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미륵보살반가상’을 영어로 어떻게 표기할까? ‘Half-seated Mireuk-bosal’, ‘Cross-legged buddha’, ‘The smile of buddha’ 등 여러 가지 영문 이름이 떠오르지만 이렇다 할 정답을 꼽기 어렵다. 최근 제시된 영문표기 기준에 따르면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은 ‘Half-seated Gilt-bronze Maitreya Bodhisattva’로 표기된다.
특정한 표기 기준이 없어 전문서적·문화재안내판·관광지도 등 각 기관과 개인마다 다르게 표현해 혼란을 야기했던 문화재 영문표기의 기준안이 마련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8월 17일 오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012 문화재명칭 영문표기 기준(안) 공청회’를 열어 문화재명칭 영문표기에 대한 기준안을 발표하고 각계 인사들과 의견을 나눴다.
주제 발표는 ‘문화재명칭 영문표기’에 대한 문화재청의 연구용역을 맡은 박희선 팍스트렌넷 대표가 맡았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문화재명칭 영문표기 기준안 공청회' 토론에서는 각계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날 발표된 문화재명칭 영문표기법은 로마자 표기와 의미역을 적용하고 문화재의 고유한 국문 명칭을 최대한 보존하며 문화재명칭 전체를 표기하고, 표기의 장단점이 대립될 경우 가능한 활용성과 범용성이 큰 쪽을 선택하는 것을 기본적인 원칙으로 삼았다.
불교용어의 경우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산스크리트어가 있을 경우 이를 사용하는 것으로 하고, 보편성이 떨어지는 단어는 이에 대한 번역어를 사용한다. 산스크리트어 표기는 특별기호를 생략하고 로마자에 가까운 발음을 표기하기로 했다.
문화재명이 ‘재질+존명+자세’순으로 된 경우에는 ‘자세+재질+존명’ 순으로 표기한다. 예를 들어 ‘금동(재질)보살(존명)입상(자세)’이라면 ‘Standing(자세) Gilt-bronze(재질) Bodhisattva(존명)’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또 문화재명이 ‘재질+명문+존명(또는 존호)+자세’순으로 된 경우, ‘자세+제질+존명(또는 존호)+명문’ 순으로 표기한다.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이 ‘Standing Gilt-bronze Buddha Triad with Inscription of “Gyemi Year”’이 되는 것이다.
문화재명에 유적지나 출토지명이 포함된 경우에는 ‘문화재명+유적지/출토지명’ 순으로 표기한다. 상하위 관계의 2개 이상의 유적지명이 나열된 경우에는 하위 지명을 먼저 표기한다.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이라면 ‘Standing Golden Buddha from Guhwang-dong, Gyeongju’로 표기한다.
‘사(寺)’나 ‘암(庵)’, ‘전(澱)’과 같이 규모나 용도를 나타내는 말도 정리됐다. 앞서 말한 명칭은 각각 ‘Temple’, ‘Hermitage’, ‘Hall’이 되고, ‘탑’은 ‘Pagoda’, 부도는 ‘Stupa’로 표기한다.
이와 함께 ‘불국사(寺)’와 같이 용도나 종류 등을 나타내는 접미어가 포함된 자연지물 또는 인공축조물 등의 고유명사는 ‘Bulguksa Temple(불국사 템플)’로 로마자 포기와 의미역 표기를 함께 사용한다고 문화재청은 정했다.
종합토론에는 문화재·통역·관광 등 다양한 분야의 관계자들이 나섰다.
불교미술 전문가인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는 불교문화재에서의 산스크리트어 사용 문제를 지적하며 “‘비로자나(Virochana)’같은 산스크리트어를 이해하는 외국인이 얼마나 될 것이며 산스크리트 번역은 얼마큼 풀어서 해야 하는지, 전문가가 아닌 일반 외국인이 받아들이는 정도는 얼마나 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피터 바돌로뮤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前 협회장은 “현행 로마자 표기법으로는 ‘ㅓ’나 ‘ㅡ’의 발음을 이끌어낼 수 없다. 띄워 쓰거나 각 글자별 첫 자음을 대문자로 표기하는 것이 좋다”며 외국인으로서의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과 한국학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문화재 영문표기나 영문설명 등의 준비를 서둘려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지영 한국문화유산교육연구원 원장은 “‘이렇게는 쓰지 마라’라는 금기 지침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디지털 검색 서비스의 확대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등의 홍보 수단을 강구”할 것을 주문했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팀장은 “언어는 그 문화의 사고과정과 고유한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기 때문에 완벽한 번역은 없다”고 전제한 후 “로마자로 완벽한 발음을 표기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지만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운영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곽중철 한국통번역사협회 회장도 “문화재 명칭을 완벽하게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이제는 여태까지 합의한 내용을 고치려고 하기보다 널리 알리고 시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나왔다.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재담당기자는 “영문표기는 한국인의 시각으로 외국인 독자에게 정보를 ‘발신’하는 것”이라며 외국인의 시각에 치중된 연구 분위기를 비판했다. 그는 또 “‘Half-seat’이 반가부좌 나타낼 수 있나. 오히려 똥 누는 자세를 떠올릴 수도 있지 않나? ‘Temple’도 외국인들에게 ‘사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조목조목 살핀 후 “큰 틀에는 찬성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더 정밀하게 다듬을 부분이 많은데 당장 내년부터, 빨리 시행하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조효상 문화재청 국제교류과 세계유산 담당자도 “문화재 영문표기는 대중성과 학술성에 있어 ‘양날의 칼’이다. 우리가 우리 문화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도 생각해봐야 한다”며 김 기자와 의견을 같이 했다.
외국인 안내의 전선에서 일하는 김세희 한국관광공사 관광서비스 개선팀원은 “영문표기 시 이름이 너무 길어지는 경우는 문제”라고 지적하고 “지도나 표지판 상에 달리 표기돼 관광객의 혼란을 야기하는 명칭들도 속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이날 공청회에서 개진된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올 10월 확정될 최종안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명칭 영문표기 기준안은 이르면 내년 1월 용례집으로 발간·배포돼 전국 문화재 안내판 정비 사업에 이용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