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을 항상으로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실체가 없는 것을 있다고

더러운 것을 맑고 깨끗하다고,

삿된 생각에 빠지고

마음이 혼란하여

거꾸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악마의 멍에에 묶여

안온을 얻지 못하네.

중생은 태어남과 죽음으로 이끄는

윤회를 거듭하지만,

광명 비추는 

깨달은 님들이 출현하여

괴로움의 종식으로 이끄는

위대한 가르침을 밝히네.

지혜로운 사람은

올바른 가르침을 듣고 성찰하니,

무상을 무상으로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실체 없는 것을 없는 것으로

더러운 것을 더러운 것으로

올바로 알아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네.

(ⓒ장명확) 

성철스님께서 종정에 추대되었을 때 내린 법어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말은, 원래 송대(宋代) 청원유신(靑原惟信) 선사의 선시(禪詩)에서 나왔다. 생사와 열반,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닌 지금 이 자리에서 깨달음의 경지를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말로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말은 성철 스님의 종정 수락 법어로도 유명해졌다. 

조계종 포교원에서 펴낸 <간화선 입문>에서 ‘산은 산 물은 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노승이 30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다.’ 그 뒤 훌륭한 선사를 만나 선의 진리를 찾았을 때,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지막 쉴 곳인 깨달음을 얻고 보니 ‘산은 진정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여기서 수행하기 이전의 ‘산은 산, 물은 물’의 단계는 일상적인 의식으로 비춰진 객관적 대상으로​ 산과 물을 말한다. 이러한 세계는 모든 존재가 제각기 자기를 주장하는 색(色)과 차별의 세계이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이다. 그러나 그 분별의식이 깨지면 산과 물은 객관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그 본래 모습은 그저 공(空)으로 존재할 뿐이다. 공에서는 산과 물,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 물이 곧 공이며, 사람이 곧 공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공마저 공으로 부정해야 정말 살아있는 공이 된다. 의식 속에 가려진 본모습을 회복한 것이다. 그래서 깨달음은 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이 그대로 현실이 된다. 여기서 모든 것은 새롭게 긍정되고 살아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사람은 사람인 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단계이다. 

새롭게 긍정되는 산, 물, 사람은 색(色) 차원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양변의 여윈 자리에서 묘하게 있다 해서 묘유(妙有)라고 한다. 진공묘유(眞空妙有)요, 적조(寂照)라고 한다. 

그 적조의 자리에서 바라보면, 이 현실이 깨달음 그 자체이다. 그래서 번뇌 즉 보리이다. 우리가 밥 먹고 일하면서 행하는 일체가 바로 보리(菩提)의 작용이다. 그러기에 생사를 떠나 열반이 있는 게 아니다. 산은 산, 물은 물이다.”

생사문제를 논하는 고승들의 경지가 아니더라도,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말이 주는 가르침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해관계에 얽히거나 마음이 어느 한 곳에 쏠려 있으면, 어느 순간 산이 산처럼 보이지 않고 물이 물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은 원래부터 산이고 물은 원래부터 물일 뿐, 모든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분법적 갈라치기나 편견일 뿐이다. 생각이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저당 잡혀 있으니 대상을 그냥 있는 그대로를 봐주지 못하는 것이다. 

범부들은 산을 산으로 보지 못한다. 탐·진·치라는 색안경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탐·진·치를 독(毒)이라고 부른다. 생명을 죽이는 치명적인 독으로 보는 것이다. 치명적인 독으로 비유되는 삿된 견해, 인식을 가지고 있으니, 산이 산으로 보이지 않고, 물이 물로 보이지 않을밖에. 

이 시는 <앙굿따라니까야> 4:49 ‘전도의 경(Vipallāsasutta)’에 등장한다. 부처님은 전도(顚倒), 즉 있는 그대로가 아닌 거꾸로 왜곡되게 인식하는 네 가지의 지각의 전도, 마음의 전도, 견해의 전도에 대해 비구들에게 설법하신다. 네 가지 전도란 무엇인가. 무상에 대해 항상 하다고 여기는 것, 괴로움에 대해 즐겁다고 여기는 것,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것, 더러운 것을 청정하다고 여기는 것 등이다. 무상을 무상으로,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무아를 무아로, 더러운 것을 더러운 것으로 바르게 인식할 때 비로소 일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설법이다. 전도는 지각, 즉 올바로 아는 작용의 왜곡은 마음이 오염되어서 초래된다. 마음이 오염되었다는 것은 견해가 오염되었다는 것으로 확대된다. 이와 관련하여 주석에, 스리랑카의 한 장로의 가르침이 소개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숲 속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보고, 귀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각의 전도이고, 그것으로 인해 공포가 생겨나면 그것은 마음의 전도이고, 이 귀신을 제거하기 위해 퇴마의식을 행한다면 그것은 견해의 전도이다.’     

이 시를 읽으며, 지금 이 순간 나의 지각은, 나의 마음은, 나의 견해는 온전한가? 혹여 거꾸로 전도되어 있지는 않은가? 늘 살펴볼 일이다. 이것이 참 수행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