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도 재산도 금은도
또한 어떠한 소유도
노예, 하인, 일꾼
또는 그의 친인척도
모두 놓고 가야 하네.
몸으로 행하는 것,
말로 행하는 것, 마음으로 행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것,
누구나 그것을 가지고 가니,
그림자가 몸에 붙어 다니듯
그것이 따라다니네.
착하고 건전한 일을 해서
미래를 위해 쌓아야 하리.
공덕이야말로 저 세상에서
중생의 의지처가 되는 것이므로.

(ⓒ장명확)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즉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유행가의 가사로도 널리 알려진 이 말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어느 종교를 신봉하는가에 관계없이 자주 활용된다. 물론 이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죽었을 때 입히는 수의에 어떤 주머니도 없다는 것은, 망자가 가지고 갈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공수래공수거와 관련이 있다.
사실 재산은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지나치게 많아도 문제를 일으킨다. 재벌가에서 상속을 앞두고 이른바 ‘왕자의 난’이 일어나는 것도, 천문학적 지분을 놓고 재벌 부부가 이혼소송을 벌이는 것도 재산이 많았을 때에 일어나는 볼썽사나운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부자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재산을 가진 부모가 어리석으면, 그 자녀들이 상속재산을 놓고 분란을 겪거나 서로 원수지간이 되는 경우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목도되는 일이다.
아주 오래 전, 필자가 결혼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 칠보사에 주석하시던 석주 큰스님을 찾아뵙고 주례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큰스님께서는 결혼식을 절에서 하면 기꺼이 주례를 맡아주시겠노라 말씀하셨지만, 친인척들 가운데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이 ‘절에서 하면 참석하지 않겠다.’고 반대하는 통에 그만 무산되고 말았다. 우리 부부로부터 절에서 결혼할 수 없는 연유를 들은 큰스님께서는 역정은커녕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시며 “결혼은 마땅히 모든 이의 축하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주례는 못해주지만 평생 부자로 사는 ‘부적’을 한 장 써주겠다.”시며 ‘오유지족(吾唯知足)’을 입구(口) 자를 중심으로 쓴 글을 주셨다. ‘족한 줄 알고 살라.’는 큰스님의 이 글은 지금까지 거실 벽 한가운데 걸려 우리 부부의 좌우명 역할을 하고 있다. ‘어째 이 선생은 사주에 재복이 없다.’는 몇몇 분들의 ‘아는 소리’에 끄덕도 하지 않게 된 것도 돌이켜보면 다 큰스님께서 주신 이 ‘부적’ 덕이 아닌가 싶다. 아무려나, 평생 가난한 선비의 삶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필자가 전생에 이렇다 할 공덕을 쌓지 못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재산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죽어서 가져갈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죽어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오진 업이다. 착하고 건전한 행위를 한 이에게는 선근공덕이 그림자처럼 망자를 따라다닌다. 반대로 악하고 불건전한 행위를 한 자에게는 악업이 따라다니게 된다. 선근공덕을 지으면 선처에 태어나고, 재복과 건강과 장수와 아름다운 용모를 갖추게 된다. 악업을 지은 자에게는 당연히 온갖 고통이 수반된다. 이처럼 인과응보(因果應報)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죽은 뒤의 세상을 눈으로 보거나 확인할 수 없으니 많은 사람들이 인과를 가벼이 여기고 함부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인과처럼 분명하고 정확한 것은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이 시는 <쌍윳따니까야> 3:20 ‘아들 없음의 경(Dutiyaputtakasutta)’에 등장한다. 부처님께서 사왓티 시에 머물던 어느 날,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이 찾아와 사왓티 시의 한 백만장자가 죽었는데, 그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아들이 없어 자신이 그 유산을 몰수하여 왕궁으로 가져다 놓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빠쎄나디 왕은 죽은 백만장자가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쌀겨로 만든 죽을 먹었고, 세 조각으로 기운 대마 옷을 입었으며, 나뭇잎으로 덮개를 덮은 수레를 타고 다녔다고 전했다.
빠쎄나디 왕으로부터 백만장자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부처님은 그가 전생에 홀로 연기법을 깨달은 수행자에게 음식을 베푼 것을 후회했고, 재산을 얻기 위해 형제의 외동아들을 죽이기도 했으며, 그런 과보로 훌륭한 음식을 먹는 데 마음을 기울이지 못했고, 다섯 가지 훌륭한 감각적 쾌락의 종류를 즐기는데도 마음을 기울이지 못했다고 알려주었다. 또한 그 백만장자는 따가라씨킨이라고 하는 인연법을 깨달은 님에게 공양을 올린 선한 행위의 과보로 일곱 번 하늘나라에 태어났으며, 그 행위의 과보가 남아 일곱 번이나 싸왓티 시의 백만장자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형제의 아들을 죽이고, 수행자에게 공양한 것을 후회하는 등 악행의 과보로 인해 몇 년, 몇 백 년, 몇 천 년, 몇 십만 년 동안 지옥에서 괴로워했고, 그 과보가 여전히 남아 일곱 번 태어나도 자식이 없고, 막대한 재산은 대왕의 창고로 들어가게 되었으며, 죽은 뒤에 대규환지옥(叫喚地獄)에 태어났다고 알려주었다. 규환지옥은 팔열지옥(八熱地獄)의 하나로,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음란한 짓을 하고 술을 마신 죄인이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으로, 끓는 가마솥이나 불 속에서 고통을 받는 지옥을 말한다.
이렇게 빠세나디 왕에게 백만장자의 죽음과 관련하여 전생의 과보에 대해 설한 부처님은,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은 오직 선근공덕뿐임을, 다시 간결한 시로 정리해 읊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