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왕과 같아 모든 것을 통솔한다. 마음은 원수와 같아 온갖 고뇌를 불러일으킨다. 마음은 모래로 쌓아올린 집과 같아 무상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생각한다. 마음은 쉬파리와 같아 더러운 것을 깨끗한 것으로 생각한다. 마음은 낚싯바늘과 같아 괴로움인 것을 즐거움으로 생각한다. 마음은 꿈과 같아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처럼 생각한다. 마음은 적과 같아 항상 약점을 기뻐하며 노리고 있다. <보적경 가섭품>

마음, 모든 사람의 화두다. 마음공부를 중심으로 하는 불교에서는 더욱 그렇다. 마음에 관한한 어떤 견해나 학술적 주장들이 비상한 주목을 받는 것은 마음이 차지하는 절대적 비중 때문이다.

정승석 동국대 교수는 그의 명저 『인간을 생각하는 다섯가지 주제』에서 마음을 일러 ‘나와 세계의 조작자’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책에서 정승석 교수는 말한다. 사실 누구든지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을 ‘식’이라는 마음이 지어낸 헛것이라고 믿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굳이 그렇게 믿어야 할 필요도 없고, 꼭 그렇게 믿어야 한다고 누가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이 우리를 고통의 세계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일이라고.

마음이란 것은 매우 오묘하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며 아주 근원적인 문제인 탓에 이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붙이기가 여간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학자들은 그 주의주장이 학문적 성과에 직결되는 것이어서 더욱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평생을 공부해도 알기 어려운, 마음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언제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마음에 대해 어느 고승이, 어느 학자가 어떤 말을 했는가를 공부하는 이들이 마치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두리번거리며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에는 서양에서 뇌에 대한, 또 마음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면서 마음에 대한 규명작업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곧 깨달음조차 비컨대, 시티촬영이나 각종 검사와 같은 것으로 검증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이런 차에 최근 동국대 불교학과 고영섭 교수가 ‘마음에 대한 고찰’이라는 주제의 글을 인문학계간지 「문학 사학 철학」신년(1,2월)호에 발표했다. 마음의 본질에 대해 얼마만큼 깊고, 예리하게 통찰했는지의 여부를 따지기 전에 마음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우선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영섭 교수가 왜 ‘마음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되었는지를 그의 글 서두 ‘문제와 구상’에서 설명한다. 고 교수는 먼저 마음에 대한 불교의 전통적 이해에 대해 서술한다.

“불교전통에서는 우리 인식의 기반을 흔히 심․의․식으로 설명하고, 이 심의식은 각기 제8식인 아뢰야식(저장의식)과 제7식인 말나식(사량의식) 그리고 제6식인 요별경식(분별의식)으로 해명하고 있다. 그리고 구역 유식의 ‘인식(인식(認識))’과 달리 신역 유식의 ‘전변(전변(轉變))’을 기반으로 하는 「성유식론」에서는 이들을 각기 초능변과 제2능변과 제3능변으로 해명되고 있다.” “이들 의식은 ‘전식득지(轉識得智)’의 수행에 의거하여[轉識] 전5식, 제6식, 제7식, 제8식의 유루(有漏) 의식을 넘어서서 성소작지, 평등성지, 묘관찰지, 대원경지의 네 무루(無漏) 지혜로 탈바꿈한다(得智). 특히 무루의 지혜는 자성청정심이자 법계체성지인 불심(佛心)과 불지(佛智)가 된다. 이러한 구도는 일심(一心)과 출전(出纏), 및 재전(在纏) 여래장(如來藏)과 아뢰야식과 긴밀하게 상응하고 있으며 아뢰야식이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으로서 이해될 때는 다시 제9 아마라식이 상정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고영섭 교수는 “때문에 미혹의 윤회를 벗어나 깨침의 증득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심, 즉 마음 개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요청된다.”

고 교수는 자신의 본격적인 마음고찰에 앞서 마음의 어원을, 찌따(citta), 즉 마음의 주체인 심왕과 마음의 작용인 심소법의 총칭으로서의 개념과, 흐리다야(hrdaya), 즉 신체의 심장이라는 개념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리고는 마음에 대한 과학적, 물리학적 접근이 흐리다야, 즉 심장의 개념으로서의 마음에 한정되어 있음을 밝히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어 마음에 대한 역사적 전개와 텍스트별 용례를 근본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 중국불교, 한국불교 순으로 고찰했다. 고 교수는 여기서 승랑, 무상, 원효, 지눌, 태고, 나옹, 휴정, 경허, 용성, 만해, 성철 의 마음전개를 차례로 점검하며 소개한다. 원효의 일심(一心), 지눌의 진심(眞心), 휴정의 선심(禪心), 경허의 조심(照心), 성철의 돈심(頓心) 등으로 한국의 유수한 불교사상가들의 ‘심’에 대한 사상적 지형도를 정리한 고영섭 교수는 이어 맹자와 순자, 주희, 육구연, 왕수인 등 중국의 인접 학문에서 보고 있는 마음에 대한 개념까지도 살핀다.

고영섭 교수의 마음에 대한 고찰은 훈고학·서지학적 범주를 벗어나 현대과학 분야까지 그 영역을 확대한다. 고 교수는 현대의 일부 학자들이 마음을 “정보를 수집처리 보관하는 뇌의 고등 기능”(이영돈, 『KBS다큐멘터리 마음』)으로 규정하고 있다거나, 최근의 여러 연구결과가 ‘마음은 뇌의 어떤 활동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며, 뇌가 없으면 마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고 소개한다.

“마음이란 것은 신경세포들이 회로를 구성할 때 회로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들이 신호를 주고받는 시냅스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최근 과학계의 주장을 인용한 고영섭 교수. 그는 “그러나 현대 과학의 힘으로 마음의 정의와 특성이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한다. 마음이란 여전히 물리적인 실험을 통해 도출된 결과로서만 설명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음은 과학적 기호나 수학적 수식만으로는 온전히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 고영섭 교수는 “과학적 노력에 의해 심장으로 규정되는 ‘흐리다야’에 대한 분석은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아직은 ‘찌따’에 대한 정의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논문을 마무리했다.

고 교수의 이 논문은 과학으로 설명될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과 연구가 한국불교에 주어진 시대적 화두일 수밖에 없다는 문제 제기에 다름 아니다. 그것도 학계를 향한 문제 제기라기보다는 마음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마음 수행자들에 대한 촉구라고 해석된다. 고 교수의 이번 문제 제기에 대해 불교계는, 마음공부를 하는 수행자들은 어떤 답을 내놓을지, 아니면 묵묵부답으로 넘어갈 지 그 향배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