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늘 높고 귓전 스치는 바람결은 청량하다. 공부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시절이다.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이를 놓칠 리 없을 터. 일요일(28일) 한낮, 형형한 눈빛을 한 50여 명의 재가 수행자들이 성북동 야트막한 산자락에 위치한 법천사 운문선원에 모여들었다.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고불총림 백양사의 선원장을 역임한 일수 선사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다.

법천사 운문선원은 지난 21일부터 매주 일요일 <달마관심론>을 교재로 선수행법회를 열고 있다. 교재를 들고 하는 공부이니 강의라고 해야 적당하겠지만, 강사가 고명한 선사인터라 수행법회의 성격이 더 강하다.

법회에 들어가기 전 이 절 청년회원이기도 한 오계선 양(이화대 4)의 대금연주가 시작된다. 연주곡은 영산회상. 이 법석이 과거 부처님 당시 영축산에서의 법화경 설법 때와 다르지 않음을, 그러므로 석가모니의 법석에 참석한 것처럼 공부에 촌음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일수 선사의 마음이 깃든 연주다.

빠알간 치마에 흰 저고리를 차려 입은 오계선 불자의 대금 연주가 도량을 장엄하는 동안 참석자들의 마음은 시나브로 영산회상으로 옮겨가고 있는 듯했다.

승가 전통의 청법의식에 이어 일수 선사가 법상에 올랐다. 죽비에 맞춰 마음을 비우고 오롯이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겠다는 일념으로 머릿속을 비우는 시간. 도량 주위에 줄지어 서 있는 초목에는 날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날개 짓과 함께 드문드문 들려오고 있다.

“대 부정은 곧 대 긍정입니다. 긍정을 했다가 부정을 해야 살아남습니다. 여러분은 백척간두진일보의 가르침을 알지요.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면 어떻게 됩니까. 떨어져 죽습니까. 아닙니다. 대 부정이 대 긍정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알아들으시겠습니까. 알쏭달쏭하지요. 하하.”

선사의 강의라서 그런지 한 마디 한 마디에 독특한 기운이 넘쳐흐른다.

“우리 안에 부처가 있는데, 일상에선 늘 중생이라. 그러나 안이비설신의의 뿌리를 캐고 들어가면 곧 부처인 것이니, 허어…. 비유하면 마치 큰 나무의 가지와 꽃과 열매는 모두 뿌리를 근본으로 삼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를 키우려면 뿌리가 있어야 비로소 생하고, 나무를 베어 버리려면 뿌리를 없애야 죽일 수 있으니, 부처를 이루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만일 마음을 이치를 알아서 도를 닦으면 힘을 적게 들여도 쉽게 이루는 것이지요.”

오후 2시, 졸릴 시간인데도 선사의 고구정령한 말을 듣는 재가 선납자들의 눈망울은 또랑또랑함을 잃지 않고 있다.

“중생의 마음엔 부처가 있으나 부처의 눈에는 중생이 없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자 오늘 공부는 내가 혜가가 되고, 여러분이 달마의 입장이 되어 진행해 볼까요. 내가 이렇게 <관심론>을 강의하는 것은 글을 보고자 함이 아닙니다. 달마법문이 갖고 있는 그 본래 의미를 알고자 하고, 내가 그동안 공부하면서 경험한 경계를 여러분과 함께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 구절 한 구절 <관심론>을 읽어가면서 설명을 하는 일수 선사의 눈빛은 간절함으로 가득차 있다.

“어떤 것이 부처냐? 사람사람이 가슴 속의 경계를 보는 것이 부처라. 그러면 어떤 것이 중생이냐? 한 생각생각이 찰나찰나에 일어나는 것이 중생이라.”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살아 있는 법문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오고, 청법대중은 긴장감에 절로 오금을 조아린다.

“사실 나도 어떤 때는 고뇌가 와. 내가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내가 서울에 와서 이렇게 사는 게 시간낭비는 아닐까. 뭐 이런 고민들이지. 그러다가도, 아니지. 내가 공부한 것 조금이라도 여러분들과 나눠야지 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다잡곤 하지. 우리 처럼 공부만 한 이들도 이렇게 고민이 있는 법이라. 그러나 이런 고민과 고통들을 정화시켜 즐거움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지혜라. 지혜로워지려면 참선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고….”

교재가 <달마관심론>일뿐, 내용은 대선사의 실참 법문에 다름 아니다. 이윽고 법회를 마칠 시간. 일수 선사는 재가대중의 입장에서 마무리 게송을 한문이 아닌 우리말로 읊는다.

시방세계 일체의 사부대중이/ 금일에 달마관심론 법회를 하니/ 산하대지가 성성적적하고/ 서울에 나무여자(木女)가 노래를 하니/ 성북동 돌남자(石男)가 춤을 추고/ 남산에 진흙소가 계단을 올라가도다.

이 소식이 무슨 소식인고?/ 동쪽에 흐르는 물은 서쪽으로 흘러가고/ 서산에 해가 떨어지니 동쪽에서 달이 솟아오름이요.

석가모니 세상에 오시는 것도/ 자비마음이 있음이요/ 달마가 서쪽에서 옴도 선을 살리기 위함이요/ 시방세계 중생이 견성성불하기 위함이다.

건곤을 타파하는 법문을 함은/ 천백화신을 이루기 위함이요/ 낱낱이 자세히 살펴보니/ 앞에도 삼삼(前三三)이요 뒤에도 삼삼(後三三)이라.

선사의 쩌렁쩌렁하고 카랑카랑한 목청은 마침 불어오는 하늬바람을 타고 성북동 일원으로 퍼져나간다. 그 순간 법천사 앞 나무에 앉아 있던 산비둘기 두어 마리 푸드드득 창공을 박차고 날아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