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마지막 당부
(삽화 정윤경)
아난다는 붓다가 설한 <금강경>이야말로 ‘장로들이 아라한에 머물지 말고 보살이 되라’는 간곡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깨달았다. 경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 세상 유무정 중생들을 위해 자애롭게 헌신하고 난 뒤, 영원한 평안의 피안으로 건너가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붓다가 <금강경>에서 무아를 반복적으로 설한 의도는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아라한이라 하더라도 왜 이 괴로움의 바다[苦海] 같은 차안의 세상에 더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있는 것도 <금강경>의 가르침이었다. 영원한 평안의 피안으로 건너가기 전에 무아법으로 이 세상의 유무정 중생들을 위해 스스로 전체[同體]가 되어 헌신하라는 것이 붓다의 당부였다.
얼마 후면 칠엽굴에서 결집을 시작한 지 7개월이 되었다. 우팔리의 증언과 5백 명 장로들의 합송으로 율장의 결집이 먼저 끝났고, 이후 아난다의 암송과 5백 명 장로들의 합송으로 경장의 결집도 어느 새 마무리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난다는 지금까지 우팔리와 달리 붓다가 설한 가르침을 암송하면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처음도, 중간도, 끝도 막힘없이 지치지 않고 차분하게 암송했다. 이러한 아난다의 태도를 보고 가장 감동한 장로는 바로 마하깟사빠였다. 결집을 주도해온 당사자였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하깟사빠는 혼잣말로 “내가 열반에 든 이후는 아난다 장로가 승가를 이끌어 갈 것이다” 라고 중얼거린 적도 있었다. 처음 기원정사 시절에는 아난다를 애송이 비구라고 얕보았지만 지금은 그 반대였다. 아난다를 어떤 장로보다도 더 신뢰했다. 아난다의 암송을 듣는 순간에는 더 없이 행복했던 것이다.
<“다시 수부띠여, 실로 이 무아법은 평등하고 어떠한 차별도 없다.
그러기에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라고 불린다.
이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은 자아가 없다는 것으로 인하여,
살아 있는 것이 없다는 것으로 인하여,
개체가 없다는 것으로 인하여, 개인이 없다는 것으로 인하여 평등하며,
모든 선법(善法)에 의하여 현실로 깨닫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부띠여,
‘선법, 선법이란 법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바로 ‘선법’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중략)
무아법은 모든 유무정 중생들에게 평등하고 어떠한 차별도 없으므로 성불한 이들이 이룬, 더 이상의 것이 없는 최상의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각)와 같은 것이었다. 아난다는 그렇게 이해했다. 그러니 이 세상의 모든 중생들이 무아법만 깨달으면 누구나 보살이 될 수 있었다.
“다시 또 수부띠여,
실로 어떤 여자나 남자가
이 끝없이 넓은 우주에 있는 모든 산들의 왕,
수미산의 수만큼이나 일곱 가지 보배를 모아서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여래, 존경받을 만한 분, 올바로 깨달은 분들에게 보시하더라도,
또 한편 훌륭한 젊은이와 딸들이
이 ‘지혜의 완성’이란 법문에서
사행시 하나만이라도 꺼내어 남을 위해 설한다고 하면,
수부띠여, 전자의 공덕을 쌓은 방법은
후자의 공덕을 쌓는 공덕에 비하면, 그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나아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중략)
<스승 붓다는 말했다.
“실로 실로 수부띠여, 그러하니라.
수부띠여, 그대가 말하는 대로이니라.
여래는 특징을 갖춘 존재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만약에 여래가 특징을 갖춘 존재라고 보인다면
전륜성왕 역시 여래라고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여래는 특징을 갖춘 자로 보아서는 안 된다.”
수부띠는 스승을 향하여 말했다.
“스승이시여, 제가 스승이 하신 말씀의
의의를 철저히 사유한 바에 의하면
여래는 특징을 갖춘 자라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때 스승 붓다는 다음과 같은 사행시를 읊으셨다.
“형태에 의해서 나(여래)를 보고
소리에 의해서 나를 찾는 자는,
잘못된 정진에 빠져 있는 자
그 사람들은 나를 볼 수 없으리라.”>
(중략)
여래는 눈과 귀, 생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상(相)이 아니니 여래를 절대화 내지는 관념화시키지 말라는 벼락같은 가르침이었다. 여래라는 이름이 있을 뿐 실체는 불성(佛性)으로서 전체[同體]로 존재하므로 눈과 귀, 생각으로 맹신할 여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모든 상에 실체가 없음을 본다면 여래를 볼 수 있는 대문이 비로소 활짝 열리게 되므로 그것이 바로 최상의 깨달음이었다.
<“현상계라고 하는 것은
별이나 눈앞의 그림자나 등불이나 혹은 환영이나.
이슬이나 물거품이나 꿈이나 번개나 구름과 같으니,
이와 같이 사무치게 보여야 하리.
스승 붓다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수부띠 장로는 기뻐하였고,
비구와 비구니, 재가 신자들과 신녀(우바새와 우바이))들,
또 천상계의 존재, 인간, 아수라. 간다르바(건달바) 등을 포함하는
세계의 모든 존재들은 스승이 설하신 가르침을 찬양했다.
고귀하고도 금강석마저 끊어버릴 수 있으며 복덕까지 갖춘
‘지혜의 완성’은 이것으로 끝났다.”>
붓다의 마지막 설법은 절절한 호소나 다름없었다. 현상계가 무상하다는 이해 차원을 넘어서 사무치게 온몸으로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눈앞에 드러난 존재들은 깜빡이는 별 같고, 아물거리는 그림자 같고, 훅 불면 꺼지는 등불 같고, 실체가 아닌 환영 같고, 해가 뜨면 사라지는 이슬 같고, 저절로 꺼지는 물거품 같고, 눈만 뜨면 사라지는 꿈같고, 번쩍 하고 자취를 감추는 번개 같고, 머잖아 흩어지고야 마는 구름 같다고 계속 반복해서 비유를 들고 있음이었다. 인식만 하지 말고 무상관으로 정진하여 궁극에는 대승의 길로 나아가라는 붓다의 가르침이었다. 뿐만 아니라 무아를 깨달아 개체로 살지 말고 전체가 되어 모두 함께 영원한 평안의 피안으로 건너가라는 가르침이 아닐 수 없었다.
붓다가 마지막으로 설한 내용을 아난다가 암송하고 5백 명 장로들이 합송했는데도 모두들 자기자리에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기쁨이 넘쳤고 믿음이 솟구쳐 감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아난다 장로도 마찬가지였다. 아난다 역시 세상의 모든 존재들과 함께 자신이 암송해온 스승 붓다가 설하신 가르침을 마음속으로 찬양했다.
붓다가 열반했던 그 보름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5백 명 장로들은 붓다가 다시 살아오신 듯한 기쁨에 눈물을 흘렸고, 가까이서 붓다를 맞이한 듯 경건하게 합장한 손을 풀지 못했다.
마하깟사빠는 자신의 예감대로 결집이 끝나가고 있는 것에 안도했다. 수부띠 역시 아난다의 수고로 붓다가 설한 가르침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으므로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이후부터는 율장과 경장이 열반하신 붓다를 대신해서 수행자들에게 지침의 등불이 될 것이기에 공론(空論)이 사라지고, 승가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일은 결코 없을 터였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