 출가해 스님이 됐다. 카르마파가 세인의 이목을 끈 것은 2000년 1월 5일 망명과 함께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부터다. 세계의 유력 언론들은 만 14세인 카르마파가 새 천년이 시작되기 사흘 전 소수의 수행원과 함께 중국의 통치를 받고 있는 티베트를 탈출해 히말라야를 넘어 다람살라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티베트를 벗어나기 전 카르마파는 중국 정부에 의해 티베트 불교 4대 종파 중 하나인 카규파의 최고 지도자로 추대됐으며 달라이라마 역시 그를 17대 카르마파로 인정했다.

카르마파는 티베트 불교의 최고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의 강력한 압력에 시달렸다. 중국 정부는 그에게 인도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설립한 달라이라마를 공개 비판할 것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중국의 요구를 거부해 온 카르마파는 티베트를 뒤로하고 망명길에 올랐고, 다람살라에 도착한 후 달라이라마의 보호를 받고 있다. 이후 그는 달라이라마의 배려로 다람살라 남부에 있는 ‘규토 모나스트리(사원)’에 머물게 되었다.

인도 정부는 그가 불교 성지 순례와 티베탄 불교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카르마파가 머물고 있는 사원에 30여명의 경찰을 상주시켜 중국의 암살이나 납치 등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15∼6세기 경 카규파를 크게 중흥시킨 초대 카르마파는 겔룩파에 의해 티베트 불교의 지도적 위치에서 밀려나기 전까지 350여년간 티베트 불교를 이끈 최고의 스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