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 켄뽀 아왕상뽀
(북인도 둑 다르마까라 승가대학 교수사/ 서울 성북구 캄따시링 센터장)
번역 및 정리 : 자홍스님 (캄따시링 법회 통역)
교정 : 캄따시링 역경원(지성남, 김지아)

아상가 논사의 탱화
보배가 숨겨져 있으면
알지 못 해서 보장(寶藏)을 얻지 못 하듯
마찬가지로 중생에게 자생(自生)의 성(性)은
무명습기(無明習氣)의 땅(地)에 가려져 있다. [1.138]
།ཇི་ལྟར་ནོར་ནི་བསྒྲིབས་པས་ན། །མི་ཤེས་གཏེར་མི་ཐོབ་པ་ལྟར།
།དེ་བཞིན་སྐྱེ་ལ་རང་བྱུང་ཉིད། །མ་རིག་བག་ཆགས་ས་ཡིས་བསྒྲིབས།
1.138은 땅속에 보물이 있지만 보물을 보지 못하듯, 마음속에 여래장이 있음에도 그것을 보지 못함의 비유에 대한 설명이다. 여래장을 가리고 있는 9가지 염오 중에서, 탐, 진, 치, 번뇌의 강력한 발동의 4가지가 선행했고, 이제 5번째 염오인 습기(習氣)를 제시한다. 이 습기(習氣)는 바로 무명의 습기이다.
잠곤꽁뚤석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렇게 말한다. '끝 모를 막대한 보물 더미가 많은 흙에 가려서 덮여 있으면, 빈궁한 이들은 보배가 있음을 알지 못해 보물 더미를 얻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빈궁한 이와 같은 중생들에게, 끝 모를 덕을 갖춘 자생지(自生智)[가 있음에도] 그것을 보는 것이 무명습기(無明習氣)에 가렸기에 보지 못한다.' 이렇게 말한 것은, 무명습기로 요약되는 것이 땅(地)과 같다고 설명한 것이다."
"보배가 숨겨져 있으면 알지 못해서 보장(寶藏)을 얻지 못하듯"이라고 하였다. 보배가 있어도 그것이 땅속에 묻혀있으면 가려져 있기에 그 존재를 알 수 없다. 있음을 알지 못하면 그것을 얻는 것도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중생에게 자생성(自生性)은 무명습기(無明習氣)의 땅(地)에 가려져 있다."라고 하였다. 자생(自生)의 성(性)(Tib. rang byung nyid, Skt. svayaṃbhūtva)이란 무시이래로 유정에게 존재하는 심자성(心自性)을 가리킨다. 이것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명습기(無明習氣)가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성문 아라한들조차 여래장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고 설명하였다. 어째서인가? 그들에게는 여전히 무명습기(無明習氣)의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아라한은 탐진치 등의 번뇌는 모두 제거하였지만, 그 습기(習氣)는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학생: 9가지 염오 중에 4번째인 번뇌의 '강력한 발동'을 아라한은 이미 제거한 상태인가요?
켄뽀: 그렇다. 아라한은 9가지 염오 중에서 탐, 진, 치와 강력한 발동은 모두 제거했다. 그러나 습기는 아직 제거하지 못했다.
싹 등이 순차적으로 생겨남으로써
씨앗의 껍질이 갈라지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진여(眞如)를 봄으로써
견소단(見所斷)은 제거된다. [1.139]
།ཇི་ལྟར་མྱུག་སོགས་རིམ་སྐྱེ་བས། །ས་བོན་ཤུན་པ་གཅོད་པ་ལྟར།
།དེ་བཞིན་དེ་ཉིད་མཐོང་བ་ཡིས། །མཐོང་སྤང་རྣམས་ནི་བཟློག་པར་འགྱུར།
1.139에서는 9가지 염오 중에서 6번째인 견소단(見所斷)과 관련하여 설명한다. "싹 등이 순차적으로 생겨남으로써 씨앗의 껍질이 갈라지는 것처럼"이라고 하였다. 땅에 심은 씨앗이 자라나서 싹이 올라오면, 땅속에 있던 씨앗의 껍질이 갈라지고 결국 없어진다. 이 과정에서 껍질을 누군가가 억지로 벗길 필요는 없다. 안에서 싹이 자라나면 자연스럽게 껍질이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진여(眞如)를 봄으로써 견소단(見所斷)은 제거된다."라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진여(眞如, Tib. de nyid)를 보는 것만으로,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견소단(見所斷)은 자연스럽게 제거된다.
괴 로짜와 숀누뺄의 주석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따라(tāla) 등의 열매 껍질 안에 있는 핵(核)을 지(地)와 수(水) 등의 조건이 도와줌으로써, 싹과 잎과 줄기 등이 순차적으로 자라난다. 이로 인해 씨앗의 껍질이 갈라지며, 점점 바깥으로 자라난다. 마찬가지로 범부의 유루선(有漏善)이 도움을 줌으로써, 진리인 진여(眞如)를 [보는] 견도(見道)가 일어난다. 그리고 견소단(見所斷)들은 다시는 생겨나지 않도록 제거된다."
학생 : 견소단과 수소단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켄뽀: 견소단(見所斷, Tib. mthong spang, Skt. darśanaheyāna)과 수소단(修所斷, Tib. sgom spang, Skt. bhāvanāheya)에 대한 학설은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대승불교 일반의 설명을 하겠다. 탐(貪), 진(瞋), 치(癡), 만(慢), 의(疑), 견(見)의 6가지 근본번뇌(Tib. rtsa nyon drug)와 같은 번뇌장(煩惱障), 즉 조대(粗大)한 장애는 모두 견도(見道)에서 제거하는 대상이므로 견소단(見所斷)이다. 그것의 습기(習氣)는 수도(修道)에서 제거하는 대상이므로 수소단(修所斷)이다. 전자는 진여(眞如)를 봄으로써 제거할 수 있고, 후자는 진여를 보는 것만으로는 제거할 수 없고 진여를 반복해서 닦음으로써 비로소 제거할 수 있다.
범부의 단계에서는 온갖 수행과 노력을 하더라도, 번뇌를 잠시 억누를 수 있을 뿐이지 그 근간까지 제거할 수는 없다. 그 종자까지 제거할 수 있는 것은 견도(見道)와 수도(修道)에서이다.
성도(聖道)와 관련되어
유신(有身)의 핵심을 제거한 이들이
수도(修道)의 지혜로써 제거할 바들은
낡은 천과 같다고 설해졌다. [1.140]
།འཕགས་པའི་ལམ་དང་འབྲེལ་པ་ལས། །འཇིག་ཚོགས་སྙིང་པོ་བཅོམ་རྣམས་ཀྱིས།
།བསྒོམ་ལམ་ཡེ་ཤེས་སྤང་བྱ་རྣམས། །གོས་ཧྲུལ་དག་དང་མཚུངས་པར་བསྟན།
1.140에서 제시되는 버려야 하는 염오는 수소단(修所斷)이다. 번뇌장과 소지장(所知障) 중에서 소지장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성도(聖道)와 관련되어 유신(有身)의 핵심을 제거한 이들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성도(聖道, Tib. 'phags pa'i lam, Skt. ārya-mārga)는 견도(見道)를 가리킨다. 견도에서는 진여를 직접적으로 보고 깨닫는다. '유신(有身, Tib. 'jig tshogs, Skt. satkāya)'은 유신견(有身見, Tib. 'jig lta, Skt. satkāyadṛṣṭi)을 가리킨다. 유신견이란, 소멸하는 모임인 온(蘊)에 대하여 아(我)라고 보는 것을 의미한다. 유신견은 견도(見道)에서 제거한다. 견도에서 유신견이라는 조대한 장애를 제거했으면, 이후 수도(修道)에서 미세한 습기(習氣)를 제거한다.
"수도(修道)의 지혜로써 제거할 바들은 낡은 천과 같다고 설해졌다." 낡고 헤지고 더러운 천 안에 보배 상(像)이 숨겨져 있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보상(寶像)을 가리는 낡은 천은 수소단(修所斷)을 비유한 것이다.
잠곤꽁뚤석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성자의 도(道)인 4제(四諦)의 법성(法性)을 직접적으로 보는 것과 관련하여, 5온(五蘊)을 '나(我)'와 '나의 것(我所)'으로 집착하는 유신견(有身見) 등의 버릴 바의 핵심·주요한 것은 통찰(見)을 통해 버렸다. [그러나] 아라한들의 심상속(心相續)에 존재하는 법성(法性)을, 직접적으로 본 이후 수도(修道)의 지혜로 버려야 할 바는, 조대한 것이 사라진 후의 나머지이며, 마치 더러움이 묻은 썩은 천과 같다고 설했다. 그러므로 수소단(修所斷)은 썩은 천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학생: 습기(習氣)와 소지장(所知障)은 같은 것입니까?
켄뽀: 번뇌의 습기는 소지장에 속하지만, 모든 소지장이 번뇌의 습기인 것은 아니다.
학생: 1.140의 3행에서 "수도(修道)의 지혜로써 제거할 바"라고 하였는데, 지혜는 견도(見道)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요?
켄뽀: 견도(見道)에서 증득한 지혜를 수도(修道)에서 반복해서 닦아 익히는 것이다. 견도에서의 지혜와 수도에서의 지혜, 이 두 가지가 보는 진여가 동일한가에 관하여 상당한 논의가 있어왔다. 일반적인 교설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견도의 지혜와 수도의 지혜가 모두 진여(眞如)를 직접적으로 본다.
7지(七地)에 의지하는 염오는
태(胎)라는 염오와 같다.
태(胎)로부터 떠나는 것과 같이,
무분별의 지혜는 성숙한다. [1.41]
།ས་བདུན་ལ་བརྟེན་དྲི་མ་ནི། །མངལ་སྦུབས་དྲི་མ་དག་དང་མཚུངས།
།མངལ་སྦུབས་བྲལ་འདྲ་མི་རྟོག་པའི། །ཡེ་ཤེས་རྣམ་པར་སྨིན་པ་བཞིན།
수도(修道)에는 부정7지와 청정3지의 단계가 있다. 미세한 번뇌장(煩惱障)의 염오가 아직 청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상(相, Tib. mtshan ma)에 집착하는 분별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부정(不淨)하다고 한다. 전자의 설에 따르면 7지까지는 아직 번뇌장이 남아있는 것이다. 나는 후자로 설명하고자 한다.
"7지(七地)에 의지하는 염오는 태(胎)라는 염오와 같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태(胎, mngal sbubs)는 아이를 감싸고 있는 덮개이다. "태(胎)로부터 떠나는 것과 같이, 무분별의 지혜는 성숙한다."라고 하였다. 이 덮개로부터 벗어나면 아이는 장차 전륜성왕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7지까지 있던 상(相)에 대해 집착하는 분별이 사라지면, 등지(等持)나 후득(後得)의 상태에서 무분별(無分別)의 지혜가 생겨나서 성숙하게 된다.
괴 로짜와 숀누뺄의 주석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부정7지에 의존하는 염오들은, 더러움으로 부정한 속성을 지닌 태(胎)와 같다. 그 지(地)에서 경험하는 무분별지(無分別智)는 태(胎) 속의 유정과 같아서, 성자(聖者)의 모든 종류의 근(根)이 생겨나긴 했어도 각성하지 않았다. 모태로부터 벗어나면 그 어린아이의 근(根)들이 각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7지를 넘어서면서 무분별지가 성숙하니, 불신(佛身)이 완전해지는 것도 출생한 아이의 상황과 같다."
학생: 견도(見道)에서 이미 진여(眞如)를 직접적으로 깨달았는데, 수도(修道)에서 아직도 상(相)에 대한 분별이 있습니까?
켄뽀: '상(相, Tib. mtshan ma, Skt. nimitta)을 취(取)한다(Tib. mtshan 'dzin, Skt. nimittagrāha)'의 의미는 이러하다. 우리는 평소에, 이것은 기둥이다, 이것은 항아리이다, 이것은 흰색이다, 이것은 붉은 색이다라고 생각을 일으킨다. 이러한 생각을 일컬어 상(相)을 취(取)하는 분별이라고 한다. 5온(五蘊) 중에서 상온(想蘊)의 상(想)을 설명할 때, '상(相)을 취하는 것'이라고 한다. 상(相)을 분별할 때는 이것은 컵으로, 저것은 책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오직 법성(法性) 안에 머물 때에는 그러한 상(相)의 분별은 사라진다.
초지에서 제7지에 이르기까지의 단계에는 탐진치의 번뇌가 없지만, 대상에 대해 상(相)을 취하는 거친 수준의 분별은 여전히 남아있다. 물론 이때에도 등지(等持)에서는 분별이 없고 다만 후득(後得)일 때만 분별이 있다. 부정7지를 넘어서서 청정3지에 들어가면, 조대하고 거친 수준의 취상(取相)은 없지만, 미세한 수준으로는 상(相)에 대한 분별이 남아있다.
3지(三地)와 관련된 염오들은
진흙이 묻은 것과 같다고 알아야 하니
위대한 금강삼매로써
부숴야하는 바이다. [1.142]
།ས་གསུམ་རྗེས་འབྲེལ་དྲི་མ་རྣམས། །ས་འདམ་གོས་བཞིན་ཤེས་བྱ་སྟེ།
།བདག་ཉིད་ཆེན་པོ་རྡོ་རྗེ་ལྟའི། །ཏིང་ངེ་འཛིན་གྱིས་གཞོམ་བྱ་ཡིན།
괴 로짜와 숀누뺄의 주석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제8지 등의 3지와 관련된 염오들은, 내부의 금상(金像)이 외부에서 진흙으로 사방이 덮여있는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그 진흙을 장인이 두들김으로써 제거하면, 금상이 명확해진다. 마찬가지로, [청정3지의 염오는] 삼매들의 으뜸이 되는 위대한 금강삼매가 무간도(無間道)가 되어 부수는 바이다."
"3지(三地)와 관련된 염오들은 진흙이 묻은 것과 같다고 알아야 하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3지(三地)'는 제8지, 제9지, 제10지의 3단계를 가리킨다. '3지와 관련된 염오'는, 8, 9, 10지에서 존재하는 염오를 의미한다. '진흙이 묻은 것'은 앞의 비유에서 금상(金像)이 흙으로 가려져 있는 것을 뜻한다.
10지에 이르도록 여전히 미세한 염오는 남아있다. 이 염오는 무엇이 제거할 수 있는가? "위대한 금강삼매로써 부숴야 하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바로 금강삼매(金剛三昧, Tib. rdo rje lta bu'i ting nge 'dzin, Skt. vajropamasamādhi)로써 제거해야 한다. 제10지를 성취한 후에 다시 수습(修習)하여 등지(等持)에 들어가면, 어느 때인가 마침내 금강삼매가 일어나게 된다. 금강삼매가 일어난 한 찰나에, 미세한 염오는 모두 없어진다. 그리고 바로 다음 찰나에는 성불(成佛)하여 부처가 된다.
학생: 금강삼매와 제10지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켄뽀: 9지에서 10지로 올라왔더라도 여전히 모든 장애를 제거하지는 못한 상태이다. 제10지의 최후의 시점에 마침내 금강과 같은 삼매의 지혜가 생겨난다고 한다. 이 삼매는 가장 미세한 염오마저 모두 제거한다.
학생: 지혜가 먼저 생겨나고 그 다음에 염오를 모두 제거합니까? 아니면 염오를 모두 제거한 다음에 지혜가 생겨납니까?
켄뽀: 지혜가 생겨나는데 염오가 장애가 되지 않겠는가?
학생: 장애가 됩니다.
켄뽀: 그렇다면 장애가 여전히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지혜가 생겨날 수 있겠는가? 같은 질문을 앞의 견도(見道)와 견소단(見所斷)의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다. 견도를 일으켜서 견소단을 제거하는가, 아니면 견소단을 제거해서 견도를 일으키는가? 이와 같이 생각해본다면, 동시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만 견도(見道)에서 모든 염오를 제거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여전히 제거해야 하는 염오가 있고 수도(修道)에서 닦아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