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적으로나,

위로 아래로, 

옆으로, 

또 가운데로나,

인식되는 어떤 것이라도,

세상에서의 집착이라고 알아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갈애를 일으키지 말라.

(ⓒ장명확)

존재, 비존재는 얼핏 생각해 봐도 매우 철학적인 용어이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존재와 비존재의 개념과 의미를 파악하고자 숱한 노력을 기울였다. 예컨대 헤겔은 자신의 <플라톤 강의>에서 플라톤에게 최고의 형식은 존재와 비존재의 동일성이라고 주장했다. 철학적 담론들은 지나치게 난해하고 생경해서, 관심 있는 사람조차도 별도로 깊이 공부를 해야 이해되는 영역이다. 

견해와 인식이 오랜 기간 불교에 맞춰져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필자의 입장에서는 철학자들, 특히 서양철학자들의 난해한 주의주장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훨씬 명료하게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이 시는 <숫타니파타> ‘피안 가는 길의 품’ 가운데 ‘학인 도따까의 질문에 대한 경(Dhotakamāṇavapucchā)’에 나오는 부처님의 게송이다. 학인 도따까로부터 ‘열반을 배우겠다’는 요청을 받고 부처님은 사띠를 확립하고, 유행하며, 세상의 집착을 뛰어넘으라고 말씀하신 후 이 시를 읊으셨다. 이 시는 시공간을 막론하고 인식하는 어떤 것이든 집착임을 알아서, 존재와 비존재에 대해 갈애를 버리라는 매우 간단한 내용이지만, 그 짧은 시에 내포된 가르침은 매우 심오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존재와 비존재에 대해 부처님은 어떤 설법을 하셨을까’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처님은 <앙굿따라니까야> 둘의 모음 ‘견해의 경(Ditthisutta)’에서 존재에 대한 견해와 비존재에 대한 견해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비구들이여, 두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둘인가? 존재에 대한 견해와 비존재에 대한 견해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법이 있다.”

여기에서 ‘존재에 대한 견해(bhava-dtthi)’는 상견(常見, sassata-ditthi)을, ‘비존재에 대한 견해(vibhava- ditthi)’는 단견(斷見, uccheda- ditthi)를 뜻한다. 상견과 단견에 대해 고익진 교수는 저서 <한글아함경>에서 “스스로 짓고 스스로 깨닫는다고 하면 곧 ‘상견(常見)’에 떨어지고, 남이 짓고 남이 깨닫는다고 하면 곧 ‘단견(斷見)’에 떨어지는 것이다, 의설(義說)과 법설(法說)은 이 두 극단을 떠나 중도(中道)에서 설법한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즉 무명을 연하여 결합이 있고, … 아주 커다란 괴로움의 무더기가 집기 한다. 또한, 무명이 멸하면 곧 결합이 멸하고, … 아주 커다란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우다나- 감흥 어린 시구>의 ‘난다의 품’ 가운데 ‘세상의 관찰에 대한 경(Lokavolokanasutta)’에도 존재와 비존재를 주제로 한 부처님의 시가 등장한다. 비교적 긴 이 시는 집착과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바른 개념 정립과 견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세상은 존재에 집착하여

다른 것으로 존재하게 된다.

존재에 패배당하여

존재라고 즐거워한다.

존재를 즐기는 것은 두려운 것이고

두려워하면, 그것이 괴로움이다.

존재를 버리기 위해

사는 것이 청정한 삶이다.

누구든지 어떤 수행자이든 성직자이든

존재를 통해서 존재로부터의

완전한 해탈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면,

이들 모두는 존재로부터의 완전한 해탈을

이루지 못했다고 나는 말한다.

누구든지 어떤 수행자이든 성직자이든

비존재를 통해서 존재로부터의

완전한 여읨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고 하더라도,

이들 모두는 존재로부터 완전한 여읨을

이루지 못했다고 나는 말한다.

집착의 대상을 조건으로

이 괴로움이 생겨난다.

모든 집착을 부수면,

괴로움이 생겨나지 않는다.

이 세상을 널리 보라.

무명에 패배하여 존재가 되어

존재에 즐거워하고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곳에서든 어떠한 경우이든

어떠한 존재이든

그 모든 존재는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보면,

존재에의 갈애는 버려지고

비존재에도 환희하지 않는다.

일체의 갈애가 부수어진 곳에

남김없이 사라짐, 소멸, 열반이 있다.

                   - 전재성 님 옮김

생성, 성장, 이익, 행복에 집착하고 사로잡힌 사람들은, 쾌락에 따라 자기 뜻대로 생각하더라도 전도된 실천으로 끝내 불행하고 괴로운 존재가 되어 고통을 받는다. 존재에 집착한다는 것은 존재를 향한 갈애에 달라붙고 엉키고 묶인 것을 말하고, 다른 것이 된다는 것은 ‘나의 자아는 영원하다’는 등으로 생각하더라도 스스로 다른 것이 되어 무상한 것으로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앞에서 언급한 존재와 비존재에의 갈애는 갈애의 두 가지 측면을 의미한다. 존재에의 갈애는 형상에 대한 갈애, 감각적 쾌락에의 갈애와 같이 대상이 항상하며 영원하다고 보는 영원주의[상견]를 수반한다. 반면 그와 같은 대상이 단절되거나 멸망한다고 보는 허무주의[단견]를 수반하면 비존재에의 갈애라고 부른다. 

이 시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불교의 궁극적 목적지인 열반의 성취와 해탈은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갈애를 끊는 것, 즉 번뇌의 완전한 소멸을 필요조건으로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