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의 입법요구 내용과 대정부 요구 내용은 상당부분 재검토돼야 한다. 현재의 종교차별관련 입법요구는 법리상 비합리적 요소가 많고 대정부 요구의 내용 또한 다소 감정적이다.”

불교계의 대정부 요구 및 입법 요구안 중 상당 부분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1월 22일 동국대 덕암세미나실에서 열린 한국불교학회에서 ‘정교분리의 원칙과 불교계의 종교차별금지입법 요구의 위헌성’을 발표한 울산대 법학과 이정훈 교수는 “법리학적으로 볼 때 국회에서 논의되는 종교차별금지법안은 해석상 문제점이 많으며 불교계가 종교차별 사례라고 주장하는 것들도 법적으로는 다소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종교중립법의 위헌 소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불교계 내부에서 이같은 주장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이날 발표장에는 한국불교학회 회원들뿐만 아니라 불교계 언론들과 참여불교재가연대, 조계종 기획실 관계자들이 참가해 이정훈 교수의 발표를 경청했다. 이정훈 교수는 종교자유정책연구원에서 제안한 종교차별금지법의 기초를 마련한 법학자다.

이 교수는 발표에 앞서 “현재 불교계가 공직자 종교차별이라고 주장하는 사례들, 그리고 국회에서 발의된 종교차별 금지법을 살펴봄으로써 불교계에서 종교중립과 정교분리 원칙에 대한 혼란을 줄이고, 보다 합리적인 입법안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발제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이정훈 교수는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위와 위법 행위는 엄연히 다른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서울시 봉헌을 한 발언을 한 것은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위인 것은 맞지만 엄밀히 말해 위법 행위를 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반면 포항시 예산의 1%를 성시화 작업에 쓰겠다고 공언한 정장식 전 포항시장, 최근 서울시교육청 전산망을 이용해 교직원들에게 기도회에 참가할 것을 요구한 공정택 교육감의 경우 명백한 위법 행위라고 설명했다. 또한 지난해 성북구청의 교회-동사무소 협의회는 선교가 아닌 공공복리 증진의 목적으로 설립됐기 때문에 법리적 관점에서 보면 성북구청장의 행위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공직자가 퇴근 후 교회에서 전도 활동에 참여 한다든지 사찰의 법회에 참석하거나 참선수행을 하는 것을 제한할 수 없다. 또한 교회의 직분을 수행하거나 사찰 신도회의 간부가 되어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의 교설이 옳다고 고백하고 타종교를 비판하는 것 역시 제한할 법리상의 근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어 “현재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는 종교차별금지법 중 조문환 의원안, 민주당안, 나경원의원안은 모두 크고 작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중 조문환 의원안은 공무원의 직무집행 상 종교차별 금지 조항 신설과 종교차별 발생 시 구제를 위한 국가공무원법 및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이다. 이 교수는 “이 법안이 국가인권위원회법의 구제절차와 내용이 중복되므로 법 개정의 근거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또 ‘대통령은 국민화합을 저해할 수 있는 종교편향의 정책을 펴거나 언행을 하여서는 안되며, 국무총리와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명령이나 처분 등이 종교에 따른 편향이나 차별이 있는 경우에는 중지 또는 취소시켜야 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된 민주당안의 경우 “위헌성이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하면서 “민주당안은 대통령의 신앙고백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경원 의원안의 경우 “차별행위의 기준과 내용에 대해 지나치게 포괄적인 위임입법을 하고 있는 것은 법률요건상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며 “또한 위법행위를 한 공직자 개인에 대한 처벌을 규정함으로써 공무원들의 종교의 자유, 특히 종교실행의 자유를 직무 수행 외의 사적인 부분까지 사실상 광범위하게 제한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나경원 의원안은 종교자유정책연구원안과 비슷한 구조로 돼있지만 벌칙조항을 별도로 두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종교차별금지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벌칙조항을 없애고, 대신 개별사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발표에서 이 교수는 종교차별금지법의 입법 자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종교차별에 대한 법률적 규제가 현 불교가 안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지만, 이 법률이 결코 불교에 유리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다른 종교 자극해 더 큰 종교 갈등과 분쟁을 야기시킬 수 있음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을 맡은 동국대 법대 김상겸 교수는 종교차별금지법의 악영향에 대한 우려감을 보다 심도깊게 표시했다.

김 교수는 “사실 종교차별금지법의 위헌성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것으로 종교차별 금지가 가능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며 “현실적으로 실효성 없는 법 조항들을 만들어놓은 채 사회적 갈등만 촉발할까 심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 문제는 법제화나 개선으로 해결되기 어렵고 논란만 가중시킬 가능성이 많다”며 “그보다는 공무원 교육에서 종교적 중립성을 위한 정신교육을 강화하고, 위반시 이에 대한 제재 정도가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어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갖는 종교적 갈등과 반목을 사라지게 하는 환경의 조성”이라며 “이런 사회문화적 환경조성이 선행 내지 병행되지 않는다면 어떤 노력도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