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번 하고자 하는 일은 그 누가 반대하고 막아도 하고 마는 성정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출현해서 못하게 한다면 그만두지만 그렇지 않고는 지금까지 중도에 폐한 일은 없었다.”

전 조계종 총무원장 고산 스님이 회고록『지리산의 무쇠소』를 출간하며 스스로를 평한 이 말은 가히 무쇠처럼 단단했다.

승랍 60년, 이판과 사판을 넘나들던 스님이 그 간의 출가생활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제29대 조계종총무원장, 조계종 초대 호계원장, 쌍계사 조실, 조계종 5대 중앙종회 의원 등 역임, 범어사, 해인사, 직지사 등에서 안거 성취, 청암사와 범어사에서 강사로 활동, 최근에는 전계대화상 추대까지, 그의 삶은 한국불교 현대사를 축약해 놓은 작은 역사책이었다.

고산 스님은 불교정화운동이 한창이던 1950년대 선방에만 틀어박혀있던 스님들은 의식에 젬병이라 비구승만 살던 범어사에는 쌀이 떨어져 애를 먹는 일이 생겼다고 술회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120명의 대중들이 절을 나와 사방으로 떠돌아다녔다고 기억을 풀어놓기도 했다.

또 해인사 강원 찰중 소임을 맡게 되면서 학인 스님들이 경망스럽게 장난치던 악습을 폐지하기 위해 컴컴한 지대방에서 학인인 척 중앙에 앉자 어둠에 가려 찰중 스님인줄 모르던 학인들이 걸리적거린다며 걷어차고 등줄기에 주먹질을 하기도 했으며 모진 소리를 하기도 했다. 학인들이 나중에 지대방에 있던 이가 누구였는지 자신들끼리 이야기했지만 학인 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서야 찰중 스님인 줄 알고 전전 긍긍했지만 고산 스님은 그들에게 아무런 징계도 훈계도 없이 무언(無言)으로 그들을 교화했다. 이런 연후에야 생활이 조심스럽게 바뀌며 해인사 학인들의 장난치던 악습이 사라졌다고 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해인사에서 공부하던 중 범어사에 소장 중인 화엄경을 빌리고자 했으나 총무 스님의 전횡으로 책을 빌리지 못해 총무 스님을 구타한 일이 있었다. 이일로 범어사 젊은 스님들이 고산스님을 두들겨 패서 내쫓으려 하자, 스님은 “끝까지 용서가 안 된다면 좋다. 내 스스로 나갈 터이니 누구든지 내 몸에 손대는 사람은 제삿날인 줄 알라”고 호통 쳤다고 한다. 스님은 이일로 산문송출 당했지만 우룡 스님 등 도반들의 구명운동으로 징계를 면할 수 있었다.

고산 스님은 70년대까지 초까지 18안거를 성취하며 수자로서 수행에 전념해왔다. 이렇듯 수행에 전념하던 스님은 1972년에 조계사 주지 소임을 맡으며 사판으로서의 역량도 발휘하게 된다. 이후 은해사, 쌍계사 주지 등을 역임하고 중앙종회 의원 등을 지내기도 했다.

종단사태가 있었던 1998년과 1999년 당시 총무원장을 역임하며 98년 종단사태를 수습한 장본인이었지만, 책에서는 이 부문에 대해 간략히 서술해 아쉬운 면은 있다.

하지만 불교정화운동이 한창이던 50년대 그리고 60년대의 힘들었던 절집 풍경과 80년대 이후 사찰의 불사가 활성화되고 이를 후원했던 이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큰 수확이다. 또한 2000년대의 변화된 절집 풍경까지 보너스로 얻을 수 있다.

이밖에도 책에는 스님을 스님이 되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는 어머니의 죽음 등 출가 전 어린 시절 스님의 모습도 소상히 적혀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헤맬 때 스님의 아버지가 범어사 동산스님에게 데려갔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동산 스님의 말에 승려 생활을 열심히 해보겠노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고산 스님은 수행으로 또한 행정으로 한국불교 근현대사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2008년 10월에는 전계대화상으로 추대되어 율에 있어서의 권위까지 인정받았다.

선과 교와 율을 아우르며 60년을 수행자로 살아왔으며 사판으로 넘어가 행정력까지 인정받은 고산 스님.

막을 자가 정말 부처뿐일까? 조계종출판사 한 관계자가 스님에게 “회고록에 거론된 사람들을 실명(實名)으로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그러자 스님 曰, “걱정하지마라. 내가 다 책임진다.”

소띠해가 열리자마자 맨 먼저 출간된『지리산의 무쇠소』에서 한국불교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무쇠처럼 단단하고 소처럼 우직하게 살아온 한 스님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조계종출판사/ 612쪽/ 2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