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논객, 박노자 교수(오슬로 국립대·한국학)가 이번에는 불자들의 눈길을 확 끌어당기는 글을 썼다. 시사주간지 <한겨레 21> 제740호(12월 22일자)에 연재하고 있는 ‘박노자의 거꾸로 본 고대사’ 란에서 ‘고대는 남근석의 나라’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대승불교에 음부 숭배가 끼어들다’는 소제목이 달린 글을 기고한 것이다.

대승불교에 음부숭배가 끼어들었다? 독자, 특히 불자들의 시선의 붙잡는 제목이 아닌가. 불사음(不邪淫)을 기본5계 중의 하나로 정할만큼 사음에 관한한 엄격한 계율을 갖고 있는 불교가 음부 숭배를 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제목이란 게 본래 시선을 끌려는 의도가 다분히 포함된 것이니 뭔 이야기를 써 놓았나, 서둘러, 찬찬히 읽어보았다.

‘선덕여왕 옥문곡 설화와 지증왕의 음경 자랑…성리학적 엄숙주의가 성을 지우고 동방예의지국을 덧씌웠네’라는 부제를 단 이 글은 ‘거꾸로’라는 관점에 걸맞게 파격적이면서도 신선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 마디로 고대사회의 성적 개방성을 배우라는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방불케하는 엄숙주의보다 차라리 고대사회와 같은 성적 개방성이 건전하고 비폭력적 ·양성평등적 성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글의 골자다.

박노자 교수가 이런 글을 쓴 배경은 “한국 종래의 개방적인 성 풍속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해신당(海神堂)과 남근석의 나라를 ‘동방예의지국’으로 강제로 바꾸려는 성리학과, 한국의 문명개화 시대에 새로이 수입된 개신교와 혼합된 성리학적 엄숙주의의 승리가 대한민국의 개방성을 가로막았다”고 진단한다. 오늘날의 왜곡된 성 인식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 이렇게 역사적 근거를 가진 일종의 과보라는 해석이다.

“세계의 어느 원시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원시시대의 한반도에서 성기숭배는 다산·풍요 신앙의 골자가 되어 깊은 뿌리를 내렸다”고 전제한 박노자 교수는 “인간 집단의 미래를 보장하는 번식은 어디까지나 여성의 성기가 좌우하기에 남근과 여근 사이의 차별은 없었다”고 강조한다.

박 교수는 ‘생명을 이어주는 신성한 여근’을 간접적으로 등장시키는 <삼국유사>의 설화들을 대승불교의 음부숭배의 근거로 제시한다. 가락국의 신화적 시조인 김수로왕에게 아유타국에서 시집왔다는 허황옥이 김해의 별포나루에 도착하자마자 맨 먼저 입고 있던 바지를 벗어 산신령에게 바쳤다는, 즉 성기를 노출해 과시했다는 ‘가락국기’를 비롯해, 원효 스님이 관음성지 낙산사로 가던 중 관음보살의 화신인 한 여성의 생리 피가 묻은 옷을 빨고 있던 물을, 그가 관음의 화신인지 모르고 거부했다는 이야기(낙산이대성 관음 정취조신), 노힐부득의 암자에 임신한 여인으로 화한 관세음보살이 찾아와 출산하고 목욕한 뒤 자신이 목욕한 물을 이용해 노힐부득의 성불을 도왔다는 이야기(남백월 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 등을 소개한다. 또한 ‘삼소관음 중생사’의 이야기, 즉 중생사라는 절의 관음보살상을, 중국 황제 애첩의 초상화를 그릴 때 황제만이 아는 배꼽 밑의 붉은 점을 우연치 않게 그려 황제의 노여움을 크게 산 적이 있는 한 귀화인 화가가 그렸다는 전설을 제시하면서 ‘여성 배꼽’과 ‘관세음’을 연결시킨다. “현실세계 속에도 부처님 세계의 종자인 불성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대승불교가 긍정하기에 성 숭배가 불교 신앙 안으로도 스며들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박노자 교수다운, 거꾸로의, 전혀 다른 관점으로 사료를 읽을 때 비로소 눈에 뜨일 수 있는 내용들이다. 이런 주장이 학술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알 수 없지만 박노자 교수의 뒤집어 보는, 엉뚱한, 독특한, 고정관념을 벗어낸 관점과 해석이 놀랍고 푸릇하다. 역사도 해석의 관점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벤처의 한 분야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하는 대목이다.

박노자 교수는 (오늘의 한국사회를 향해) 묻는다. 미국 일부 주를 제외하고 민주국가에서 발견할 수 없는 간통죄가 여전히 실정법인 나라, 임신한 아내의 아름다운 나체 그림을 인터넷에 올린 미술교사를 긴급체포해 형사 처벌하는 나라, 그런 대한민국에서 직장 여성의 40∼80%가 성희롱을 체험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또 ‘마사지 걸’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대통령 이하 정치인이나 관료의 성 의식의 저급한 수준이 개선이라도 되느냐고.

‘고대사회의 성적 개방성을 배우라’는 박노자 교수의 일갈에서, 또 그 일갈의 논리적 전거를 <삼국유사>에서 가져와 결론적으로 대승불교의 음부 숭배론을 이끌어내는 ‘의미’ 있는 시도를 보면서, 통쾌함보다는 서글픔이 밀려오는 것은 도대체 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