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가 백제 무왕의 왕후에 의해 창건됐음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유물이 발견됐다. 이 유물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서동과 선화공주의 존재를 입증하는 증거가 될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계기가 될 것인지 관련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 보수정비를 위한 해체조사 과정에서 백제 왕실의 안녕을 위해 조성한 사리장엄을 발견했다고 19일 밝혔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에는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창건하고 기해년(639, 무왕 재위 40년)에 사리를 봉안하여 왕실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백제 무왕의 치세가 600년부터 641년임을 감안할 때 기해년에 재물을 희사한 왕후가 무왕의 부인인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봉안기에는 왕후가 ‘백제 좌평 사택 적덕의 딸’이라고 기록돼 있어 설화 속의 선화공주와는 다른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에는 백제 무왕이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와 결혼해 미륵사를 창건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동안 백제사 연구자들은 서동과 선화공주의 설화가 동성왕, 무녕왕대, 혹은 법왕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다양한 해석을 내려왔다. 하지만 이번 사리기의 발견으로 무왕 즉 법왕 40년인 639년에 미륵사가 창건됐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더구나 이 기록은 『관세음응험기』에 “백제 무광왕이 재위 40년에 지모밀지로 천도해 새로운 절(精舍)을 하나 세웠다”는 기록과도 완벽하게 일치하는 내용이다.

미륵사지와 관련된 대부분 기록들의 특징은 대부분 무왕과 더불어 왕비의 존재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사리기에서는 왕비가 직접 재물을 보시해 절을 지었다는 기록이 나타나고 있으며, 왕비가 백제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기록까지 상세하게 기재돼 있다.

그동안 신라사학계에서는 선화공주가 신라 진평왕의 딸이라는 설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을 내려왔다. 진평왕의 셋째 딸을 역사적 기록에서 찾아볼 수 없고 당시 신라와 백제간의 정치적 상황으로 볼 때 선화공주는 진평왕의 딸이 아니라 백제 접경 지역 신라 호족의 딸, 혹은 백제 지방귀족의 딸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들이 제기돼왔다.

이번 사리봉안기의 발견으로 무왕의 왕비가 사택 적덕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선화공주가 신라 진평왕의 딸이 아니라는 학설에 더욱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1월 14일 1층 심주(心柱) 상면(上面) 중앙의 사리공(舍利孔)에서 금제사리호(金製舍利壺)와 금제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 은제관식(銀製冠飾) 등 유물 500여점을 수습하였는데 1월 19일 오후 2시에 익산 미륵사지 현장에서 공개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금제사리호가 사리장엄의 핵심으로 사리공 중앙에 모셔져 있었으며 높이 13㎝, 어깨 폭 7.7㎝의 작은 병 형식이며 보주형(寶柱形) 뚜껑을 덮었는데 X선으로 내부를 투시한 결과 내외함(內外函)의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금제사리봉안기는 가로 15.5㎝, 세로 10.5㎝ 크기의 금판(金板)에 음각(陰刻)하고 주칠(朱漆)하여 글씨가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하였는데,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喜捨)하여 가람(伽藍)을 창건하고 기해년(己亥年, 639년)에 사리를 봉안하여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사리봉안기의 기록은 미륵사의 창건목적과 시주(施主), 석탑의 건립연대 등을 정확히 알려주고 있어 백제사 연구에 커다란 획을 긋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미륵사지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은 다른 사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다양한 종류가 일괄로 출토되었고 가공수법도 정교하고 세련되어 국보급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국보급 유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이번 사리장엄의 발견으로 미륵사 창건에 관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기록의 정확성이 입증되었고 백제석탑의 사리봉안 기법과 의례를 새로이 밝힐 수 있게 되었으며, 매납(埋納)된 유물의 절대연대 확정을 통해 동시기 유물의 편년(編年)이 가능해졌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조사는 무령왕릉 발굴과 능산리 금동대향로 조사 이래 백제지역 최대의 고고학적 성과로 판단된다”며 “이를 바탕으로 백제문화 연구는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연구소 측은 향후 수습된 유물을 보존처리한 후, 심층조사하고 그 결과를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연구자와 일반인에게 공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