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상’과 ‘생각하는 사람’, ‘사천왕’과 ‘배트맨’, ‘죽음의 무도’와 ‘감로도’, ‘나한상’과 ‘라이프 오브 파이’, ‘나반존자’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얼른 연결되지 않는 두 가지 주제가 만나는 지점은 어디일까? 답은 미술관이다. 불가에 몸담은 수행자이자 미학자인 명법 스님이 불교예술을 통해 미학을 새롭게 해석한 책 <미술관에 간 붓다>(나무를심는사람들)를 펴냈다.

사찰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은 우락부락한 몸에 창과 칼을 들고 산문을 출입하는 이들을 지켜본다. 신성한 공간을 침범하려는 삿된 것들을 두려움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제지하는 것이다.

고담시티의 수호자 배트맨을 보자.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네가 두려움이 되어야 해” 라는 대사처럼 배트맨은 무의식 깊이 각인된 두려움을 극복하고 의식을 통제하고 '진짜 영웅'으로 우뚝 선다.

명법 스님은 사천왕의 두려움과 배트맨의 두려움을 절묘하게 합치시킨다. 악으로부터 선을 보호하기 위해 두려움이라는 심리적인 힘을 사용한다는 점과 완전한 이타적 희생을 통해 신적인 존재가 된다는 점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은 사천왕의 이야기와 놀랍도록 닮았다는 명법 스님의 이야기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반가사유상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또 어떠한가. 두 작품은 비슷한 자세와 유사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동양과 서양이 가지는 몸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간 두 눈을 반쯤 감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반가사유상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고뇌하는 표정도 없고 뒤틀린 자세도 없다.

이 지점에서 명법 스님은 “생각하는 사람과 반가사유상을 통해 우리는 서양과 동양의 몸과 사유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볼 수 있다”며 “우리가 가닿을 수 있는 사유의 깊이는 어디일까?”라고 묻는다.

지금까지 서양 미학적 관점에서 예술작품을 분석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면, 명법 스님의 신간 <미술관에 간 붓다>는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들을 대비해서 보여 줌으로써 불교미학의 핵심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명법 스님은 앞서 열거한 작품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또 차이점을 만들어낸 이유를 들어 불교예술 작품의 사상적·미학적 근거 모두를 붓다와 그가 깨달은 법에서 찾아낸다.

이 책을 읽다보면 수월관음과 선재동자, 반야용선과 악착보살, 동자승과 명부전을 둘러보는 당신의 귓가에 명법 스님이 고조곤한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293쪽, 17000원.

*명법 스님은?

해인사 국일암에서 성원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고 운문승가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운문승가대학 회주 명성스님으로부터 전강 받았다. 서울대 불문과 졸업 후, 동 대학원 미학과에서 독일미학으로 석사, 동양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스미스 칼리지에서 박사후과정 연수를 마쳤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강사,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명상상담학 겸임교수. 불교와 미학, 전통과 현대의 학문적 소통을 추구하며 불교신행모임 ‘무빙템플’과 상담연구소 ‘은유와 마음’을 이끌면서 현대사회에서 불교의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