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산 봉국사(2)

                                                    수원사람 김성채

조사전

조사전은 종파의 조사 스님, 사찰에 큰 업적을 남긴 주지 스님, 창건주 등 존경받는 스님들의 영정이나 위패를 모신 전각입니다. 사적기실비에는 6.25전쟁으로 퇴락된 봉국사를 지금 모습으로 이루어질 때까지 많은 불사를 이루어 내신 여러 스님의 큰 위덕을 칭송하는 내용이 가득 쓰여있습니다. 

조사전
 

그렇지만 조사전에는 우리나라 선종을 다시 일으켜 법맥을 중흥시키신 선사(禪師) 세 분의 진영이 모셔졌습니다. 선(禪)은 통일신라시대에 도의국사가 당나라에서 들여온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를 지나며 성쇠가 일어났고,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는 명맥이 끊어질 지경에 다다릅니다.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때에 새로운 禪 수행의 바탕을 일으킨 분이 경허선사이시고, 만공선사는 선불교 전통 회복에 그치지 않고 더 번창시킨 분입니다. 봉국사가 두 분의 큰 스님을 공경하고, 그 선맥을 이어받았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왼쪽부터)경허당대선사성우(鏡虛堂大禪師惺牛), 만공당월면대선사(滿空堂月面大禪師) 

상단 중앙에 경허스님, 좌우측에 만공스님과 춘성스님의 진영을 모셨습니다. 경허스님 진영 곁에 육환장과 염주가, 만공스님의 곁에는 주장자와 염주가 봉안되었습니다. 

선종의 제5조 홍인대사는 ‘불성은 본래부터 깨끗한데, 어느 마음에 티끌이 묻으리오’라는 혜능스님이 지은 게송을 보고, 깨달았음을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가사를 신표로 하고, 선법은 마음으로 후대에 전하라’는 말씀을 남깁니다. 큰 스님 두 분의 위엄과 지니셨던 힘을 본 적이 없지만 상단에 봉안된 주장자가 선종의 맥을 잇는 신표로 보였고, 주장자를 내리치며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우셨을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삼성각

가고 싶은 날 아무 때나 찾아가는 절이 아닌 다른 절을 처음 방문하였을 때, 선뜻 들어서지 못하는 전각이 삼성각입니다. 삼성각에 모신 칠성, 산신, 독성님이 불교와 관계가 없다는 생각을 가진 탓입니다. 그런 생각을 품고 있으면서도 법당에 들어서면 큰절을 올리고, 나와 가족들의 건강과 어려움에 부딪힌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이것은 예전에 할머님과 어머님이 장독대에 정화수를 올리고 정성스럽게 기도했던, 몇천 년 동안 조상님들이 후손을 위해 치성을 드려왔던 습성이 나의 몸에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윗대부터 믿었던 칠성과 산신을 믿는 전통 신앙이 ‘내 몸을 이렇게 길들여 놓았다’라는 생각입니다.

칠성, 산신, 독성을 모신 삼성각

부처님께서 많은 나라를 다니시며 불법을 펴나가실 때, 상대할 거리조차 못 되는 이런저런 외도들이 신통을 겨루자고 달려들었습니다. 장대 위에 걸린 발우를 가져오려고 신통을 뽐냈던 제자에 대하여 그런 행위는 사문의 법이 아니고, 청정한 몸가짐도 아니라고 꾸짖으셨던 부처님께서는 난감하셨을 겁니다. 여러 번 거절하시던 부처님은 ‘때가 되면 나타내겠다’라며 일단 거절하신 후, 여래의 신통력을 보고 싶은 사람을 모이게 하십니다. 부처님은 보름에 걸쳐 매일매일 많은 대중 앞에서 엄청난 신통을 보여주시고, 대중들이 자기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하십니다. 직접 겨룬 것이 아니어도 외도들은 자신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부처님의 큰 신통을 인정하게 됩니다. 

칠성탱화
 

불도가 아닌 모든 믿음을 외도라 할 수 없겠지만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칠성신앙은 불교에 융화되었고, 삼성각과 칠성각에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북두칠성이 무병장수와 소원성취를 이루어 주는 신으로 믿어지는 것처럼, 도교에서도 북두칠성을 의인화하여 칠원성군으로 모시고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어왔습니다. 이런 북두칠성과 별자리에 대한 믿음을 불교적으로 나타낸 그림이 칠성도입니다.

칠성탱 중앙에 북극성을 상징하는 치성광여래가 연화좌에 앉아 불교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진리의 바퀴, 법륜을 받쳐 들었습니다.

치성광여래의 두광 왼쪽에는 태상노군이 호로병을 매단 지팡이를 들었고, 오른쪽에는 관복을 입은 개덕진군이 치성광여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남극성을 의인화한 태상노군은 수성노인으로 불리며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데, 육계처럼 솟아오른 이마와 나이만큼 긴 흰 수염이 특징입니다.

그 아래는 북두칠성을 부처님 모습으로 그려낸 칠여래가 본존을 향해 좌우에서 합장하고, 공경하는 예를 드립니다.

도교에서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칠원성군을 그렸는데, 칠여래 아래에 관모와 관복을 입고 홀을 들고 섰습니다. 이는 도교의 믿음 한 부분이 불교에 들어와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바깥쪽에 관모 위에 태양과 달을 얹은 칠원성군의 권속이 섰습니다. 태양과 달이 인간들의 실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건만, 북두칠성에 비해 서열이 낮음을 보여줍니다. 

치성광여래 좌우에 협시하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태양과 달을 얹은 보관을 쓰고, 반가 자세로 앉아 태양과 달을 품었습니다. 두 보살은 약사여래의 협시보살로 태양과 달처럼 찬란한 빛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는 보살인데, 칠성탱에서는 치성광여래를 협시합니다. 

대광명전

‘수원 근처에는 역사가 남아있는 전통 사찰이 없을까?’라고 질문해서 찾아낸 곳이 봉국사입니다. 방문하고자 했던 큰 이유는 봉국사 대광명전이 국가유산 “보물”로 인정되었다는 것으로,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솟았습니다. 

대광명전이 보물로 지정되었으니, 당연히 사찰 내 전각과 석탑 등의 다른 문화재도 볼 수 있으려니 했습니다. 또 왕실에서 지은 원찰인데 ‘문화재가 대광명전만 있겠냐!’라는 생각도 있었지요. 그렇지만 도착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대광명전을 제외한 다른 전각들은 근래에 건축된 것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왕조실록을 보면 명선 명혜공주가 요절한 때로부터 34년이 지났음에도, 오라버니인 숙종이 누이동생의 제사에 쓰도록 쌀 20곡(斛)과 목면 1백 필을 각각 하사했다고 쓰여있습니다. 또 고종은 194년이나 지났음에도 내시를 보내 제사를 지내도록 한 기록이 있어서, 봉국사는 대광명전 외에 다른 전각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육이오전쟁으로 퇴락되었다’라는 사적기실비를 읽고, 대광명전 이외의 전각은 전쟁의 불길에 아깝게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도시라서 더 돋보이는 기단과 주춧돌

대광명전은 막돌과 막돌 사이를 석회와 흙으로 메꾸며 쌓아 올린 기단 위에 세워졌습니다. 기단에 사용한 막돌은 영장산에서 떠냈을 터인데, 채취한 돌을 다듬지 않은 이유는 토압에 의해 밀려남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칠성, 산신, 독성을 모신 삼성각연꽃이 단출하게 새겨진 주춧돌. 기둥에 비해 작아 보여 안쓰럽습니다.

그런 기단 위에 기둥을 간신히 놓을 만큼으로 작은 주춧돌을 놓았습니다. 눕힌 북 모양의 주춧돌에는 연꽃이 단출한 선만으로 새겨졌습니다.

한옥은 많은 자재마다 받을장과 엎을장을 파내고 깎아내 서로 맞추어 짓고, 못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기둥을 세울 때도 주춧돌에 기둥이 들어설 턱을 만들어, 기둥이 움직이지 않도록 합니다. 그리고 기둥이 얹히는 자리 아래쪽으로 가면서 넓어져 쇠시리를 새겨 장식하고, 기단과 접촉하는 면을 넓혀 집의 안정성을 높입니다. 

법당의 크기와 기둥 굵기에 비해 작은 주춧돌이 놓여 있지만, 주춧돌 밑에 적심을 튼튼이 심어놓았기에 3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법당이 굳건하게 서 있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사진에 보이듯 기둥은 주춧돌 중심에서 벗어났고, 기둥뿌리도 터졌고, 나무의 단단한 성질도 약해져 부스러지는 중입니다. 차라리 큰 자연석을 주춧돌로 놓고, 기둥뿌리를 그랭이질로 다듬었으면 더 안정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이웃에 직선으로 높게 지은 아파트단지가 있어서인지, 자연 그대로를 보여주는 막돌 기단과 투박한 주춧돌이 한결 정겹게 보이면서도 안타깝습니다.

법당 지킴이는 무서운 생김새가 필요치 않아

대광명전 기단 앞쪽 좌우에는 청석(靑石)으로 제작된 서수가 앉아 있습니다. 이제까지 법당 앞에 바짝 앉아서 법당을 지키는 동물은 본 적이 없는데, 독특하고 귀엽습니다. 

날카로운 윗어금니가 아랫입술 밖으로 얄밉게 삐져나왔고,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었습니다. 눈썹 위에 볼록하게 도드라져 양옆 쪽으로 늘어진 것은 뿔이고, 파이지 않아서 귀는 아닐 듯싶습니다. 목덜미에 갈기가 줄지어 늘어졌고, 앞다리 뒤쪽과 겨드랑이에 난 털은 바람결에 소용돌이치며 흩날립니다. 사자가 아닐까? 하기는 너무 귀엽고 어떤 용맹함도 찾을 수 없어서, 시비 판단을 잘하고 화재를 막아준다는 동물, 해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형체가 있거나 없거나, 뜬구름 같은 생각조차도 음과 양으로 나뉘어졌고, 동식물 모두가 암수로 구분되고, 그 둘은 싸우는 듯하면서도 조화를 이루어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합니다. 법당을 지켜주는 좌측과 우측 서수의 생김새가 살짝 다르게 조각되었습니다. 속으로 웃으면서 좌우측을 왔다 갔다 반복하다가 “남좌여우(男左女右)”라는 옛말에 근거해 암수를 갈라 보았습니다.(다음 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