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갖가지
슬픔과 비탄과 고통이
사랑하는 자를 조건으로 생겨난다.
사랑하는 자가 없으면,
그것들은 생겨나지 않는다.
세상 어디에도
사랑하는 자가 없으면,
슬픔을 여의고 행복을 얻으니
슬픔을 여의고 티끌을 여의고자 하면,
세상에 어디에도 사랑하는 자를 만들지 말라.
-전재성님 옮김
(ⓒ장명확)
한 때, ‘자고 나니 선진국’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우리나라가 믿기지 않겠지만 세계에서 부끄러운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있는 중이다. 졸지에 ‘자고 나니 후진국’으로 전락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완전한 선진국이 되려면 그것에 걸맞은 민도가 있어야 하지만, 여전히 선진국 수준의 민도에 미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것이다. 민도가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니 손바닥에 ‘王’ 자를 쓰고 나온 자를 나라의 최고권력자로 선출하는 오류를 범하고 만 것이다. 확고하게 정착한 줄 알았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정신 나간 권력자와 그를 추종하는 간신배들, 그리고 현명하지 못한 대중의 어리석은 선택과 지지로 크게 훼손되는 중이다. 환율은 치솟으며 수출에 비상이 걸렸고, 외교는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미국 대통령이 바뀌는 중대한 시점에서 신속하고 치밀한 대처가 불가능해지면서 국운에도 암울한 전망이 팽배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나라의 미래가 벼랑 끝의 경각에 달려 있지만 적지 않은 국민들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아무려나, 온전하지 못한 권력자에 대한 빗나간 추종이 얼마나 큰 낭패를 부르는지 21세기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온몸으로 절감하는 중이다. 그러나 그런 자에 대한 일부 광신적 지지자들의 병적 사랑이 숙주가 되어 정신 나간 권력자는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버티고 있는 중이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서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비상계엄’이라는 이름의 내란사태가 벌어진 원인으로 ‘정신 나간 권력자의 아내를 향한 사랑’을 거론하는 등 조롱 섞인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자신의 아내를 지키기 위해 국가의 안위와 존망 따위는 개의치 않는 무모함이 내란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조롱 섞인 분석이 옮고 그른지 여부를 떠나서 내란으로 인해 초래된 국제적 망신살은 어쩔 것인가. 올바른 사랑이야 바람직하고 좋은 것이지만, 잘못된 사랑은 작금의 내란사태에서 보듯 위험하기가 짝이 없다.
빗나간, 온전하지 못한, 잘못된, 집착 수준의 한 대상에 대한 오염된 사랑이 얼마나 큰 폐해를 불러오는가를 설파한 부처님의 시가 <쿳다까니까야> 8-8 ‘위싸카의 경(Visākhāsutta)’에 등장한다. 부처님은 ‘세간해’라는 명호처럼 세상의 모든 일을 혜안으로 꿰뚫어 보고 계신 분임을 입증이나 하듯, 비정상적 사랑의 폐해에 대해서도 명쾌하고 단호한 가르침을 설하셨다.
이 시는 수닷따 장자와 함께 부처님 당시 상가에 큰 보시를 한 여인, 위싸카의 사랑스러운 손자가 죽는 과정에서 설해졌다. 손자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위싸카 여인은 갑자기 손자가 죽자 옷을 적시고 머리도 적신 채, 대낮에 싸왓티의 미가라마뚜 강당[녹자모강당]에 머물고 있던 부처님을 찾아왔다. 부처님께서 비통한 표정으로 허겁지겁 찾아온 위싸카 여인에게 대낮에 찾아온 연유를 묻자 그녀는 “저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손자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옷을 적시고 머리도 적신 채, 대낮에 부처님께서 계신 곳을 찾아왔습니다.”라고 답했다. 부처님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손자의 죽음으로 이성을 잃은 위싸카 여인을 연민의 마음으로 맞았다.
“위싸카여, 그대는 싸왓티 시에 사는 사람만큼이나 많은 아들과 손자를 갖기를 원하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싸왓티 시에 사는 사람만큼이나 많은 아들과 손자를 갖기를 원합니다.”
“위싸카여, 매일 얼마나 많은 싸왓티 시의 사람들이 죽는가?”
“세존이시여, 아마도 싸왓티 시에서 매일 열 사람이 죽습니다. 아마도 매일매일 아홉 사람, 여덟 사람, 일곱 사람, 여섯 사람, 다섯 사람, 네 사람, 세 사람, 두 사람이 죽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마도 싸왓티 시에서 사람이 죽지 않는 날은 없습니다.”
“위싸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언제나 어디서나 옷을 적시지 않고 머리도 적시지 않은 채, 있을 수 있는가?”
“세존이시여, 그럴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그 많은 아들과 손자를 지녔다면, 말할 나위조차 없습니다.” -전재성님 옮김
부처님은 위싸카 여인이 제정신으로 돌아왔음을 확인한 후, “백 명의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 괴로움이 있고, 아흔 명의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흔 가지 괴로움이 있고, … 두 명의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두 가지 괴로움이 있고, 한 명의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한 가지 괴로움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괴로움도 없다. 그에게는 슬픔이 없고, 티끌이 없고, 번민이 없다고 나는 말한다.“라고 일깨운 뒤, 때 맞춰 감흥 어린 시를 읊었다. 이 시는 소유한 것, 사람이든 대상이든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에 대한 불안, 소유한 것을 지키려는 애착이나 집착 등이 모든 고통의 근원임을 설파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 시어 ‘갖가지’는 중생들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라는 의미이다.
- 시어 ‘슬픔’은 친지나 재산이나 탐욕이나 계행이나 견해의 망실(亡失)에 접촉해서 안으로 걱정하는 어리석은 자의 마음의 괴로움을 말한다.
- 시어 ‘비탄’은 친지나 재산이나 탐욕이나 계행이나 견해의 망실에 접촉해서 신체적 탈진으로 생겨나는 울부짖음을 특징으로 하는 강한 슬픔의 상태 말한다.
- 시어 ‘고통’은 몸이 원하지 않는 대상과 접촉해서 괴로워하는 특징을 말한다.
- 시구 ‘사랑하는 자를 조건으로 생겨난다’에서 사랑하는 자란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대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시구는 사랑하는 자에게서 생겨난 존재의 형성을 조건으로 생겨난다는 뜻이다.
- 시구 ‘생겨나지 않는다’는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욕망과 탐욕을 버리면, 갖가지 형태의 슬픔과 비탄과 고통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 시구 ‘슬픔을 여의고 행복을 얻으니’는 고귀한 님들은 일체의 탐욕을 여의었으므로 어떠한 것이라도 중생의 세상에서 사랑하는 아들, 형제, 자매, 아내와 같은, ‘이것은 나의 것이고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이고 이것으로 나는 행복해질 것이다.’라고 집착하는 사랑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슬픔을 여의고 슬픔을 여의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의미이다.
- 시구 ‘슬픔을 여의고 티끌을 여의고자 하면’은 슬픔을 여읜 상태, 탐욕의 티끌 등을 여읜 상태, 티끌을 여읜 거룩한 경지인 열반을 얻고자 원한다면의 뜻이다. 여기서 티끌은 탐진치 삼독심으로부터 일어나는 갖가지 번뇌를 말한다.
- 시구 ‘세상 어디에도 사랑하는 자를 만들지 말라’는 형상 등과 같은 어떠한 것에도, 그것이 설사 멈춤과 통찰에 관련된 어떠한 것이더라도 사랑하는 자, 사랑하는 것, 사랑스러운 존재를 두지 말고, 일으키지 말라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