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행시의 공덕
(삽화 정윤경)
5백 장로들이 칠엽굴에서 아난다가 암송하는 붓다의 설법을 듣기 위해 앉은 순서는 죽림정사나 기원정사 시절의 예를 따랐다. 정사 뜰에서 붓다에게 귀의하여 구족계를 받은 순서대로 반원을 그리며 앉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아라한이 된 순서대로 앉지 않았다. 물론 구족계를 받은 순서와 아라한이 된 순서는 대충 비슷했지만 꼭 일치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붓다가 구족계를 받은 순서대로 앉으라고 당부한 까닭은 깨달음의 성취보다는 계율을 오랫동안 지킨 행위가 승가(상가)에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붓다가 있건 없건 간에 청정승단이 유지되려면 지계가 첫째 조건일 수밖에 없었다. 앗사지에게 붓다의 설법을 전해 듣고 출가한 사리뿟다와 목갈라나도 죽림정사에서 지계의 순서대로 앉곤 했다.
이러한 원칙은 칠엽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원정사 개원법회 때 출가한 수부띠는 중간쯤에 앉아 있었고, 앞줄 차지는 의심의 여지없이 수십 년 전에 전법을 위해서 라자가하로 왔던 늙은 앗사지였다. 앗사지는 꼰단냐, 왑빠, 밧디야, 마하나마 등과 함께 붓다가 위없는 깨달음을 얻고 난 뒤 최초로 설법을 듣고 아라한이 된 비구였던 것이다. 그들 다섯 비구 뒤에 출가한 이는 바라나시 부호의 아들인 야사와 야사의 친구 위말라, 수바후, 뿐나지, 가왐빠띠 등등 50명이었다. 출가한 야사의 친구들 모두가 칠엽굴에 왔다면 누구라도 당연히 앞자리를 차지할 터였다.
<스승 붓다께서 물었다.
“수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강가 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강가 강들이 있다고 하자.
그 같은 많은 강들에 있는 모래알은 얼마나 많을까?”
수부띠가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강가 강의 모래알만 하더라도
막대하게 많은 모래알입니다.
하물며 수많은 강들에 있는 모래알 수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붓다가 말했다.
“나는 그대에게 말한다.
수부띠여, 그대가 잘 이해하도록 하라.
수많은 강가 강 같은 모래알 수만큼이나 많은 세계를,
어떤 여자든 남자든 일곱 가지의 보배로 가득 채워 여래,
존경받을 만한 분, 올바로 깨달으신 분들에게 보시했다고 하자.
수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여자나 남자가 그 일로 인하여 많은 공덕을 쌓은 것일까?”
수부띠가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행복한 분이시여. 그 여자나 남자는
그 일로 인하여 많고 많아서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쌓은 것이 됩니다.”
붓다가 말했다.
“수부띠여, 어떤 여자나 남자가 그렇게 많은 세계를
일곱 가지의 보배로 꽉 채워 여래, 존경받을 만한 분,
올바르게 깨달은 분들에게 보시하더라도,
만약 훌륭한 젊은이와 딸이
이 법문 안에서 사행시(四行詩, 사구게) 하나만이라도 꺼내어
남을 위해 보여주고 설명해 준다면
이쪽 편이 이 일 때문에 더 한층 많아서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쌓는 것이 된다.”
또 수부띠여, 어떤 지방에서든 이 법문에서
사행시 하나라도 꺼내어 얘기하거나 설명한다고 하면,
그 지방은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들을 포함하는 세계에서
탑묘(塔廟)와 같은 것이 되리라.
하물며 이 법문을 남김없이 기억하고, 읽고, 연구하고,
남을 위해 자세하게 설명하여 들려주는 자가 있다고 하면,
수부띠여, 그들은 ‘최고의 불가사의함을 갖춘 자’임이 틀림없다.
수부띠여, 그러한 지방에는 우러러 존경받는 스승이 살고,
또 가지가지의 ‘총명한 스승의 지위에 있는 자’가 사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붓다가 설했을 때, 수부띠가 물었다.
“스승이시여, 이 법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또 이 법문을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습니까?”
수부띠가 이와 같이 묻자 붓다가 대답했다.
“수부띠여, 이 법문은 ‘지혜의 완성(금강반야바라밀)’이라고 불린다.
이와 같이 기억하라. 왜냐하면 수부띠여, ‘여래에 의해서 설해진
‘지혜의 완성’은 ‘지혜의 완성’이 아니다, 라고
여래에 의해 설해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 이름이 ‘지혜의 완성’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칠엽굴에서도 구족계를 받은 순서대로 앉아서 아난다의 암송을 경청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마하깟사빠는 순서를 무시하고 앉아 있었다. 그는 붓다가 죽림정사에 있을 때 출가했으므로 수부띠보다 조금 앞 중간쯤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런데 마하깟사빠는 아난다 바로 앞에 앉아서 아난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아난다는 왜 마하깟사빠가 앞자리에 앉아 있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아난다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었다.
붓다가 사왓티에 계실 때의 일이었다. 그날은 마하깟사빠와 함께 탁발을 나갔다가 기원정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하깟사빠는 죽림정사에 계실 때 귀의를 받은 제자였다. 붓다가 피곤하여 나무 그늘에 앉아서 쉬려고 하자 마하깟사빠는 자신의 가사를 벗어 네 겹으로 접었다. 그런 뒤 붓다가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붓다가 마하깟사빠를 칭찬했다.
“깟사빠의 가사가 매우 부드럽구나.”
“스승이시여, 부디 저의 가사를 받아주십시오.”
붓다는 선선히 마하깟사빠의 청을 받아주었다. 붓다의 가사는 오래 되어 낡고 거친 누더기였다. 이후로 마하깟사빠는 붓다의 누더기 가사를 입고 다녔다. 그러자 사형, 사제 비구들이 비웃었다. 붓다가 설법 중인데도 ‘저 깟사빠는 스승 앞에서 누더기 가사를 입고 있다니 전혀 예의가 없구먼.’ 하고 수군거렸다.
이에 붓다는 설법을 중단하고 마하깟사빠를 앞으로 불러냈다.
“깟사빠여, 내 자리를 반으로 줄 테니 여기에 함께 앉자구나. 깟사빠여, 그대와 여래 중에 누가 먼저 출가했는가?”
“붓다께서는 저의 스승이십니다. 저는 스승님의 제자입니다.”
“그렇다. 깟사빠는 나의 진정한 제자이고, 나는 깟사빠의 스승이다. 그러기에 여기에 함께 앉자는 것이다.”
지계 순서대로 앉아서 설법을 듣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붓다는 마하깟사빠야말로 진정한 제자이기 때문에 옆에 앉으라고 했던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을 지켜본 비구들은 두려워서 온몸의 털이 거꾸로 서는 것 같았는데, 아난다 역시 그러했다. 마하깟사빠보다 일찍 구족계를 받은 비구가 ‘누더기 가사를 입은 깟사빠가 스승님의 진정한 제자이기 때문에 스승님께서 불러 자리를 함께 앉았다는구나.’ 하고 비난하고 다니자, 붓다는 그를 불러 경책한 일도 있었다. 이후 마하깟사빠는 붓다가 설법할 때마다 유일하게 구족계를 받은 순서대로 앉지 않고 항상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붓다는 자신이 열반한 뒤에는 마하깟사빠가 화합승가를 이끌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던 것이다. <계속>
