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황사 중창불사 회향을 기념해 열린 괘불재와 작은 음악회가 10월 18일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달마산 미황사에서 성대히 봉행됐다.
미황사로 오르는 동백길은 동백 대신 온갖 차량으로 뒤덮혔다. 개산이래 가장 많은 차량이 몰려온 듯했다. 마을사람들, 서울, 부산, 대구 등 타지에서 온 사람들, 게다가 등산가는 길에 미황사 큰부처님(괘불)을 친견하려는 등산객들, 어린 아이와 노인들, 마을청년들로 미황사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예로부터 영험이 크기로 이름난 괘불을 완전히 펼쳐는 날이기에 문화재관련 전문가들의 모습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대흥사와 백양사의 큰스님들과 출가한지 오래되지 않은 젊은 스님들의 모습도 보였다.
전국서 온 불자들 다투어 큰부처님께 만물공양
법당에 모셔진 미황사 큰 부처님(괘불)을 마당으로 모셔 당간지주에 거는 괘불 이운식으로 시작된 이날 괘불재는 선남선녀들이 한 해 동안 땀 흘려 거둔 각각의 결실을 큰부처님 전에 올리는 만물공양 순서에서부터 감동의 도가니가 되었다.
미황사 마당을 빼곡이 채운 수천의 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농사를 지어 정성껏 거둔 콩, 쌀 등 공양물을 올리는 거친 농부의 손등을 지켜보는 주지 금강 스님의 눈시울은 금새 충혈되었다. 평상시 늘 ‘괘불재에서 가장 가슴이 뭉클한 순간은 만물공양 순서’라고 말하곤 했던 그 광경이 올해도 어김없이 되풀이되었다.
갖가지 공양물이 불단 앞에 정성껏 올려졌다. 수계증, 안거증을 자랑스럽게 올려놓은 이, 자신이 쓴 책을 올린 작가, 정성껏 만든 공예품을 가져온 이 등, 만 가지의 공양물들이 불단을 가득 메웠다. 이는 오직 미황사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절과 부처님과 스님과 절 주변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하나가 되는 이 순간은 괘불재 행사의 하이라이트다. 화려한 음악회나 큰스님 법문보다도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시간. 저마다 정성껏 공양을 올린 이들의 뿌듯한, 그리고 기쁜 표정은 빙그레 웃는 불보살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가 않다.
미황사 불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스님들을 위한 청산간 군고단 재례에 이어 하늘, 땅, 사람에게 소원을 비는 통천(通天)의식이 여법히 봉행됐다.
“불교계 스타 금강스님!” 사회자 소개에 대중 환호
이어 고불총림 백양사 주지 시몽 스님의 직접 시문으로 지은 달마산 미황사 중창기를 낭독했다.
“인간에서 복을 지음 어느 것이 제일인가/ 사찰을 중창하는 그 공덕이 뛰어나다/ 달마산 밑 미황사 천 년 동안 이름난 절/ 세상사람 모두 알아 모르는 이 거의 없다/ …/ 만약에 선업이 파리 날개만 하여도/ 육신이 진토될 때 도솔천에 태어나리/ 오늘 세운 미황사에 한 줌 흙 보시한 사람/ 높고 귀한 만종록을 천만년 누리리라.”
이어 경과보고 시간. 주지 금강 스님이 단상에 올랐다. 이날 사회를 본, 늘 금강 스님과 함께 교유하며 불교의 미래를 고민하고 열어가는 대구 보성선원 주지 한북 스님이 “사부대중 여러분, 불교계 스타 금강 스님이십니다.”라고 주지 스님 소개를 하자 사부대중들은 환호로 답했다. 사회자의 말마따나 금강 스님은 이미 미황사를 넘어 한국불교계의 스타임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2001년 주지로 취임한 이래, 회주 현공 스님의 지도와 은사 지운 스님의 돌봄아래 미황사 중창불사를 마무리 지은 주인공, 금강 스님에 대한 사부대중의 존경어린 박수 소리는 도량을 뜨겁게 달궜다.
20여 동이 넘는 전각을 새로이 세운 것도 대단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전각들이 하나 같이 사부대중의 발길이 끊임없이 머물고 오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전각만 덜렁 지어놓은 박제화된 도량이 아니라, 그 전각이 불교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는 살아 있는 생활공간으로 채워져 있다는 데 미황사 중창불사 회향의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불교계 안에서는 없었던 괘불재라는 새로운 형식의 불사를 창안하여 9회째 진행해온 것을 비롯하여, 작은 음악회(9회), 어린이 한문학당(총 24회), 중학생을 위한 문화학교(총 6회), 경전읽기모임 창립, 템플스테이(매년 4000명 참가), 참선특별 수행프로그램 ‘참사람의 향기’(7박8일, 총 28회), 땅끝문화제(인도음악회, 총 2회), 거사림회 창립 등 20여 동의 대가람이 된 미황사는 구석구석이 살아 꿈틀거리는 도량이 되었다. 모두가 금강 스님과 그를 믿고 함께 해준 사부대중이 일궈낸 놀라운 성과들이다.
이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어우러진 불사로 인해 미황사는 불교계는 물론 불교계 바깥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도량이 되었다. 또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은 가장 주목받는 스타 스님이 되었다. 스타이기를 바라지 않지만, 그의 불명 금강, 즉 다이아몬드처럼 스스로 현란한 광채를 발하니 절로 스타가 되어버린 것이다.
해남군수, 축사를 멋진 축시로 낭독해 박수 받아
미황사라는 자랑스런 사찰을 지역에 둔 해남군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이런 신명이 군수의 축사를 그렇고 그런 진부한 축사가 아니라 멋지고 구성진 시로 태어나게 했을 것이리라. “(땅)끝은 곧 시작이다”로 시작된 시를 군수가 낭독한다. 보기 드문 광경인지라 대중의 눈이 쏠린다.
“소 한 마리/ 고단한 몸 뉘인 자리에/ 절 한 채 지었다/ 그 소 한 마리/ 미-하고 소리낸 곳에/ 단정하고 아름다운 절/ 한 채 세웠다/ 미황사/ 피와 눈물과 회한으로 세운 절/ 오늘 여기/ 천년이 지난 이 자리에/ 미황사 다시 여기 세웠다.”
한국제다 서양원 회장 등 미황사 중창을 위해 많은 공을 세운 분들에 대한 감사패 수여가 이어졌다. 고마운 이들의 손을 잡는 금강 스님의 두 눈에, 또 감사패를 받은 불자들의 눈시울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이 고였다.
이어, 또 하나. 멋들어진 광경이 이어졌다. 금강 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이래 공양간 살림을 맡아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해준 두 공양주 보살에 대한 감사패 수여가 이어졌다. 허름한 옷을 입고 공양간을 지켰던 문수행, 보현행 두 공양주 보살도 이날은 곱게 한복을 차려 입었다. 미소짓는 얼굴이 조금은 푸석한 것이 아마도 감사패를 받는다는 사실에 밤잠을 설친 듯하다. 감사패를 받은 두 사람은 사부대중을 향해 큰 절 삼배를 올렸다. 그동안의 어려움이 봄눈 녹듯 녹아내리는 표정이다. 미황사 불사를 회향하는 소중한 자리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한 자신들을 불러내 표창하는 주지 금강 스님의 세심한 배려에 어떤 응어리인들 풀어지지 않을 수 있으랴.
보선 스님, “이제 마음공부를 회향할 차례” 당부
이어 법어 시간. 대흥사 회주 보선 스님이 법어를 위해 법상에 올랐다. 스님은 대중들을 향해 간결한 법문을 내렸다. 스님은 이제 절이 훌륭하게 중창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우리의 마음공부를 회향할 차례임을 강조했다. 도량을 가꾸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을 부처의 마음으로 가꾸기 위한 것이니, 마음을 가꾸는 도량으로 새로운 불사를 시작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괘불이 마을청년들로 구성된 거사람회 회원들에 의해 다시 거둬지고, 정성껏 말린 큰부처님은 청년들의 손에 들려 본래 계셨던 자리, 법당 뒤편으로 이운돼 다시 봉안됐다. 괘불재가 진행되는 동안 도량 곳곳에서는 천인천불 그리가. 양은선의 들꽃 그림전, 정은하의 조각보전시, 차 나눔, 부도전 산책, 노을 감상 등 미황사 특유의 문화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한 저녁 6시부터는 ‘달이랑 별이랑 사람이랑’이라는 이름의 작은 음악회가 시작됐다. 참석자 모두가 동참하는 장엄한 저녁예불에 이어 인도음악, 시낭송, 판소리 등이 자정이 넘도록 이어졌다.
천년의 꿈 120년의 원(願)이 회향된 18일의 미황사는 불국토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