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에게 ‘안티 힌두교’의 위치를 잃었기 때문에 인도에서 불교가 멸망했다는 호사카 슌지 교수의 학설은 틀렸다. 불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이슬람을 수용했다는 <차츠나마>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일제시대에 일본 학자들이 쓴 한국사를, 이라크전을 일으킨 부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오류다.”
8월 18일부터 20일까지 오대산 월정사에서 열린 한국교수불자대회에서 ‘불교와 힌두의 대화’를 발표한 호주 시드니대 한국학과 판카즈 모한 교수는 “호사카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호사카 교수의 학설은 설득력이 결여돼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호사카 교수는 최근 한국에도 번역된 저서 『왜 인도에서 불교는 멸망했는가』에서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료인 <차츠나마>를 통해 불교의 멸망원인을 분석한 바 있다.
이 책에서 호사카 교수는 안티힌두교의 역할을 불교보다 강력하게 전개한 이슬람이 나타나자 7~8세기 불교도들이 자발적으로 이슬람에 개종했다는 학설을 전개했다.
<호사카 교수 기사 참조>www.mediabuddha.net/detail.php
그러나 판카즈 교수는 호사카 교수의 주장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슬람 침공자들이 힌두교 못지않게 맹렬하게 불교를 공격하고 파괴했는데 어떻게 불교인들이 이슬람교에 대한 선의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이슬람교를 포용할 수 있었겠냐”고 반문했다.
판카즈 교수는 호사카 교수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불교가 지지세력의 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에 인도에서 불교가 쇠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중적인 지지기반을 상실한 불교와는 달리 수천년의 뿌리깊은 전통을 갖고 있던 힌두교는 이슬람의 침공 직후 다시 부활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판카즈 교수의 설명대로라면 7~8세기의 불교는 대중적 지지기반을 이미 상실했고, 불교의 생명력이 병든 상태였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인도의 불교는 왜 병들게 된 것일까.
판카즈 교수는 불교가 병들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힌두의식을 받아들이면서 불교 본래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하게 된 점”을 꼽았다.
즉 7~8세기경 불교교단이 힌두교 의식을 받아들이면서 9~10세기경부터 불교 내에도 여자, 술이 등장하는 음탕한 종교의식이 비밀리에 수행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불교는 힌두교와 크게 구분되지도 못했고, 인도 내에서 대중적인 지지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판카즈 교수는 “힌두교의 의식으로 변질된 불교교단에 대해 인도인들은 더 이상 유마경의 이상, 보살의 이상을 기대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방대한 불교경전을 요약본으로 만들고, 요약본을 다라니로, 다라니를 만트라로 줄였는데, 일반인들은 만트라만으로 불교를 이해할 수 없었던 점도 불교가 지지기반을 상실하게 된 이유”라는 것이 판카즈 교수의 설명이다.
반면 “힌두교는 뿌리깊은 지지기반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슬람 침공 직후 곧바로 일어설 수 있었고 현재까지 인구의 80%가 넘는 사람들이 힌두교를 믿어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판카즈 교수는 “인도를 침공한 이슬람 세력은 처음에는 강력한 세금 정책을 실시해 이슬람 개종을 유도했지만 이후 현명한 이슬람왕들은 힌두교를 인정하는 정책으로 선회했고, 결국 지금까지 인도에서 힌두교는 지속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판카즈 교수는 또 “인도는 1747년부터 200여년간 영국의 식민지를 겪었지만 인도의 기독교 인구는 2%에 불과하다며 이는 힌두교의 뿌리가 너무 깊어서 기독교가 유입될 여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불교가 조선왕조 500여년간 억압을 당했기 때문에 불교의 뿌리가 약해졌고 근대 이후 급격한 기독교 개종이 이루어졌다는 설명이다.
판카즈 교수는 “탄트리즘을 수용한 불교에서 더 이상 보살의 정신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이슬람 침공으로 엄청난 파괴를 당한 이후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는 사실상 불교의 황무지가 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