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를 지켜줄 법문

(삽화 정윤경)
붓다는 처음에 아라한이 된 마하깟사빠를 보살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마하깟사빠에게는 아직도 출신성분과 가문의 자부심, 자신의 지식에 대한 아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라한이 못된 아난다를 애숭이 비구라고 불렀던 것도 그의 아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마하깟사빠의 출신성분만 따진다면 붓다보다 더 고귀했다. 붓다는 끄샤뜨리아였지만 마하깟사빠는 바라문이었다. 그러나 칠엽굴에서 아난다의 암송을 듣는 마하깟사빠는 아상을 버린 지 오래였다. 결코 아난다를 애숭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아난다를 여느 장로와 같이 벗이라고 생각했다. 아난다가 암송하는 동안 마하깟사빠는 모래가 물을 빨아들이듯 아난다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스승 붓다가 물었다.
“수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 존경받을 만한 분,
올바로 깨달은 사람은 위대한 인물이 갖추고 있는
서른두 가지 특징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수부띠가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여래, 존경받을 만한 분,
올바로 깨달은 사람은 위대한 인물이 갖추고 있는
서른두 가지 특징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실로 스승이시여,
‘여래에 의해서 설해진 위대한 인물이 갖춘 서른두 가지 특징은
특징이 아니다’라고 여래가 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위대한 인물에게 갖추어진 서른두 가지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스승 붓다가 말했다.
“그래서 또 다시 수부띠여, 어떤 여자, 어떤 남자가
매일 강가 강의 모래와 같이 많은 몸을 이와 같이 계속해서 바쳐,
강가 강의 모래알만큼 무한한 시간 동안 그 몸을 계속해서 바쳤더라도,
이 법문 안에서 사행시(四行詩, 사구게) 하나만이라도 꺼내어
남을 위해 보여주고 설명해 준다면
이쪽 편이 이 일 때문에 더 한층 많아서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쌓게 될 것이다.”
그때 수부띠가 이 법문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는 눈물을 닦고 나서 스승 붓다를 향하여 말했다.
“스승이시여, 훌륭하십니다. 행복한 분이시여, 아주 훌륭하십니다.
‘이 위없는 도(道)를 향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장 훌륭한 도를 향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법문을 여래께서 설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스승이시여, 이 법에 의해서 저는 지혜가 생겼습니다.
스승이시여, 저는 이와 같은 법문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스승이시여, 이 경을 설하는 것을 듣고,
진실이라고 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구도자는
이 위없는 훌륭한 성품을 갖춘 사람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승이시여, 진실이라는 생각은
진실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여래는 ‘진실한 생각’이라고 설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스승이시여, 이 법문이 설해졌을 때
제가 그것을 받아들여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옵니다.
그러나 스승이시여, 이제부터 다음 세상인 제2의 5백년 대(말세)에
올바른 가르침이 망할 즈음에 어떤 사람들이
이 법문을 들어 기억하고, 외우고, 연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세히 설명할 것인데,
그 사람들은 가장 훌륭한 성품을 갖춘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스승이시여, 실로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자기’라고 하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살아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도, 개체라는 생각도,
개인이라는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생각한다는 일’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승이시여, ‘자기’라고 하는 생각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살아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도, 개체라는 생각도,
개인이라는 생각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신 세존들은
모든 생각을 멀리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아난다는 어느 날 마하깟사빠의 출가 이야기를 수부띠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이후 아난다는 마하깟사빠를 좀 더 이해하고 존경했다. 여래가 갖춘 서른두 가지 특징은 없지만 제2의 5백년 대의 미래에도 마하깟사빠는 훙륭한 성품을 갖춘 인물로서 존경받을 것이 분명했다.
마하깟사빠가 출가한 때는 스승 붓다가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붓다가 라자가하에 오심으로 해서 라자가하 거리는 출가비구들로 넘쳐났다. 붓다도 가끔 죽림정사를 나와 거리를 걸었다. 그날도 붓다는 북쪽을 향해서 연꽃이 피어나듯 발끝을 응시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말없이 몸을 움직였다. 햇살이 여느 날보다 강했다. 붓다는 날란다로 가는 큰길을 따라가다가 니그로다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어가려고 했다. 붓다는 휴식을 취할 때도 선정에 들었다. 붓다가 니그로다나무 그늘에 앉아 있자 눈부신 빛이 났다. 빛은 붓다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빛에 감싸인 붓다를 보고 놀랐다. 석양이 기울 무렵이었다. 한 사내가 붓다에게 다가와 엎드려 절을 했다. 그는 붓다를 스승으로 삼고 싶어 말했다.
“당신은 저의 스승이십니다.”
마가다국의 큰 부자이자 바라문의 외아들인 삡빨리였다. 여덟 살 때부터 네 가지 베다를 다 외우고 천문, 지리, 역사 등 여러 학문을 익힌 청년이었다. 그는 학문이 깊어질수록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외아들인 그는 부모를 외면할 수 없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는 부모가 원하는 결혼을 마지못해 했다. 부모는 아들이 가문의 대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아내는 맛다국 사갈라의 꼬시야종족 장자의 딸 밧다까삘라니였다. 아내 역시 출가하기를 바라는 처녀였다. 삡빨리는 아내 덕분에 안심하고 부모에게 말했다.
“부모님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저희들이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뒤에는 출가하겠습니다.”
부모는 아들의 제안을 만류하지는 못했다. 자신들이 죽기 전에 손자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삡빨리 부부는 밤마다 두 사람 사이에 꽃다발을 두고 잠을 잤다. 삡빨리의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몇 년을 살았지만 한 번도 두 사람 사이의 꽃다발은 그대로였다. 한 가지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침내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자 부부는 서로의 머리를 깎아 주었다. 그런 뒤 토지와 재산을 하인들에게 나누어주고는 흙으로 빚은 발우 하나씩만 들고 집을 나섰다. 주인을 졸지에 잃은 하인들이 울부짖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세 걸음 떨어져서 당당하게 걸어갔다. 한참을 걸었을 때였다. 갈림길이 나타났다. 앞서 걷던 삡빨리가 걸음을 멈추었다.
“밧다여, 우리는 수행자입니다. 함께 길을 걷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이 갈림길에서 당신과 작별해야 합니다. 당신이 먼저 길을 선택하십시오.”
“남자인 당신은 행운이 있는 오른쪽 길을 가십시오. 저는 왼쪽 길을 가겠습니다.”
삡빨리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로 나아갔다. 오른쪽 길로 가면 라자가하에 이를 수 있었다. 그는 날란다를 지나 계속 걸어갔다. 그때 길가의 니그로다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 한 수행자가 보였다. 온화한 수행자의 몸에서는 빛이 나고 있었다. 삡빨리는 한눈에 그가 자신의 스승이 될 분임을 예감하고는 그에게 엎드려 절했다.
“당신의 저의 스승이십니다.”
“가까이 오라. 니그로다나무 아래에서 그대가 오기를 기다렸느니라.”
“존귀하신 당신은 저의 스승이십니다. 저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아는 척하거나 본 척하는 거짓된 스승이 그대처럼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예배를 받는다면 그의 머리는 일곱 조각으로 깨어질 것이다. 나는 모르면서 아는 척하거나 보지 못했으면서 본 척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아라, 그대의 예배를 받고도 터럭 하나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대로 알고 사실대로 보았기에 알고 본다고 말하는 나는 그대의 예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렇다. 나는 그대의 스승이고 그대는 나의 제자다.”
죽림정사로 돌아온 붓다는 마하깟사빠에게 일주일 동안 공양과 잠자리를 함께하며 오직 그를 위해 법을 설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했다.
“깟사빠, 그대는 신분의 우월함을 버리고 선배와 후배와 동료들 사이에서 항상 신중함을 보여야 한다. 깟사빠, 그대는 식견의 우월함을 떨치고 어떤 법을 듣건 귀를 기울이고 마음에 새기며 깊이 버리고 항상 게으르지 말며 즐거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수행해야 한다.”
그에게 바라문이라는 출신성분과 부유한 가문의 자부심, 여러 학문을 익힌 지식에 대한 아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팔 일째 되는 날, 마하깟사빠는 모든 번뇌와 집착에서 벗어난 아라한이 되었다. 그러나 아라한이 되었지만 그는 붓다가 우려했던 대로 한동안 아상을 말끔하게 씻어버리지는 못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