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땅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중국 오지에서 살아가는 조선인 할머니. 그녀는 어린 시절, 일본군에게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성모욕을 당해야만 했던 소녀였다. 이제는 고향에 돌아갈 힘도 없이 늙어 버린 할머니에게는 따뜻하게 보살펴 줄 가족도 없고, 작은 몸을 뉘일 집조차 없다. 할머니의 가장 소중한 보물은 고향을 떠나 온 후 가족으로부터 우편으로 받은 사진 한 장이다.
이것은 어느 한 할머니의 특별한 사연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로 몸과 마음을 짓밟힌 채, 나라가 해방된 후에도 타국의 땅에 버려져 처참하게 살아가고 있는 많은 할머니들의 이야기이다. 감춰진 역사 속에서 진실을 밝히지 못해 70여 년의 세월을 한의로 채워온 할머니들. 할머니들의 손에서 닳아져가는 가족사진처럼, 할머니들 자신도 사람들 속에서 잊힌 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사진가 안재홍. 장애인과 사회 소외계층의 인권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사진기록과 함께 아시아의 샤머니즘에 대한 작업을 위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던 그는, 지난 2001년부터 중국에 남겨진 위안부 할머니들을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처음 할머니들을 만난 후, 그 안타까운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깊게 패인 주름에서, 사방에 널 부러진 손때 묻은 물건에서, 글썽이는 눈망울에서, 할머니의 한 맺힌 가슴을 보았다…전쟁은 끝났지만, 그들은 남겨졌다.”
수도 없이 중국으로 발걸음을 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작가 스스로 이렇게 고백한다.
그는 할머니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삶을 바라보고, 마음을 헤아리며 할머니들의 모습 속에 담긴 역사 속 진실을 순간순간 사진으로 담아냈다. 이렇게 기록된 사진들은 ‘겹겹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국내외 대중들에게 소개되었다. ‘겹겹’은 겹겹이 층을 이룬 할머니들의 깊게 패인 주름과 70여 년 동안 가슴에 쌓여 온,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겹겹이 풀리지 않는 한을 의미한다. 하지만 작가는 겹겹의 의미가 사진을 통해 문제를 접한 사람들의 작은 힘이 한 겹 한 겹 쌓여가는 ‘겹겹’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8월 7일)부터 26일까지 류가헌에서 열리는 안세홍 사진전 <겹겹>은 그 연장선에서 열리는 전시다. 문의: 02)720-2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