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방은 열기로 가득했다

한 여름이라면 뜨거운 날씨 탓이려니 하겠지만 지금은 첫 눈도 지나간 겨울이다.

책상 위에는 몇 대의 히터가 벌겋게 눈을 뜨고 있지만 이 겨울에 느끼는 열기는 히터가 쏟아내는 인공의 열이 아니었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체 조용히 사경을 이야기하는 사경연구가 외길 김경호 씨에게 뿜어져 나오는 열기였다.

“일념으로 붓 끝에 온 마음을 다하면 기운이 사경하는 한 글자 한 글자에 옮겨집니다.”

김경호 씨는 누구든지 일념을 다해 사경을 하게 되면 작품에서 기운을 느낀다고 말했지만 김경호 씨는 생각 생각마다 사경에 대한 일념으로 가득 찬 듯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사경을 하기 위해 붓을 잡게 되면 누구나 떨리게 됩니다. 떨리는 그 마음이 사경의 시작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장엄하는 일인데 떨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문제겠지요.”

정교한 작업을 위해 떨림은 버려야 할 일이라 생각했건만 떨림이 오히려 시작이라니 의아해 하는 찰나 김경호 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제 자신도 떨릴 때는 사경을 할 수가 없습니다. 떨림으로 시작하지만 일념으로 집중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서야 사경이 가능해집니다. 1mm안에 금선(金線)을 몇 개 많게는 10개는 집어넣어야하는데 집중하지 못하면 불가능 합니다. 일념으로 집중하게 되면 1mm의 작은 공간속에서 온 세상을 품은 듯 화엄세계가 펼쳐집니다. 저는 그 넓고 광활한 공간에 그저 선을 옮길 뿐입니다.”

김경호 씨의 설명에 의하면 일념으로 집중된 상태란 붓끝으로 티끌을 정확히 찍은 상태에서 몇 분간 움직이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집중이 필요한 사경인지라 작업 중에 조금이라도 집중이 떨어지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마음자리가 즉각 드러나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마음만 집중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몸과 사경을 위한 재료까지 3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제자들에게 걷도록 해야할 때면 가끔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힘든 궤적 끝에 법신사리가 남게 되면 환희심을 느끼게 됩니다.”

일념으로 사경을 하게 되면 부처님이 현신해 종이를 뚫고 나온다고 할 정도인데 그 옛날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제자들이 느꼈던 환희심이 이와 같았을까.

“힘들지만 앞으로도 사경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사경이 세계 속에서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소더비 경매시장에 출품해 가치를 인정받는다거나 루브르박물관에 상설 전시되도록 하는 등 세계 속의 사경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이러한 김경호 씨의 소망을 품은 작품들이 얼마 전 일반에 공개 됐다.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외길 김경호 초청 사경 특별전’을 개최한 것이다.

김경호 씨는 이번 전시를 위해 1년여간 외출 등 외부활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하루에 10시간을 작품활동을 하며 매 시간마다 손을 씻어내고 먼지를 닦아냈다. 금으로 글씨를 입히는 작업에는 30도 이상의 온도가 필요해 여름에도 히터를 키고 작업했을 정도로 고된 작업이었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는 짧게는 3개월 보통은 6개월 정도 기간이 걸렸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고려시대 보현행원 변상도를 리메이크한 작품 등 5점을 주 작품으로 해 이미 완성됐던 작품을 더해 총 11점을 전시했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一米里中含十方’으로 1mm의 작은 공간속에도 시방세계, 화엄세계가 들어있다는 의미이다. 김경호 씨가 즐겨 외운다는 법성게에 보면 ‘一微塵中含十方’ 티끌 속에도 시방세계가 들어있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을 응용한 주제이지만 김경호 씨가 가는 길을 그대로 보여주는 주제인 듯하다. 그의 붓 끝 아래 1mm속에는 부처님의 화엄세계가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외길 김경호 초청 사경특별전’은 12월 20일까지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

*김경호 씨는?

현재 한국사경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원광대학교 서예학과 강사로 전통서예와 사경을 강의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해 뉴욕, LA 등 수 십 차례의 전통사경 초대전 및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시인, 서예가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