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하면 잠시나마 삶의 고통과 근심을 잊게 된다. 하지만 술이 깨면 다시 근심이 시작되니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차는 마음의 번뇌를 씻어내는 효과가 있다. 번뇌가 늘어나지 않고 줄어든다. 이것이 초의가 말하는 차의 일이다.”

초의선사의 〈동다송〉을 번역하고 해설한 책 〈향기로운 동다여 깨달음의 환희라네〉(김영사)를 펴낸 봉은사 주지 원학 스님(사진)이 4월의 마지막 날 교계 기자들을 만나 차와 초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원학 스님은 초의선사가 직접 쓴 ‘일지암 필사본’을 모본으로 초의선사의 입장에서 원문번역에 충실하고자 했다. 초의선사가 구현하고자 했던 차의 정신과 학문의 세계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해설하는 한편 주석해석과 단어풀이를 더했다.

2백 년 전 초의선사가 말하고자 했고 원학 스님이 전하고자 한 우리 차의 정신은 무엇일까. 원학 스님은 차의 기능과 효능 등 현대인들이 주목하는 건강식품으로써가 아니라 심신을 수행하는 매개, 즉 수행자의 도반으로써 차의 역할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동다송〉 번역은 녹차의 내용을 번역한 것으로 돼있다. 초의가 이 책을 집필한 배경이나 책을 쓴 뜻은 차의 색과 향과 맛을 인간의 심성으로 여길 때 비로소 차 생활이 수행이 된다는 것이다.”

원학 스님은 ‘다선일미’를 강조했다. 〈동다송〉 해설에 차와 선이 둘이 아니라는 구체적인 내용을 풀어쓴 것은 본인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며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스님은 “차는 선과 일치되는 수행의 방법”이라며 “어떤 사람들은 차를 마시면 저절로 선이 되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것이 아니다. 그에 따른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차처럼 사람도 맑고 향기롭고 맛을 내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이 참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학 스님은 또 “여럿이 마셔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지만 초의는 제대로 차를 마시려면 혼자 마시라고 했다. 혼자 마셔야 신묘한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초의는 구름과 달은 차를 같이 마실 수 있지만 그 이외의 벗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차를 어려워한다. 차가 ‘선’이나 ‘수행’과 같은 단어와 쌍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뒷걸음질 칠 사람이 많다. 아직 차를 접하지 못한, 그리고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차란, 또 원학 스님의 〈동다송〉 해설은 어떤 의미로 다가가야 할까.

“차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묻겠다. 차가 어렵다고 하지만, ‘자연’은 어려운 것인가 쉬운 것인가? 생각의 나름에 따라서는 달과 구름이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달과 구름을 그렇게 인식하려고 노력하면 어려울 것이 없다.”

조금 더 친절한 해설을 덧붙이자면 “혼을 빼고 있는 시대에 수많은 정보로 인해 내 심성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이들이 구름과 명월을 가까이 하며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정신적인 생활에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말.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온 국민이 집단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조짐을 나타내는 가운데, 원학 스님은 가치관을 새로이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여기에서도 차의 역할이 빠지지 않는다.

“우리 삶과 세월호가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지만 깊이 들어다보면 우리가 정상적으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모두가 깊이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의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가치관을 새로 정립하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치관은 양심에서 출발하고 양심은 마음이 맑은 데서 나온다. 그게 흐려있는 데서 무슨 가치관을 논할 것인가?”

〈향기로운 동다여 깨달음의 환희라네〉는 원학 스님의 살뜰한 해설로 앞으로만 달려가는 경쟁시대에 찌든 마음을 내려놓고 맑은 차향 속에서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84쪽,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