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한 사찰 경내에 서 있는 배나무에 배꽃이 활짝 폈다. 배꽃은 본래 4월에 활짝 만개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이상하게도 10월에 활짝 꽃을 피워낸 것이다. 예로부터 자연의 질서는 사람과는 달리, 세월이 오고감을 정확히 지키는 법인데 희유한 일이다.

세월이 하 수상하니, 자연의 질서도 혼란스러운 것인가. 경내를 오가는 절의 스님에게 연유를 물으니, 그 대답이 또한 흔치 않은 것이다.

“나라가 미쳐 돌아가니 배꽃도 미친 게 아니겠습니까?”

경제는 어렵고, 국제정세도 시원치 않고, 남북관계도 후퇴하는 것 같고, 더더구나 잇따른 종교편향에 대한 종단의 대응도 영 맘에 들지 않고…. 아무래도 이 스님의 요즘 심기가 그리 편치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계절의 질서를 잊고 꽃을 피워낸 배나무가 무슨 잘못이 있으랴. 배나무를 미치게 만든 우리네 중생들이 문제가 아니겠는가.

꽃은 매우 아름다우나, 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서글프다. 10월 상달인데도 서글픈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