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나요.”

우주를 여행해본 비행사는 우주에서 바라본 작고 푸른 지구의 모습을 평생토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엄마는 아기가 처음 세상에 나와 자신과 마주하던 순간을, 홀로 남겨진 자는 떠난 이의 마지막 미소를, 군대간 아들은 자신을 보내놓고 몰래 울음을 터트리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여행자는 자신을 끌어안아준 낯선 거리의 풍경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그림으로 옮겨놓는다면 어떤 풍경이 그려질까. 아트포럼 뉴게이트에서 1월 31일까지 ‘이미지에 말걸기(Compelling Images)’ 혹은 ‘사로잡는 환영(幻影)’ 전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그 풍경을 소재로 열리는 전시이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느끼고 있는 현실이 환영(幻影)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지금 내 손에 닿는 키보드, 내 귀에 들리는 음악소리,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 환영에 불과하다니,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다.

불교의 설명인 즉, 그들은 모두 순간에 존재하는 무상한 존재이며, 그것이 고정되고 영원할 것이라 믿을수록 우리는 더욱더 깊은 고통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지금 느끼고 음미하는 모든 것들은 환영의 연속들이다.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는 순간 그것은 사실과 동떨어진 존재가 되는 것이리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기억의 파편들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삶의 동력으로 삼곤 한다. 그것은 중생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러운 유랑일 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가들은 조순호, 오우암, 정석희, 공성훈 등 호소력 짙은 작품들을 주로 발표해온 작가들이다.

오우암 작가는 한국전쟁 전후의 암울한 시절의 우리네 사는 모습과 시대상을 반복해서 화폭에 담아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오우암 작가의 절실한 영상은 작가에게는 상처에 대한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관람객들에게는 몇십 년 전의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면이다.

사람들로 붐비는 철도역 풍경, 유랑극단이나 악대가 손짓하는 저녁의 극장 주변, 철길에서 새벽에 통학열차를 기다리는 학생들,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억센 몸짓이 보이는 인물들이 빽빽한 화면을 나이브 아트의 순수하고 단순한, 그러나 깊이 있는 유화의 붓질로 감상할 수 있다.

정석희 작가는 그가 오랫동안 생활한 뉴욕시 주변의 숲, 뉴욕의 건물들, 그 안에 사는 왜소하고 힘든 삶의 인물을 밀도 있는 묘사력으로 섬세하면서도 강한 기억으로 남는 작품을 보여준다. 그에게서 방안에 놓여 있는 소파와 그 소파에 앉아있는 길게 늘어진 인체, 창밖의 도시풍경은 인간의 원천적일 수도 잇는 깊은 고독과 인간 간의 소통의 단절을 전해주는 작품들이다.

공성훈 작가는 서울이라는 대도시 근교의 여러 생활상에 주목했다. 대도시의 보조역할을 하는 주변도시의 역할과, 인공으로 조성된 만들어진 자연의 형태의 기이함에 우리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가끔 그가 그려주는 이상적인 장면은 온 가족이 석양을 함께 맞는 호수공원, 야간 조명을 받아 명징하면서도 고요한 눈 온 풍경, 물 위에 심어진 조경석(造景石)과 멀리 보이는 다리 등, 현대 도시생활에서 보이는 인공물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주목한다. 강한 색채의 대비, 빛과 대상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전시는 일요일과 구정연휴를 제외한 나머지 날에 이루어지며,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진행된다. 금요일은 7시, 토요일은 5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02)517-9013 www.forumnewgate.co.kr

조순호 작가는 강한 에너지로 빠른 속도로 긋는 짙고 굵은 붓이 이루어내는 꽃, 새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수많은 파지를 낸 끝에 한두 점 건지는 수묵작업의 에너지로 그가 주는 새 또는 꽃의 이미지는 강한 힘을 전하며 뇌리에 오래 남는 이미지, 간결하지만 대상과 여백과의 힘겨루기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