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태풍 루사에 의해 균열이 생겼던 성북동 보타사 마애불의 재 보수가 한창이다. 그런데 고려대학교의 기숙사 신축으로 보수는커녕 오히려 마애불이 훼손될 위기에 놓여있다.

고려대학교 기숙사공사 현장과 보타사 마애불의 거리는 불과 60여m다. 또한 공사현장과 마애불은 같은 암반으로 이어져 공사현장의 진동은 그대로 마애불에 전달된다.

고려대학교의 기숙사 신축은 인근 개운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운사 남원근 종무실장은 “개운사와 기숙사 공사현장은 중간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이 일직선상에 놓여있다”며 “공사소음과 진동이 그대로 전달돼 수행환경을 침해받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남원근 종무실장은 “성북구청에 해당 공사에 대해 처음 질의 했을 때는 고려대학교 기숙사신축은 문화재 심의과정을 거치지 않아 무효라고 답변했으나 이후 태도가 돌변 서울시 조례를 들어 아무 하자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며 “고려대와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측도 절차상 하자 없는 공사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원근 종무실장은 “이에 고려대학교와 현대산업개발 측에 항의를 전하고 소음과 진동해결 방안을 강구했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며 “공사를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무소음 무진동 공법으로 공사를 시행하고 사후 문제발생시에만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원근 종무실장은 또 “23일에는 고려대학교 총장이 찾아와 사과를 하며 확실한 합의점이 나올때까지 공사를 중단하겠다고 했으나 합의 내용만을 정하고 서명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늘(29일) 아무런 통보없이 공사를 재개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개운사 주지 범해 스님은 평소와 달리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보타사 마애불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89호로 서울시조례에 의하면 50m 이내 공사는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단서 조항으로 역사·문화·자연환경을 저해할 경우엔 문화재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치도록 했다.

개운사 측은 성북구청에 문화재위원회 심의내용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9월 17일 청구했으나 아직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

남원근 종무실장은 “심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불성실하게 심의했거나 문제점이 확인된 것으로 결과가 나왔거나 아니면 최악의 경우 심의 자체가 없지 않았나 하는 의심까지 든다”고 격앙했다.

학생들의 복리후생을 위해 기숙사를 신축하는 것이 잘못된 바는 아니지만 공사현장 근처에 문화재가 있음에도 공사로 인한 결과를 생각지 않고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려 하는 입장만을 고수하는 것은 고려대학교 측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안이한지 보여준다 할 것이다.

고려대학교 측은 무리하게 학교를 늘리려하지 말고 공사로 인해 문화재가 훼손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