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 왕흥사지(사적 제427호)에서 기와를 공급하던 가마터 10기가 확인됐다고 문화재청이 3월 13일 밝혔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부여 왕흥사지 주변지역 발굴조사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번 보고서에는 2005∼2006년도에 발굴 조사한 왕흥사지 주변 기와가마터에 대한 조사내용을 수록했다. 기와가마터는 왕흥사 중심 사역에서 동쪽으로 약 150m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으며 백제시대 가마 10기와 고려시대 가마 1기가 확인됐다.

이번에 확인된 가마터는 백제시대 가마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가마들은 산사면을 따라 남북방향으로 시설되었고 남쪽에 아궁이, 북쪽에 굴뚝이 축조되어 있다. 이 중 3호 가마는 지하식 평요로 2개의 아궁이와 2개의 굴뚝, 4줄의 고래로 구성된 구들식 소성실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는데 구들장 위에 기와를 올려놓고 구웠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불길이 닿지 않아 완성도를 높인 더욱 발달된 구조의 가마로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특히 1호 가마에서는 ‘왕흥(王興)’명의 고려시대 명문와가 출토되어 왕흥사가 고려시대까지 존속했음을 시사해준다.
부여지역에서 현재까지 조사․보고된 기와가마터는 정동리, 소룡골, 쌍북리, 동남리, 능산리, 정암리 등 10곳이 있는데 이 중 정식 발굴조사 후 보고서가 발간된 곳은 정암리 가마터가 유일하다. 따라서 이번에 보고된 왕흥사지 가마터는 정암리 가마터와 함께 백제시대 기와가마의 특징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부여 왕흥사지는 삼국사기(三國史記) 등 문헌자료에서 백제 법왕(法王) 2년(600년)에 창건되어 무왕(武王) 35년(634년)에 낙성되었다는 기록이 확인되며, 1930년대 이 지역에서 ‘王興’명 기와가 발견되어 백제시대의 중요한 사찰로 알려져 있었다. 2007년도 발굴조사(8차)에서는 목탑지 심초부에서 577년에 사찰 조영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명문 사리기 및 각종 사리공양구가 출토되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탁효정 기자 bellaid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